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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외출했다. 

볼일만 보고 들어오기엔 넘 아까운 한나절.

가까운 곳, 여울님은 전시회 중.


고요한 시선, 시선들

오래 머물렀다. 

불친절한 결기가, 더욱 친절해 보이는 

초겨울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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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12-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울 님 전시회로군요 !!!

다크아이즈 2020-12-10 19:59   좋아요 0 | URL
아, 곰발님도 좋아하실 테마 같았어요.

라로 2020-12-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울 님이 누구신지 몰라요. 차 색이 예쁘네요. 차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여울 2021-12-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챙겨드리질 못했네요. 프레이야님이 알려주셔서 건너왔네요. 따뜻한 차 함께할 수 있길요. 올핸
 





  1. 저녁 먹고 나면 식곤증이 몰려온다. 잠깐 한숨 붙이고 일어나면 열시 반쯤. 더 이상 잠 들지 못한다. 이제 밤을 꼴딱 새기만 하면 된다. 몇 달째 이어지는 나만의 루틴. 밤 새 할 일은 쌔고 쌨다. 글쓰기 프로젝트 수행도 하고, 읽은 책 리뷰도 정리하고, 새 책도 고르고, 사념에 시달리기도 하고.  




여섯 시, 사과와 토스트 각 한 조각을 차려서 침대 머리맡에 가져간다. 남편이 아침 먹는 그 때가 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남편 말에 의하면) 매번 자신이 사과를 다 먹기도 전에 나는 벌써 골아떨어진단다. 출근 배웅 같은 건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대개 일어나면 열시 전후. 코로나 때문에 바깥 활동을 하지 않기에 늦잠이 가능하다. 어제도 밤을 꼴딱 샜다. 토요일이라, 정시에 출근용 아침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 침실로 갈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7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전화 한 통에 잠을 깼다. 




  지인이 잠깐 내려오란다. 책 몇 권을 드리기로 했기에 부은 눈은 안경으로 가리고, 떡진 머리에다 (잠옷 위에) 파카를 걸친 채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인의 양 손에는 큰 김치통이 들려 있다. 김장을 했단다. 당장 먹을 맛보기용 김치까지 김치통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다. 내 몰골을 보더니, 눈치까지 빠르셔라. 긴 말 하지 않고 후딱 사라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코로나를 들먹이며 자주 만나지 못한 내 여유없음이 부끄러웠다. 




  집에 올라와, 달리 인삿말이 생각나지 않아 '살림 거덜 낼 일 있냐'는 핀잔 섞인 카톡을 보냈다. 김치통은 안 줘도 된다, 는 무심한 다정의 답 톡이 왔다. 이럴 땐 부러 김치통을 비워 급히 되돌려주지 않는 게 예의다, 라고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김치통 김치가 익어가고 김치통이 빌 때까지 유쾌한 숙제를 지니게 되겠지. 무엇으로 빈통을 채워 되돌려줄까 미소 짓는 숙제.     






2. 급히 우체국에 들러 알라딘 님들에게 책을 보냈다. 다정한 안부도 이쁜 말들도 넣지 못했다. 받는 분들은 이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첫날, 책 알림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몇 분께도 보내드렸다. 주소가 안 맞아 못 보낸 한두 분께는 다음 주 내로 다시 보내드리겠다. 책을 보내드렸기 때문에 책 안내글은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비공개로 돌렸다. 








3. 북플에서 8년 전 오늘의 글이라면서 글이 뜬다. 내 옛글은 거의 클릭하지 않는다. 이건 이상한 경험인데, 옛날 글을 보면 지금은 저처럼 못 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이 덜 절실하기 때문에 글이 잘 되지 않는다는 심정이랄까. 그때도 힘들게 썼지만 지금도 쓰는 게 힘들다면 굳이 짊어지고 갈 필요가 있을까, 늘 그런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쓰기를 멈추진 못한다. 




