1. 돌아오지 않을 것들

 

 

일반적으로 여행의 끝은 ‘돌아옴’에 있다. 그 덕에 우리는 당장이라도 여장을 꾸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 돌아 올 희망의 기미는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온전한 힘이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면? 맥없이 너털거리는 발자국이요, 오래 쌓인 무덤 속 먼지다. 그런 여행이라면 행선지도 궁금하지 않고, 행장 꾸리는 손끝은커녕 콧노래도 곁에 두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두고 돌아오지 않는 눈부심이라고 비에 젖은 꽃잎처럼 말하는 시인이 있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 첫 여자도 첫 키스도 첫 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 얼마나 눈부신가 / 안 돌아오는 것들’. 「여행」이란 편도 차표를 끊은 이진명 시인은 사그라지는 것들의 씁쓸한 찬란함에 주목한다. 차표 쥔 시인의 손끝에 매달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새벽을 맞는다.

 

 

모든 만남은 여행의 다른 이름이다. 반짝이는 모래알, 뭉툭한 자갈돌, 설레는 무지개, 번득이는 번개처럼 여로의 꽃은 피고 진다. 애초에 질 꽃이라면 씨앗 심지 않으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순정한 영혼들은 만남이란 꽃을 피운다. 하지만 꽃의 길은 필연적으로 희거나 검은 상처를 드리운다.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올 수 없는 그 흔적들이 뭉쳐 삶을 단련시킨다. 첫 슬픔이거나 첫 매혹이었을 그것들은 때가 오면 담담하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여행이란 꼭 돌아와서 좋은 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돌아오지 않아서 찬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혹으로 흔들리는 누군가의 눈빛을 불편하게 읽는다거나, 닿을 수 없는 협곡 같은 절망이 그대 입술에 자주 밴다면 이제 당신은 여행을 끝낼 시점이다. 돌아오지 않을 그 꽃잎일랑 놓아주고, 새로운 씨앗을 틔우는 여행을 꿈꿔도 좋은 것. ‘첫’이라는, 안 돌아오는 것들의 묵직한 축복을 위해 시가 있고, 씁쓸함이 있고, 잠 못 드는 새벽이 있는 것이다.   

 

 

 

 

  2. 더는 연습

 

 

소학에 이르면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단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부모형제의 권세를 빌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며, 재능이 높아 문장을 잘하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소학 말씀대로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가지 불행의 이유에 하나도 가닿지 않으니. 하지만 불행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때론 불행해도 좋으니 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해봤으면 하는 맘이 든다. 특히 세 번째 구절,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룰 수만 있다면 불행이 오기 전 자기 관리를 잘 해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하는 싱겁고도 유치한 상상을 하게도 된다. 

 

 

하지만 옛말 그르지 않다고 전적으로 소학의 저 말씀을 신뢰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편한 일상은 누릴지 몰라도 정신적 황폐를 곁에 두기 쉽다. 이른 성공을 이룬 예술가들이 요절하거나, 그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하 얼마이던가. 집안 배경 덕에 이룬 표면적 성공 역시 본받을만한 건 못된다. 재벌가의 볼썽사나운 이권 싸움이 가십거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문장 재주가 좋아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면에 소홀한 채 자신의 능력에만 기댈 경우 시샘의 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이제껏 내 허영심 때문에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픈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결코 이룬 적 없는 그 욕심을 점차 내려놓도록 연습해야겠다. 맛 나는 요리엔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다.  훌륭한 맛을 내려고 이것저것 재료 욕심을 내다보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좋은 재료를 쓰겠다는 욕심을 뺄수록, 잘 쓰겠다는 조바심을 버릴수록 원재료에 가까운 맛을 얻는다. 음식이든 글이든 더해서 얻어지는 것보다  덜어서 내는 맛이 더 원초적이고 담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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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2-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 님, 이 페이퍼 정말 좋네요. 닿을 수 없는 협곡 같은 절망,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덜컹이는 것 같은 표현이에요.

