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눈 뜨게 되는 안나의 정념은 사교계를 뒤집어 놓을 만큼 팜므파탈적이다. 자기기만에서 오는 괴로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비감이 교차한다. 브론스키의 자책(시체를 앞에 둔 살인자 느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레빈의 자연친화 사상 및 도덕적 인간 존중 사상이 전개된다. 사랑에서 개인의 삶을 의미화하려는 건실한 시도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너무나 톨스토이답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브론스키의 경마 에피소드를 통한 위기감과 안나의 임신 소식으로 인한 두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독자로 하여금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한 현실임을 자각케 한다. 가만 읽기만 해도 공감이 되는 장면들, 장애물 경기에 나오는 애마를 통해 안나와의 힘든 현재와 암울한 미래를 암시한다. 생각하지 않으려도 애마 프루프루에 안나를 대입해서 생각하게 된다. 쓰러진 프루프루를 발로 차는 브론스키를 기억하라. 인간 운명의 불완전성과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적극적 비난 없이, 평온한 거짓 감정으로 안나를 대할 수밖에 없는 카레닌. 카레닌의 이런 마음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브론스키만 생각하는 안나. 안나의 내면적 요청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키티의 독일 온천장 요양과 한껏 성숙해가는 과정도 지켜볼 만하다. 바렌카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키티. 바렌카처럼 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러시아로 돌아와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키티, 레빈, 안나, 브론스키, 카레닌 어느 한 캐릭터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인간 군상의 다양한 질료들을 현실감 있게 배치하고 있다. 이 중 한 명만 선택해서 같이 아파보라면 단연 카레닌. 온건한 독종이라서 더 고통스러울 카레닌.
등장인물
*리디야 이바노브나 -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백작부인, 카레닌 성공에 도움
*랴비닌 - 스티바에게 숲을 사려는 자, 돈만 아는 속물 귀족
*프루프루 - 브론스키의 애마
*바렌카 - 독일 온천 요양지에서 키티가 만난 아가씨, 헌신적
줄거리(2부, 스포일러 심함)
실연당한 키티는 요양이 필요하다. 키티 아버지는 딸에게 바람 넣은 아내를 나무란다. 브론스키가 아니었다면 키티가 레빈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거라고 돌리는 엄마에게 말한다. 키티 엄마는 자책감에 괜히 화를 낸다.
돌리언니에게 키티는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지 않는다. 레빈의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대신 화를 낸다. 자신이 시장상품 같아 수치스럽다. 언니와 조카들이 있을 때만 자유롭다고 키티는 말한다.
돌리는 스티바가 또 바람피운 것 같아 괴롭다. 살림살이도 쪼들린다. 아이들 돌보는데 치인다. 조카들을 돌보려고 키티는 언니와 함께 언니집으로 가지만 차도가 없어 부모와 외국여행을 떠난다.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는 세 갈래이다. 카레닌과 같은 정부관리, 관대하고 신앙심 가득한 나이든 여자들, 그리고 야심가 남편들.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이 그 중심이다. 카레닌도 출세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안나가 보기에 그 부류들은 위선적이고 지루하다. 차라리 무도회와 만찬 파티 세계가 안나는 더 좋다. 그쪽으로 연결해준 벳시 공작부인을 통해 브론스키를 자주 만난다.
브론스키는 사랑을 간청하고, 제어할 수 없는 안나의 눈길. 카레닌이 도착해 그 둘을 의식하며 벳시와 대화한다. 손님들이 그 둘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카레닌은 눈치 챈다. 안나의 만류에도 파티장을 떠나버린다.
카레닌은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숙고한다.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질투가 나고 혼란스럽다. 관직에서만 있어온 그는 삶 자체와 대면하니 겁이 난다. 안나와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며 자신을 달랜다.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안나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을 느낀다.
안나는 남편 앞에서 거짓의 갑옷을 입었으며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변화를 카레닌도 알아차린다. 열려 있던 영혼의 깊은 곳이 닫혀 버린 안나. 웃고 있는 안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는 대화 나누는 게 헛수고임을 느낀다.
카레닌은 안나의 처신을 경고한다. 브론스키와의 지나치게 생기발랄한 대화를 예로 든다. 카레닌은 하느님에 의해 맺어진 그들 관계의 의무를 모자 관계를 들어 상기시킨다. 안나는 별 할 말이 없어 억지로 미소 짓는다.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안나 부부는 많이 달라졌다. 공직 생활에서는 카리스마를 발휘해도 아내를 다루는 데는 무력감을 느끼는 카레닌. 유순한 황소가 되어 머리 위로 도끼를 맞는 느낌이다.