  너무나 좋아하는 알라디너 한 분께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재미있는 덕담을 해주셨다. 내 에세이보다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솔직히 뜨끔했다. 어쩔 수 없이 에세이를 쓰지만, 언제나 내겐 에세이가 더 어렵다. 자기 검열, 문장의 밀도, 진솔함, 인품 등등 에세이에서는 살피고 따지고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시중에서는 붓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장르는 아무나 써서는 안 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기질상 소설이 딱이다. 감추지 않아도 되고, 다 드러내도 되고, 비틀어도 되고, 불편해도 되고... 소설의 강점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나 스스로 소설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힐링이 되는 부류이다.

 


  그 님께 2년 뒤에는 제 소설을 만나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응원해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니 계속 쓰는 일만 남았구나. 장편이 될지 소설집으로 묶을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4. 알라딘에서 몇몇 지인을 사귀고 좋아하게 된 데에는 <올리브 키터리지> 덕이 크다. 알라딘 하기 전에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몰랐다. 이렇게 '아련 돋고' 저렇게 가슴 저미는 작가라니! 그 책을 프레이야님이 선물해줬는데, 첫 챕터 약국, 만 읽고 바로 빠져 버렸다. 왜 그 책을 선물해줬는지 알 것 같아 마구 껴안아주고 싶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원서로 읽고 낭독으로 듣는 라로님과도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났을 때, 언니, 올리브 키터리지 몇 번이나 들어도 좋아요. 언니도 들어 봐요. 했는데 너무 슬펐다. 까막귀가 원서 히어링이라니. 그 정도는 될 거라고 단정 짓는 라로님의 순정을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 두 분과 친한 오기 언니와 세실님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지금은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게다가 알라딘 말고도 여러 소셜 매체가 있으니 그쪽으로 옮겨 탄 이도 있다.) 난 다른 곳은 하지 않으니 소통하려면 싫으나 좋으나 알라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옛글들을 보면서 십 여년이 되어 가는 그때가 다들 알라딘 시절의 피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몇몇 터줏대감 빼고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다. 알라딘을 꿋꿋이 지키는 몇 분들, 진짜 존경스럽다. 한결 같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각설하고, <올리브 키터리지>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소설이다. 독서회에서 이 책을 권했을 때, 열광하는 이는 한 분도 못 봤다. 앨리스 먼로 작품을 더 쳐주는 눈치였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시리즈로 방영된다고 언젠가 라로님이 말했다. OCN인 것 같았다. 넷플릭스에는 안 올라와서 무지 서운하다. (지금은 되는지 모르겠다.) 혹, 올리브 키터리지 한국어로 방송되는 매체 아시는 분 덧글 달아 주시면 감사. 유튜브에 감질맛나게 올라오는 것 이 년 전인가, 본 적 있는데 그것만 봐도 눈물 날 것 같더라. '강' 부분이었던가. 



  어쨌든 <다시, 올리브>가 나왔다니 얼씨구나 지화자다. 바구니에 담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도라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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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2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 놓았어요. ‘약국‘이란 작품을 팟캐스트로 열 번쯤 들은 게 생각나서요.
들을수록 좋거든요.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에서 들었는데 단편이라 전문을 읽더라고요. 이 책에 있어요.
다른 작품도 하나씩 읽어 볼 참이에요. <다시 올리브>는 아직...ㅋ

다크아이즈 2020-12-06 16:34   좋아요 0 | URL
우리 소설에도 올리브 키터리지 같은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엔 잘 쓰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읽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많이 부러운 건 사실이지요.

라로 2020-11-3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어깨 힘 빼고 쓰시는 글 같아서 언니가 더 가깝게 느껴져요~.^^;; 가끔은 이런 글 올려주세요!!
음, 제가 그렇게 눈치가 없고, 늘 제 생각만 해요.ㅠㅠ 그러고 보면 프레이야 님은 정말 센스 만점!! 그런 점은 늘 배워야 하는데,,, 저는 배워도 배우는 그 순간,,,천성이니 다른 분들의 이해를 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ㅠㅠ
[다시, 올리브]는 자꾸 생각하면 [올리브 키터리지]보다 더 좋기도 해요. 아마도 제가 점점 늙어지고 있다는 것이라서 그런지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더 그럴까요? 저는 올 오월에 한 번 읽었는데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어쨌든, 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나요? 우리 건강 잘 챙겨요, 언니!!!!!!!