다크아이즈 2013-02-24 12:02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의 글이 제게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비할까요. 알라디너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건 잘 읽고 잘 쓰는 분들이 너무 많아 매일매일이 충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처럼 될 수는 없지만 자극을 얻기 위해 이렇게 뒷전이나마 서성입니다. 샤이닝님이 찾아주셔서 몸둘 바를^^*

세실 2013-02-2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핀 만남의 꽃 즐거우셨나요?
전 팜므님이 먼길 와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제게 여행은 설레임입니다^^
오늘은 저도 여행한 느낌 ㅋ

다크아이즈 2013-02-24 12:14   좋아요 0 | URL
세실님 즐겁다 마다요. 그 만남에 취하느라 이제 알라딘 문을 두드릴 여유가 생겼다는... 저질 체력이라 조금 앓느라 마구 잤답니다.
그날 넘 무리하신 세실 님 덕에 전 편한 여행했지만 몸살 나셨을 거예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엔...
제게도 여행은 설렘입니다. 특히나 세실님처럼 미인이 친절할 경우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라로 2013-02-2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참 좋습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시면서 너무 가혹하신 거 아니십니까??ㅠㅠ

다크아이즈 2013-02-24 12:18   좋아요 0 | URL
용기 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비님처럼 고수가 넘치는 이곳에서 쓰기는 어렵기만 합니다.

피곤끼는 좀 덜하신지요?
후기까지 올리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1.   사람이 지나갔다

 

 

책꽂이에서 시집 두어 권과 그 외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시와 소설을 공부하는 이에게 보내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내게 책을 선물한데 대해서 릴레이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책 선물을 즐기는 편이다. 책장에 넘쳐 방치되느니 친구들과 나눠서 좋은 게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책방에 꽂혀 있다 뿐, 내 책들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지도 않다. 급하게 읽어야 할 책을 찾지 못해 다시 주문하거나 빌릴 때도 있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할 바에는 될 수 있으면 집안으로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어찌된 건지 내 깜냥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책만은 다달이 사들인다. 책꽂이는 한정되어 있으니 주변 친구들과 책을 나누면 책방도 깔끔해지고 마음도 달달해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박스 포장을 하기 전 책을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 시집 한 권에 손길이 오래 머문다. 얼마 전, 처음 펼치던 순간 헐거웠던 심장이 조여지는 듯한 그 느낌이 다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갔는지 마당이 어지러웠다 -싸리비로는 어쩌지 못했다, 바닥이 잃어버린 부력을 그늘로 눌러놓은 이곳.’ 젊은 시인 신용목의『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는 이처럼 사람 사이의 여운이 감지된다. 비망록에 새겨둔 바람 같고 물풀 같던 마음결이, 머리가 아니라 손끝이나 가슴으로 읽힌다.

 

 

사람이 지나간 마음자리는 어지럽기 마련이다. 싸리비는커녕 손부채 한 번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부력 잃은 그 자리엔 그늘이 눌러 채운다. ‘걸음이 찍어 놓고 간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있었다 어깨가 아팠다’라고 시인은 마치 독자의 마음 끝을 낚기라도 하듯 끝까지 눈썰미라는 낚싯대를 놓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가면 그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어깨가 아프긴 하다. 그 감잎 줍기 위해 날개를 너무 꺾기 때문일까.

 

 

내 시집을 받을 순한 이는 마당이 어지럽지도, 부력을 잃지도, 어깨가 아프지도 않기만을. 그저 ‘사람이 지나갔다’에서 시인을 뛰어 넘는 무한 발산의 발랄한 상상력을 채워갔으면.

 

 

 

 

  

2. 아니 에르노식으로 쓰기는 어려워

 

 

수치심을 감추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가령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어요.’라고 누군가 진지하게 말한다면 듣는 이는 왠지 모를 부담감을 안게 된다. 누군가의 수치심은 곧 타인의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실제 경험에서 따왔다. 일반적으로 부끄러움 앞에서 글은 솔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식 글쓰기는 그걸 해낸다. 작가는 경험하지 않은 모든 글은 허구라고 단정 짓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 경험의 최고 수위에 부끄러움으로 명명되는 그녀의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끄러움』이라는 작품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2년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김탁환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이 문장 하나 만으로도 에르노식 글쓰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정신적 외상이 된 일련의 체험들을 까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당돌하고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인간 본연에 대해 성찰한다.