브론스키와 걷잡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른 안나. 사랑을 얻은 브론스키는 살인자가 된 기분이고, 안나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안나는 카레닌의 아내이자 동시에 브론스키의 아내인 악몽에 시달린다. / 시골에 돌아온 레빈은 거절당한 청혼에 고통스럽지만 영지 생활의 일상과 그 개선을 계획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스티바가 어느 저녁에 온다. 아내 소유의 숲을 팔기 위해서다. 둘은 사냥을 즐긴다. 매수인 랴비닌이 숲 값을 깎으려하는 걸 보고 레빈은 화가 난다. 스티바는 레빈이 생각하는 것보다 헐값으로 팔기로 한다.
키티가 병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된 레빈. 키티 엄마의 속물근성, 환심으로 숲을 헐값에 매수하는 랴비닌, 양아치 같은 브론스키 등을 보면서 레빈은 귀족에게 반감이 생긴다. 대대로 토지를 소유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고갈시키고 토지 가치를 떨어뜨리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은 귀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자의 호의를 얻어 출세하는 것보다 물려받은 땅이나 노동을 통해 얻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스티바와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을 고통스러운 주제이지만 둘 사이의 우정은 서로의 이해가 전제된다. 스티바는 돌아간다.
책무를 다하지만 안나에 대한 열정으로 브론스키는 내적 갈등이 심하다. 젊은 남자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바람둥이인 그의 형은 자신들이 잘 보여야 할 사람들이 그 둘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에 동생 행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엄마는 연애 자체는 괜찮지만 그것 때문에 요직을 거절하고 페테르부르크에 남으려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약삭빠른 연애가 아니라 물불 안 가리는 열정이란 사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사교계 여자들은 섣불리 안나를 비난하기보다 여론을 관망한다.
브론스키는 말과 경마에 관심이 있다. 영국산 경주마를 사서 장애물 경주 우승을 꿈꾼다. 경기가 열리는 날 암말 프루프루의 최고 컨디션에 만족하고 안나 집으로 만차를 몬다. 거짓과 속임수가 필요한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 막상 안나를 보는 순간 얼이 빠진다. 안나는 애기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이혼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브론스키는 이혼을 권유하지만 안나는 세료쟈를 잃을까봐 결정하지 못한다. 그 맘을 브론스키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세료쟈 목소리가 들리고 브론스키는 경마장으로 향한다.
브론스키는 프루프루와 우승을 다툴 글라디아토르를 본다. 경쟁자 마호친을 따라 출발문으로 간다. 17명의 장교들이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글라디아토르를 바짝 쫓는 애마가 맘에 든다. 우승을 확신하는 순간 균형을 잃고 말과 함께 쓰러진다. 자신의 실수로 말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에 화가나 말의 배를 찬다. 등뼈 부러진 말은 사살하기로 했다. 경마장을 떠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불운에 쓰라리기만 하다.
카레닌은 겉보기에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여름별장에 간 안나를 매주 찾는다. 안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적대감은 아들에 대한 냉담함으로 표출되고 세료쟈는 입을 다문다. / 경마장에서 브론스키만 쳐다보던 안나를 떠올린다. 브론스키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카레닌이 내민 팔을 잡고 밖으로 나오던 안나. 마차 안에서 카레닌은 안나의 꼴사나운 처신에 대해 말하면서 체면을 지키라고 말한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사랑하며 그의 정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카레닌의 절망에도 안나는 저녁에 브론스키와 만날 일을 고대한다.
독일 온천장에서 키티는 바렌카를 알게 된다. 슈탈 부인의 헌신적이고 예쁜 간병인인 바렌카를 본받고 싶다.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와 그의 여자 마리야도 만나게 되는데 어쩐지 불쾌한 감정이 남아 있다. / 바렌카와 친해진 키티를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다. 고상한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친절이 수치스러운 부작용도 낳는다. 키티의 도움을 받은 가족의 안주인이 키티에게 반한 자기 남편을 나무란다. 그 여자는 키티에게 냉담하고 무례하게 군다. 키티는 슈탈 부인을 비롯한 경건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위선을 맛본다. 바렌카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우정만은 식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 음울한 현실을 사랑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러시아의 신선한 공기가 그리워지고 돌리와 조카들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병이 나은 키티는 집으로 돌아오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모스크바에서 경험한 쓰라린 일은 한낱 추억에 불과할 뿐이다.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주신 응원의 꽃다발.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무명의 쓰는 사람인 나도 흉내낸다.
이 책을 팔아서, 이 책을 팔아서...... ......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