다크아이즈 2020-12-06 16:35   좋아요 0 | URL
힘 자체가 아예 없어요. ㅋ
개인적인 글이 아니면 힘이 들어가게 보이나 봐요. 그치요?
한 세상 설렁설렁 살고 싶다오.

2020-12-01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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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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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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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OCN에서 하나요? 하면 봤을텐데...

오늘 책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다크님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쓰느라고 또 보내시느라고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책 많이 내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다크아이즈 2020-12-06 16:38   좋아요 0 | URL
ocn에서 한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지금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는 넷플릭스를 하니, 없더라는ㅠ
스텔라님, 천천히 잠 오실 때 읽어주시어요.

2020-12-03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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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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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4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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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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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한 파일 두어 개 부탁하고

  강좌를 마치고 왔더니

  저토록 어여쁜 메모가 책상 위에.

  편하게 카톡으로 해도 될 말을

  깨알로 수를 놓듯 

  한땀한땀 연필 끝에 앉혀 놓았더라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수고로  

  5만년을 예약하는 감동과 여운이라니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은

  한 마디 손글씨로도 충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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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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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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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25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손글씨. 글씨를 잘 쓰는 분은 부럽습니다.
읽는 분이 기분좋을 느낌이네요.^^

다크아이즈 2018-05-26 07:49   좋아요 2 | URL
손 글씨를 잘 쓰시는 것도 부럽고
그 속에 정성까지 깃드니 뭔가 뭉클함이~
서니데이님도 손글씨 예쁘시잖아요^^~

2018-05-25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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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0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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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2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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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0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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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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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1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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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26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수고로
5만년을 예약하는 감동과 여운이라니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은
한 마디 손글씨로도 충분하더라

- 캬악!!! 작가다운 문장 같습니다. ㅋ

다크아이즈 2018-06-04 17:29   좋아요 0 | URL
한결 같이 알라딘을 키워가시는 페크 언냐님 잘 계시지요?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는 일의 숭고함
부쩍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빨간머리 앤, 다시 읽고 있는데
마릴라 아줌마, 매튜 아저씨가 가슴에 팍팍 꽂히네요.
잔꾀를 부리는 날이 있고, 그럴 때는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릴라와 매튜의 나날에 경의를 표하는 온나절입니다.

2018-06-04 1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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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17: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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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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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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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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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2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한동안 덥고 비오는 날이 계속될 것 같아요.
남쪽에는 오늘 밤에 비가 올 거라는 뉴스도 보았어요.
눅눅하고 덥고, 습한 여름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다크아이즈님, 편안한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8-12-3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봄에 들었던 새 책 소식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벌써 겨울이 되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네요.
올해도 잘 보내셨나요.
이제 내일이면 2019년이 됩니다.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19-12-3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그 사이 일년이 지나고 또 다른 해를 앞두고 있어요.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5-04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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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5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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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6 1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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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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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1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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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게 박상륭 소설가의 부고를 들었다. 선생은 작품성 하나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신 문단의 큰 별이셨다. 하필이면 그 무거운 소식을 한 유명 제약회사의 오너가 자신의 운전수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뉴스와 같이 접했다.

 