 

 

알고 보면 글이란 게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영덩어리인가. 내 부끄러움, 내 수치, 내 껄끄러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수치심이나 증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들을 객관화시켜 글로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들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약점을 방어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진실한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충족감만큼이나 수치심을 경험하며 산다. 하지만 충족감은 발설하기 쉽고, 수치심은 감추기에 쉽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경험치가 많아서인지 그미가 쓴『부끄러움』을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바로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중고판매를 알아본다. 육천 원이던 책값이 적게는 이만 원에서 많게는 십만 원까지 불어났다. 남의 부끄러움엔 시쳇말로 돌 직구를 날리기 쉽지만 내 부끄러움을 글로 까발리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걸, 귀해진 중고책값이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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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7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3-02-1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읽던 책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걸 좋아하는데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저어하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새책을 받는 것 보다 읽던 책을 받는 게 부담도 안 되고 더 좋아요,,ㅎㅎㅎ 그렇다고 팜님께 달라는 얘기는 아니에요,,,ㅎㅎㅎㅎ

그런데 어떤 글은 너무 쉽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까발리는 걸 보면 외면하게 되더군요,,처음엔 동정을 하고 공감을 하다가 자주 되면,,,,아니에르노와 상관없는,,,어떤 분의 글을 읽고 느끼는,,,그런데 그렇게 까발(?)리니까 읽고 싶지 않아도 또 읽게 되는;;;이 관음증 환자의 헛소리였습니다. 사르륵(사라지는 소리)

다크아이즈 2013-02-18 07:11   좋아요 0 | URL
나비님 맞아요. 하지만 전 새책도 좋고, 누군가 읽은 책도 좋고 그래요. 둘 다 서로 생각하고 주고받는 맘만은 같을 것이기에^^*

완전히 스스로를 까발릴 자신은 없지만 꼭 드러내야 할 것마저 피하게 되면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그게 글인 것 같습니다. 뭔 소린지 몰라 저는 스스륵 사라집니다. ㅋ

2013-02-17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1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를 아직 담아만 두고 있는 상태에요. 읽고싶은 작가가 넘 많군요. 진정한 글쓰기, 늘 고민하는 사람만이 좀더 가까이 갈 수 있겠지요. 팜님저럼요.^^

다크아이즈 2013-02-18 07:17   좋아요 0 | URL
고민은 하는데 몸과 맘 다 딸리는(!)게 문제지요.ㅋ
저도 에르노 것으론 칼 같은 글쓰기 밖에 없어서 이번 기회에 부끄러움 훔쳐 볼랬더니 무려 절판이네요. 전 에르노처럼 <스스로 까는 글>을 쓰지도 못 하지만, 그 형식미, 절제미, 거두절미하는 쓰기 방식은 배우고 싶습니다.^^*
프레님도 밝은 하루, 여긴 빗님 추적거리네요..

꿈꾸는섬 2013-02-1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용목, 김탁환, 아니 에르노를 찜해요.^^

다크아이즈 2013-02-18 07:20   좋아요 0 | URL
이런이런, 꿈꾸는섬님 취향에도 맞아야 할텐데... ㅋ

페크pek0501 2013-02-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국문과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글을 쓰려면 자신의 항문까지 보여 줄 각오로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야 좋은 글이 나온대요. 감추며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항문까지 보여 주나? 였지요.
저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영역을 어디까지 보여 줘야 하나, 로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어려운 문제예요.^^

다크아이즈 2013-02-19 08:31   좋아요 0 | URL
페크언니님,맞아요. 항문까지 보이고, 까질대로 까져야(다 드러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했어요. 하지만 제 수치를, 제 아픔을 어디까지 까발릴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에르노가 대단한 거지요. 에르노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과장된 미화나 지나친 비하만을 극복해도 좋은 글 근처에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지금 놀러 갈게요.

Jeanne_Hebuterne 2013-02-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영역을 확장해 나가시는 팜므 느와르님 :)
서재를 둘러보다가 반가운 이름에 잠시 들어왔답니다.
덧붙이지도 덜어내지 않고 어느새 주체가 사라지고 주변의 풍경이 고화질 화면이 된 듯 속속들이 들어오는 그런 글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러기가 어디 쉽습니까!

다크아이즈 2013-02-19 08:36   좋아요 0 | URL
에르노야 에뷔테른님 전용이지요. 그 옛날(?!) 님이 에르노를 얘기하던 시절에는 받아들이기 싫었는데, 요즘은 좀더 좋아졌어요. 아마, 늙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세상과 시간에 타협하고, 쓸쓸함과 적막이 좋아지고, 눈비 흩날리는 풍광에 눈길이 가고... 뭐 그런 아침입니다.^^*

굿바이 2013-02-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는 제게도 좀 특별한 작가였습니다.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부끄러움. 종종 어깨까지 붉게 물들였던 단어였어요.

