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돌아오지 않을 것들

 

 

일반적으로 여행의 끝은 ‘돌아옴’에 있다. 그 덕에 우리는 당장이라도 여장을 꾸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 돌아 올 희망의 기미는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온전한 힘이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면? 맥없이 너털거리는 발자국이요, 오래 쌓인 무덤 속 먼지다. 그런 여행이라면 행선지도 궁금하지 않고, 행장 꾸리는 손끝은커녕 콧노래도 곁에 두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두고 돌아오지 않는 눈부심이라고 비에 젖은 꽃잎처럼 말하는 시인이 있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 첫 여자도 첫 키스도 첫 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 얼마나 눈부신가 / 안 돌아오는 것들’. 「여행」이란 편도 차표를 끊은 이진명 시인은 사그라지는 것들의 씁쓸한 찬란함에 주목한다. 차표 쥔 시인의 손끝에 매달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새벽을 맞는다.

 

 

모든 만남은 여행의 다른 이름이다. 반짝이는 모래알, 뭉툭한 자갈돌, 설레는 무지개, 번득이는 번개처럼 여로의 꽃은 피고 진다. 애초에 질 꽃이라면 씨앗 심지 않으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순정한 영혼들은 만남이란 꽃을 피운다. 하지만 꽃의 길은 필연적으로 희거나 검은 상처를 드리운다.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올 수 없는 그 흔적들이 뭉쳐 삶을 단련시킨다. 첫 슬픔이거나 첫 매혹이었을 그것들은 때가 오면 담담하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여행이란 꼭 돌아와서 좋은 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돌아오지 않아서 찬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혹으로 흔들리는 누군가의 눈빛을 불편하게 읽는다거나, 닿을 수 없는 협곡 같은 절망이 그대 입술에 자주 밴다면 이제 당신은 여행을 끝낼 시점이다. 돌아오지 않을 그 꽃잎일랑 놓아주고, 새로운 씨앗을 틔우는 여행을 꿈꿔도 좋은 것. ‘첫’이라는, 안 돌아오는 것들의 묵직한 축복을 위해 시가 있고, 씁쓸함이 있고, 잠 못 드는 새벽이 있는 것이다.   

 

 

 

 

  2. 더는 연습

 

 

소학에 이르면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단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부모형제의 권세를 빌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며, 재능이 높아 문장을 잘하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소학 말씀대로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가지 불행의 이유에 하나도 가닿지 않으니. 하지만 불행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때론 불행해도 좋으니 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해봤으면 하는 맘이 든다. 특히 세 번째 구절,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룰 수만 있다면 불행이 오기 전 자기 관리를 잘 해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하는 싱겁고도 유치한 상상을 하게도 된다. 

 

 

하지만 옛말 그르지 않다고 전적으로 소학의 저 말씀을 신뢰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편한 일상은 누릴지 몰라도 정신적 황폐를 곁에 두기 쉽다. 이른 성공을 이룬 예술가들이 요절하거나, 그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하 얼마이던가. 집안 배경 덕에 이룬 표면적 성공 역시 본받을만한 건 못된다. 재벌가의 볼썽사나운 이권 싸움이 가십거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문장 재주가 좋아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면에 소홀한 채 자신의 능력에만 기댈 경우 시샘의 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이제껏 내 허영심 때문에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픈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결코 이룬 적 없는 그 욕심을 점차 내려놓도록 연습해야겠다. 맛 나는 요리엔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다.  훌륭한 맛을 내려고 이것저것 재료 욕심을 내다보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좋은 재료를 쓰겠다는 욕심을 뺄수록, 잘 쓰겠다는 조바심을 버릴수록 원재료에 가까운 맛을 얻는다. 음식이든 글이든 더해서 얻어지는 것보다  덜어서 내는 맛이 더 원초적이고 담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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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2-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 님, 이 페이퍼 정말 좋네요. 닿을 수 없는 협곡 같은 절망,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덜컹이는 것 같은 표현이에요.

다크아이즈 2013-02-24 12:02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의 글이 제게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비할까요. 알라디너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건 잘 읽고 잘 쓰는 분들이 너무 많아 매일매일이 충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처럼 될 수는 없지만 자극을 얻기 위해 이렇게 뒷전이나마 서성입니다. 샤이닝님이 찾아주셔서 몸둘 바를^^*

세실 2013-02-2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핀 만남의 꽃 즐거우셨나요?
전 팜므님이 먼길 와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제게 여행은 설레임입니다^^
오늘은 저도 여행한 느낌 ㅋ

다크아이즈 2013-02-24 12:14   좋아요 0 | URL
세실님 즐겁다 마다요. 그 만남에 취하느라 이제 알라딘 문을 두드릴 여유가 생겼다는... 저질 체력이라 조금 앓느라 마구 잤답니다.
그날 넘 무리하신 세실 님 덕에 전 편한 여행했지만 몸살 나셨을 거예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엔...
제게도 여행은 설렘입니다. 특히나 세실님처럼 미인이 친절할 경우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라로 2013-02-2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참 좋습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쓰시면서 너무 가혹하신 거 아니십니까??ㅠㅠ

다크아이즈 2013-02-24 12:18   좋아요 0 | URL
용기 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비님처럼 고수가 넘치는 이곳에서 쓰기는 어렵기만 합니다.

피곤끼는 좀 덜하신지요?
후기까지 올리시느라 힘드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