애도의 마음이 훑고 간 자리에 뭔가 뿌연 막 같은 것이 가로막았다. 선생과는 직접적인 사연이 없으니 내 애도가 절절함에 가닿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이 막연하고 갑갑한 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마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선생의 대표작인 자욱한 안개 숲 같았던 죽음의 한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막막한 경외감 같은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매캐한 연기 속 같은 가진 자들의 갑질행태를 바라봐야 하는 갑갑한 분노쯤이 아니었을까. 막막한 경외감에서 오는 조심스러움과 갑갑한 분노에서 오는 부글거림의 감정이 동시에 온몸과 마음을 뒤덮었던 것. ‘강자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나쁜 뉴스가 선생의 작품 한 부분과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이는 교만으로 가득하고 편견으로 뒤틀린 우리 자화상에 대한 경종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탐욕스런 영감이 착한 종을 데리고 서낭귀신에게 목숨 무게를 재러 갔다. 부자이니만큼 자신의 목숨 무게가 천한 종보다는 무거울 것이라 확신하면서. 귀신은 두 사람 무게가 꼭 같아 아무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고 했다. 영감은 종과 자신이 같은 목숨 무게라면 어째서 종놈은 못사는 데다 종살이를 면치 못하냐고 따진다. 서낭귀신이 말했다. 목숨이나 혼의 무게는 재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같다고. 다만 선업(善業)의 무게는 달아줄 수 있다고. 저울추를 보니 종의 그것이 영감보다 삼사백 배나 더 무거웠다. 영감 업의 무게는 가랑잎 한 잎에 지나지 않았다. 귀신이 말했다. 혼 위에 업()을 업고 오는 것이라 영감의 업을 종놈에게 판다고 해도 그 무게가 너무 가벼워 저승조차 종이 대신 가 줄 수 없노라고. 이 세상엔 같은 업의 무게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울며 재물로 원한을 씻겠노라고 발길을 돌리지만 귀신은 그런 영감을 불러 세워 다그친다. 어디를 가느냐고, 저승사자가 와있으니 따라갈 채비나 하라고.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독본이 박상륭의 세계이다. 난해한 철학서이자 불가해한 경전 같다.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손톱만한 뭐라도 건지고 싶은 심정이랄까. 환멸(幻滅)로 가득 찬 진창을 헤매는 고뇌의 인간이 끝내 죽음으로써 환멸(還滅)에 다다르고야 마는 길. 생소한 문법으로 구도에 이르는 길을 장황하게 얘기하는데 뭐라 형언하기 힘든 파장이 인다. 낯설고도 독창적인 문체 앞에서 내 안에 있는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허상을 걷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해독 불가능한 박상륭 식 문장 앞에서 차라리 무지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강자와 약자가 있다. 약자가 강자에 의해 환난의 울타리로 내몰렸다면 약자에게 동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강자는 가만있기만 해도 약자 앞에서 강자 자체로 군림한다. 강자가 아무 눈치 주지 않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약자는 이미 심리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약자는 강자의 쓰레기통이나 샌드백이 아니다. 거친 소리를 쓸어 담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막아내는 물건이 아니다. 소설을 넘어서는 소설이자 답 없는 비유로 가득한 암호 속에서도 이미 작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목숨이나 영혼의 무게는 같아도 업의 무게는 같을 수가 없다고.

 

큰 작가는 죽음으로써 감당키 어려운 당신 작품의 업 무게를 늘려놓았다. 사람의 존재감은 목숨 자체가 아니라 살면서 지속되는 선업의 축적에 달려 있다. 그것은 힘과 재물과는 무관하다.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경중이 달려있다. 죽음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업의 무게를 떠올려 본다. 마음이 무겁지만 피해갈 수도 없다. 박상륭 선생의 평생 테마 중의 하나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존재 이유에 대한 선업의 돌탑 쌓기가 아니었을지. 

 

  

  루체른 카펠교에서 - 

    앨리스 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등등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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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7-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륭....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요. 제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 또 깨닫게 되는 글입니다. 언니는 글을 정말 잘 쓰세요!!!
 

 

 

 

 

 

 

 

 

 

 

 

 

 

 

  병영 독서회 청춘들과 함께 한 책이다. 영화도 책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영화는 정우성이 주연한 <비트>의 스코틀랜드 버전으로, 책은 제이 디 셀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 영국식 버전으로 읽혔다. 영화는 <비트>보다는 나았고,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못 미쳤다.

 

   <비트>보다 나은 점은 폭력의 강도가 훨씬 약한 데다 개연성을 확보했다는 점이었다. 대사 처리 또한 비트에서처럼 오글거리지 않고 현실적이라 공감이 갔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장성을 획득한 게 아닌가 싶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못한 점은 구성 면에서 문학적 성취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 경험에 근거한 책 내기에 조급했을까. 온갖 등장인물이 내레이터로 나오는 방식을 취해 따분하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상황 설정이나 심오한 반전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구성을 무시한 일상적 기록의 서사 방식을 택한 것은 아쉬웠다.