다크아이즈 2013-02-19 08:38   좋아요 0 | URL
앗, 굿바이님. 전 님을 생각하면 격조 높은 색체 그림이 자꾸 떠오르지 뭡니까.
저 짧은 댓글 좀 보시어요. <부끄러움, 종종 어깨까지 붉게 물들였>다니요!!!
 

 

 

 

 

 1. 졸업 축사

 

 

 

 

 

 

 

 

 

 

 

 

 

 

  졸업 시즌이다. 마침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지라 오랜 만에 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다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졸업식 분위기였다.

 

  하 수상한 시절 탓인지 그때의 식 절차는 얼마나 까다롭고, 방식은 얼마나 딱딱했으며, 시간은 또 얼마나 지루했던가. 별 의미도 없는 사전 연습을 몇 번에 걸쳐 해야만 했다. 연단에 올라 졸업장과 상장을 받아 옆구리에 끼는 팔의 각도까지 담당 선생님이 정해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리허설을 되풀이하곤 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창의적이지도 않았고 운치도 없었다. 초대 손님의 축하 인사말은 겉도는데다 그 대상도 불분명하기 일쑤였다. 강당도 없는 운동장에서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데 요즘 졸업식 풍경은 그때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우선 주인공인 졸업생을 충분히 배려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 한 명마다 선생님들은 어깨를 보듬고 덕담을 건네신다. 교장 선생님 훈화는 딱딱하지도 틀에 박히지도 않았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손님도 교육계 인사라 현장성이 있었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담임선생님들의 격려 말씀 또한 현실적이고 유머가 깃들어 있다.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진다.

 

 

  여러 말씀 중 귀담아 들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백두산에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아느냐고 한 선생님이 운을 떼신다. 비행기로 가는 것도, 헬리콥터를 타는 것도, 남다르게 보폭을 빨리 하는 것도 아니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이 가장 빨리 백두산에 오르는 비법이란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져, 지루할 틈이 없다나. 교장선생님은 사회에 나가면 꼭 존경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 셋은 만들란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란다. 두 분 다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란 말씀이렷다. 졸업 축사로 이보다 더한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도 없다 싶다.

 

 

  시대 흐름에 따라 유연해진 졸업식 풍경에 훈훈해진 하루였다.

 

 

 

 

2.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사회에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본인 및 자녀 군필 문제는 그들의 국가관 및 도덕성 유무를 판단하는 가장 큰 잣대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에 비해 그들의 군 면제비율이 월등하게 앞선다. 합당한 사유가 있고,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누군가 대변해준다고 해도 그조차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 가지 더. 암 투병 중이던 유명 엔터테이너가 끝내 사망했다. 안타까운 사실 앞에 각종 커뮤니티마다 추모의 물결이 파도를 이룬다. (악플러들이야 원래 악플을 다니 별도로 하고.)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잠재적 악플러였던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너무나 진지한 애도자로 돌변한다. 악성 댓글을 부추기거나 동조했다는 것을 잊은 채, 현상적 악성 댓글을 달았던 치들을 향해 보란 듯 정의의 투사로 자리를 바꿔 앉는다. 자명한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관대한 보시를 연출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이때껏 구설에 오른 고위 공직자 후보 아들은 합리적이든 불법이든 스스로는 군 면제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강권이나 환경적 습득에 의해 군대 가는 것보다는 가지 않는 것에 길들여졌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간 당사자를 기만했던 사람들일수록 ‘애도라는 무한한 연민’의 탑승권을 얻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무죄함을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악플러요’ 하고 대놓고 내지르는 사람들이 일관된 악역을 자처한다면, 악플러가 아닌 척 위장한 악플러들은 이율배반적 자세를 취하고 만다. 그리하여 저 관대하고 무한 발산하는 애도의 행렬조차 그 순수성에 불온한 혐의가 덧씌워지는 것이다. 아프고 힘들 때 적었던 친구들은 명백한 죽음 앞에서는 어째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 친구 아니었던 사람 없는 우리의 값싼 애도에게 애도를!