 

   병영 청춘들에게 공감하는지 진솔한 의견을 물었다. 상황은 이해하겠는데 구체적 장면에서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하나 같이 말한다. 아무리 하위문화라 해도 뒷골목에서의 마약, 섹스, 폭력이 일상화되는 청춘을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는 어려우니까. 병영 청춘들은 말한다. 담배, 피시방이나 노래방, 술집 정도에 해당 되는 우리의 말들이 에딘버러에 가면 마약, 섹스, 폭력으로 치환된다고. 범죄와 가까운 그 행위들이 거기서는 단순한 일탈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게 의아하면서도 부럽다(?)고 했다.

 

   청춘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했다. 청춘의 불행한 일상을 암울하게만 그린 게 아니라 경쾌하고 도덕연하지 않게 틈을 주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청춘의 하위문화가 시사하는 점, 이를 테면 세태 비판이나 방향타 잃은 청춘에 대한 묘사, 젊음의 폭발적(폭력을 포함한) 에너지 등에 대해서 성찰하게 된 점은 의미 있었다. 일탈의 쾌감과 불안을 헤매면서도 그들이 가야할 방향타를 찾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소설이다. 중류 계급의 허위의식에 대해서 시종일관 콕콕 찔러대는 것도 인상적이다. 도덕연한 허세, 따분한 잘난 척, 포장된 자기기만 등등.

 

   그럼에도 이 책(영화도 마찬가지)의 가장 큰 약점은 남성적 시각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는 점. 이건 어빈 웰시의 기질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인 어빈 웰시는 왠지 마초적이고 냉소적인데다 비판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 작년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됐을 때 가장 심한 악담을 퍼부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어빈 웰시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생각에 대한 작은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밥 딜런 팬이지만 이번 상은 노망 나 헛소리나 씨부렁거리는 히피들의 썩은 전립선이 향수에 쩔어 주는 상이다.” 트레인스포팅을 쓴 작가답다는 생각에 마구 웃어젖혔다.

 

  다만, 이 책과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련다. 솔직히 어떤 책이라고 말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좋다고 말하는 이와 아니라고 고개 흔드는 이가 반반이라 내 생각에도 막이 생겨버렸다.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을 때도 난상토론이 이어졌다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내 취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참고로 <트레인스포팅2>가 영화로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모 영화제에서 상영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일반 극장에서도 상영했는지는 모르겠다. 주인공 렌턴 역인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해 식보이 역의 조니 리 밀러 외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그대로 20년 세월을 넘어 뭉쳤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식보이 역의 조니 리 밀러의 모습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하긴 하다. 트레인스포팅 영화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이완 맥그리거가 아니라 조니 리 밀러였다. (아시다시피 조니 리 밀러는 안젤리나 졸리의 첫 번째 남편이었다. 트레인스포팅2 관련 인터뷰에서 그는 졸리와 여전히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트레인스포팅이란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적는 행위로, 영국에서는 이러한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 어빈 웰시는 트레인스포팅이라는 단어를 기찻길을 연상시키는, 팔의 정맥 위에 일렬로 자리 잡은 주사바늘 자국들을 가리키는 헤로인 중독자(정키)의 메타포로써 사용하고 있다.

    

 

 

 

책 밑줄 긋기

49다른 걸로는 나의 이 빌어먹을 가슴팍 한가운데에 쑤셔 넣은 주먹 같은, 커다란 블랙홀을 메울 수 없어.

72따스한 마음을 가진 반항아들. 이 땅의 소금과 같은 사람들. --축구 리그 같은 것은 바보 같고 엉뚱한 난센스이며 노동 계급의 단결을 방해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주도권이 도전받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스티비가 혼자 생각해낸 이론이다.

83레슬리는 꼼짝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며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뼈마디가 뒤틀리고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손댈 수 없다.