 

 

  내 욕망은 순수한 내 욕망이 아니다. 내 내면의 의지가 바라는 모든 욕망은 실제론 타자가 욕망하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의 타자성에 대해서 라캉은 ‘주체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타자 속에서이다.’라고 말했다. 군대를 면제 받고 판검사가 되거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취직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타자의 욕망 일순위에 그것이 있으니 따를 뿐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원했던 것처럼 길들여진 개별자는 착각할 뿐이다.

 

 

  잠재적 또는 교묘한 악플러들이 선플러로 둔갑하는 것 역시 내 마음이 움직여서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애도자의 눈길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타자의 욕망이 길을 터줬다. 그 길 덕에 잠시나마 선플러로 위장을 해서 자신의 죄사함이란 숨구멍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개별자의 자아는 스스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다듬어지거나 만들어진다. 타자의 욕망을 넘어서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회복하는 길은 쉽지 않다. 쉽기는커녕 우리 스스로 그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타인의 욕망, 즉 부모의 욕망, 사회의 욕망이 정해놓은 길을 추구하다 보면 자아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

 

 

  타자의 욕망은 안정된 길일 수는 있어도 진정성이 담보된 길은 아니다. 그 둘 간의 대립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 일상성의 조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면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대부분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타자의 욕망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라캉의 말대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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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1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의 졸업을 멀리서나마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 게임만 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실 건 아닐듯하옵니다. ㅋㅋ 언제 또 그렇게 놀아보겠어요!!! ㅎㅎㅎ

타자의 욕망에 길들어 오늘 하루도 마감한 것 같아요. 타자의 욕망이란 어쩌면 인간의 간사함일까요??? 오늘도 화두를 던져주시는 팜님~~~ 깊은 밤 평안한 잠드시길 바랍니다.^^

2013-02-15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1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롭고 멋진 출발! 축하드려요^^
목욜 학수고대하며~~~ ㅎㅎ

다크아이즈 2013-02-15 18:20   좋아요 0 | URL
축하는 이등이고 ㅋ
넹 당근 일등은 목욜 기다리면서 열심히 사는 것. 프레님도 뭔진 모르지만 상큼하게 털어내시고 밝고 환하게요, 우리^^*~~~ 크~

이진 2013-02-1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 이걸 왜 못 보았으며 그러고보니 졸업이라는 걸 왜 까먹었던 걸까요.
일단 아드님의 졸업을 축하드려요! (그런데 문득 생각하는데, 제가 아들분을 아드님이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답니다. 형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아드님, 하면 어른 같고... ^_^)
엊그제가 저희 학교 졸업이었는데 오랜만에 학교에 모인 선배들은 머리가 온갖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개중에는 형광빛이 나는 빨간색도 있었고, 연예인들이나 한다는 보라색 머리도 있었고. 그렇다구요. 저도 친구에게 졸업 시즌이 되면 하얀 색으로 염색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안 어울릴 거 같아요.

한 번 더 축하,

다크아이즈 2013-02-16 23:25   좋아요 0 | URL
이진님, 당근 아들과 이진님은 친구지요.^^*
머리 염색 전 강추요. 근데 이진님께 흰색이 어울릴까?
생기발랄한 색으로 변화를 주는 건 대환영이에요.
자고로 범생이 틀에서 약간은 벗어나줘야 글도 잘 되어요. ㅋ

순오기 2013-02-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 많으신 선생님들의 틀에 박힌 훈화도 이젠 바뀌어야 아이들에게 먹힐 듯해요.
아드님 졸업 축하합니다~~~~~~ 대학은 원하는 곳으로 진학햇겠죠?^^
어제 막내한테 들은 고3 담임샘 말씀~ 아직은 조심스런 접근이라 배려하는 듯한 언어표현에 아이는 마뜩찮아 하길래 한달만 지나면 서로 본성이 드러날거라 얘기하며 웃었어요.