 

83내가 눈꼴시게 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자신이 미웠다. 나도 다른 놈들이 나한테 그러면 역겨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일단 막강한 위치에 오르고 나면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는 진리를 부정할 만한 성인은 없다. --자식들, 너희들 차례는 아직 멀었어. 레슬 리가 먼저야. 그리고 레슬리보단 내가 먼저야. 당연한 이야기 아냐?(마약 조제를 하는 렌턴의 마음)

84그래도 엄마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엄마한테 나 같은 아들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아들을 찾아내다가 엄마한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변할 수 없으니까.(렌턴)

119신화:벡비는 훌륭한 유머 센스를 갖고 있다. 현실:벡비의 유머 센스는 타인의, 대개는 동료의 불운이나 실수, 약점이 노출된 경우에만 발휘된다. 신화:벡비는 강철의 사나이다. 현실:(뾰족한)무기를 갖고 있지 않을 때의 벡비는 그다지 뛰어난 싸움꾼이 아니다. 신화:친구들은 벡비를 존경하고 있다. 현실:친구들은 벡비를 두려워하고 있다. 신화:벡비는 친구들을 감싸준다. 현실:--멍청이가 그러면 두들겨 패준다. 하지만 진짜 미치광이가 친구들을 괴롭히면 내버려둔다. 우리보다 그런 사이코들과 벡비는 더 친하기 때문이다. (렌턴이 본 벡비)

 

125바늘을 찌를 곳을 몸에서 필사적으로 찾아야 하다니 정말 싫다. 어제는 하는 수없이 페니스에다 놓았다. 내 몸 중에서는 정맥이 가장 똑똑히 보이는 곳. 이런 버릇은 들이고 싶지 않다. (렌턴)

196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지 않을래? 좋지. 렌턴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나,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커피 뿐이야. 다이앤은 그렇게 덧붙였다. (다이앤이 렌턴에게)

252닥터 포브스:애버딘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 : 대학 자체입니다. 교수,학생, 모든 것이 다요. 모두 중류 계급의 따분한 녀석들이었죠. (렌턴의 상담)

 

259-260내가 모든 이론을 철저히 알고,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위에 건전한 정신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래도 나는 헤로인을 맞으려고 생각할까? --인생을 선택하라. 하지만 나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해리 로더는 노래했다. “이 길이 계속되는 한, 나는 오로지 전진하리라…….”

278나는 리스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코틀랜드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히. 지금 즉시.(렌턴)

423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 트레인스포팅이라도 하나, ? (벡비 아버지가 일당에게)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들의 번호를 적는 행위. 영국에서는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467렌턴이 정말로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스퍼드였다. 그는 스퍼드를 좋아했다. --렌턴이 단 한 사람에게만 보상한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스퍼드일 것이다.

 

468아이러니컬하게도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벡비였다. 벡비에겐 동료를 배신하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가장 무거운 죄이다. 렌턴은 벡비를 이용해서 스스로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벡비가 있기 때문에 그는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원하던 일을 해냈다. 리스에도, 에든버러에도,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조차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영원히. 그곳에 있으면 지금의 자신 이외는 될 수가 없다. 모든 것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지금이라면, 되고 싶었던 자신이 될 수 있다. 쓰러지든지 일어서든지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불안하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했다. 렌턴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될 새로운 인생을 똑바로 응시했다.

 

영화 밑줄긋기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영국은 무슨! 우리는 지진아 중의 지진아들이야 쓸모없는 쓰레기들이고, 비참하고 불쌍한 쓰레기들 말야. 문명이 나은 사생아! - 렌턴, 이완 맥그리거

*마약은 우리 삶에 원동력이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신의 가호로 이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보도록 하죠.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므로, 결코 풍요로울 수 없는 삶이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독특한 개성은 찾아 볼 수 없고 규율만 찾는 나라. 지랄 같은 나라가 영국이라고 신선한 공기가 다가 아니라고. - 렌턴, 이완 맥그리거

    

트레인스포팅, 트레인스포팅2, 어빈 웰시, 이완 맥그리거, 조니 리 밀러, 판단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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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7-3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레인스포팅은 아주 재밌게 봤던, 그보다 충격적이라고 생각하며 봤던 영화였어요. 2편이 나왔다고 들었지만 왠지 보고싶지 않아서 안봤는데... 1편의 강력한 인상을 못따라 갈까봐~~~그 영화에 대한 순정이라기는 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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