다크아이즈 2013-02-19 09:13   좋아요 0 | URL
원하는 곳에 갔을 리가!
그냥 타협하는 거지요. 뭐.
순오기 언냐 님은 꼭 잘 다독여 막내 원하는 곳에 진학 시키시어요.^^*
본성을 드러내야 고3 선생님으론 적격일 테지요. ~~
 

 

 

 

                                                                           

  말은 말로써 기능할 때 가장 말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편타당한 말의 태생적 효용을 구차하게 설명하려는 것일 뿐 실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말로써 제 말을 다 부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제 가슴 속의 말을 전하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그 산물로서 미술,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한 때 아내였던 신시아에게 존 레논은 이렇게 말한다. 젊어서 성공한 것이 기쁘다고. 그들 곁에 아들 줄리안도 있었고, 적어도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겠다. 사람들은 평생 성공할 때를 기다리며 살지만, 그것을 얻었다고 만족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라고 한 평생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직조하는 대부분의 우리를 향해 존은 서늘한 통찰의 한 마디를 던진다.

 

  존의 이 말이 내겐 성공한 자의 비애로 들린다. 존의 표현에 의하면 비틀즈는 애초에 큰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차트 정상에 올라보는 소박한 꿈이 있었을 뿐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결과 뒤에 환멸과 자기정체성의 혼란이 따라온 것.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때는 돈도 필요 없다. 존도 물질적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대가로 당연히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성공한 자인 존에게 말은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기쁨을 맛보진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정한 대화보다는 무례한 행동에 노출된 그로서는 대화만큼 요점 없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언어로서의 말은 가장 느린 대화의 형태였다. 진정한 대화는 음악일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음악적 유폐를 고집했다. 가령 존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존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페퍼 상사’ 앨범의 한 곡을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예술작품 그 자체이니.

 

 

 

 

 

 

The Beatles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페퍼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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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2-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예술인들, 특히 인기면에서 정상에 자리에 오른 자들에게 진정한 말, 진정한 대화는 자신이 속한 예술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의 손길이 고픈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예술이 있기에 그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술이 있기에 그들이 살고, 그들이 살기에 예술이 살고... 저도 그런 자들 중 하나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저 예술이 저의 말이 되는 삶이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5:01   좋아요 0 | URL
앗, 이 무슨 텔레파시??
저 방금 이진님 서재에 가서 비밀글 남기고 왔단 말예욧. 크~~
이진님도 설 잘 보내셨지요?
저도 오늘부터 서서히 움직일라구요.
새학기 시작되려니 일거리도 몰려오기 시작해요.
남은 이월 달 알차게 보내요. 우리...

라로 2013-02-1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아니 저도 비틀즈의 앨범을 다 들으면서 그들이 뜻밖에 '외로움'에 대해 많이 노래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에게 '진정한 대화는 음악'이라는 말씀이 팍 와 닿네요.

저는 덕분에 설 잘 보냈어요, 팜님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위에 답글 다신 것 보니까 바빠지시려나 봐요??? 바빠지시기 전에 프님이랑 함께 만나고 싶은데….^^;

2013-02-1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4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2-1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한 꿈을 이룰 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
3월은 더 바빠지나 보네요, 저는 3월엔 프리랜서로 살려고요.^^

다크아이즈 2013-02-14 00:38   좋아요 0 | URL
소박한 꿈도 못 이루고 세월만 갔어요.
우리(!) 일이란 게 학기가 시작되면 좀 바빠지잖아요. ㅋ
프리랜서 순오기님 추카하옵니다. 프리랜서가 운신하기엔 좋지요? 안 얽매여도 되고... 같이 파이팅해요^^*

페크pek0501 2013-02-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글 많이 쓰셨네요. 님의 숨은 저력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요.
어떤 주제로 쓰든 글이 술술~~ 풀리는 걸 축하드려요.
알라딘에 들어오는 재미 중 하나가 님의 글을 읽는 것, 을 추가합니다.
설날은 잘 보냈나요?

님의 글은 '그냥 헛짓'의 글이 아니옵니다. ^^ㅋㅋ

다크아이즈 2013-02-14 19:50   좋아요 0 | URL
페크언니님, 단상을 쓰긴 하는데 건질 건 드물다는 ㅠ
그리고 늘 글 쓰는 게 어려운 것도 제 한계랍니다. (체력, 에너지 모두)
페크 언니 글 보면서 힘을 얻고 용기도 내고 그런 걸요.

그냥 헛짓, 저 말 아마 버나드 쇼가 한 말 같은데 시니컬한 게 맘에 들어서 따왔어요.^^*
 

 

 

 

 

 

지난 시간을 규정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합당한 추억 매개물이 있다. 일기장, 편지, 액세서리, 책, 사진, 음악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준다면 지난 시간들을 그리는데 느꺼운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리적 실체가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자의든 타의든 사라지기 쉽다.

 

 

  그나마 무형의 산물인 음악은 원하기만 하면 시간여행의 고마운 친구가 되어준다. 내 청춘의 절정기인 80년대에도 음악이 곁에 있었다. 그땐 팝송이 대세인 시대였다. 김기덕도, 황인용도, 이종환도 팝송과 어울리는 라디오 디제이였다. 더러 취향에 따라 클래식을 곁들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날의 클래식 입문기가 떠오른다. 단체 엠티를 가는 날이었다. 여장을 푼 누군가가 텔레비전을 켰을 때 흘러나온 음악이「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었다. 그 시절 공영방송 텔레비전의 주말 프로그램 안내에 깔리던 무척 익숙한 곡이었다. 제목은 물론 그날 알았다. 모두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주히 들떠 있었기 때문에 배경 음악 따위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누가 알아서 먼저 쌀을 안쳤으면, 빨리 밥 먹고 카드나 게임 판을 벌였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말했다. 그 곡이 배경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단독으로 얼마나 품격 높은 것인가에 대해서. 오페라의 서곡이며 작곡가는 글린카이고 푸시킨의 시가 단초가 되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얘기까지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이었다. 야외 소풍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무심하게 하는 그 아이 눈빛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후 그 아이 안내로 자연스레 클래식에 입문하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생명이 약동하는 듯한 그 음악의 제목은 몰라도 그 시대를 건너온 누구라도 그 곡이 주말 방송 안내에 깔리던 것이라는 건 금세 눈치 챌 것이다.

봄이 머지않았다.

 

  봄기운과 어울리는 그 때 그 음악이 다사롭게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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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2-1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금요일 오전, 이불 속에서 꿈트럭대며 일어나지 않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이었는데 팜므 느와르 님의 포스팅으로 다시 듣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친절한 안내자가 있을 때면 음악으로 그 길을 즐겁게 걷는 것이 가능해져 참 행운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팜므 느와르님은 그런 경험을 하셨군요! 조금 지나 빛이 바래었지만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을 살짝 엿보고 갑니다.

덧-콘트라 베이스 주자들의 저 구부정한 등!

다크아이즈 2013-02-14 00:43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곡이긴 하지요.
그게 글린카 곡인지 모를 때랑 친구가 갈쳐 줘서 정보를 좀 알 때랑 완전 다른 차원의 음악이 되는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친구 얘기하면 슬퍼져요.ㅠ

제가 님께 하고 싶은 얘긴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의 구부정한 어깨를 보는 님의 눈썰미가 너무나 님답다는 거라는 것. 저도 님처럼 사물을 여러 방면에서 관장하는 그런 섬세하고 예민한 눈길을 키우고 싶어요.^^*

소이진 2013-02-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절대 귀찮아서 로그인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저도 참 좋아하는 곡이어요. 왠지 많이 들어보았는데 어디서 익히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우 짜증날 정도로요. 분명 저는 이 곡을 글린카의 것이 아닌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듯하네요. 한 2분 정도에서 잘린 곡을 휴대전화에 넣어두고 반복재생을 해두었던 것 같네요. 어찌되었든, 글린카의 곡이란 걸 알았으니까요. 저도 클래식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 싶은데, 마침 좋은 형이 하나 있거든요. 클래식을 무척 좋아하는 형인데 제대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영 없어 씁쓸해요. 글을 만약 안 쓰게 된다면 음악평론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음악, 이 좋지요. 좋아. 저도 조곤조곤 클래식을 설명해주는 과동기가 되고 싶네요. 그럼 굳밤 :D

저는 소설을 한 편 써야겠네요.

다크아이즈 2013-02-14 00:49   좋아요 0 | URL
이진님 로긴하지 않은 상태의 댓글도 신선하고 좋은데요.^^*
아마 방송 매체에서 넘 자주 틀어줘서 익숙한 것일 거예요.
글린카 아니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휴대폰에 저장했을 정도면 꽤나 좋아했겠네요. 전 지금 들어도 좋은 걸요.
클래식 감상은 주변 친구들이 도와줄 때 더 흥미를 느끼는 건 맞아요. 그 형과 좀 더 친해지면 많은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전 이진님이 시에다 소설에다 음악평론까지 하는 그 날을 고대한답니다.
에브리데이 응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