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말로써 기능할 때 가장 말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편타당한 말의 태생적 효용을 구차하게 설명하려는 것일 뿐 실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말로써 제 말을 다 부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제 가슴 속의 말을 전하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그 산물로서 미술,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한 때 아내였던 신시아에게 존 레논은 이렇게 말한다. 젊어서 성공한 것이 기쁘다고. 그들 곁에 아들 줄리안도 있었고, 적어도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겠다. 사람들은 평생 성공할 때를 기다리며 살지만, 그것을 얻었다고 만족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라고 한 평생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직조하는 대부분의 우리를 향해 존은 서늘한 통찰의 한 마디를 던진다.

 

  존의 이 말이 내겐 성공한 자의 비애로 들린다. 존의 표현에 의하면 비틀즈는 애초에 큰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차트 정상에 올라보는 소박한 꿈이 있었을 뿐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결과 뒤에 환멸과 자기정체성의 혼란이 따라온 것.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때는 돈도 필요 없다. 존도 물질적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대가로 당연히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성공한 자인 존에게 말은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기쁨을 맛보진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정한 대화보다는 무례한 행동에 노출된 그로서는 대화만큼 요점 없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언어로서의 말은 가장 느린 대화의 형태였다. 진정한 대화는 음악일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음악적 유폐를 고집했다. 가령 존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존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페퍼 상사’ 앨범의 한 곡을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예술작품 그 자체이니.

 

 

 

 

 

 

The Beatles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페퍼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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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2-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예술인들, 특히 인기면에서 정상에 자리에 오른 자들에게 진정한 말, 진정한 대화는 자신이 속한 예술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의 손길이 고픈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예술이 있기에 그들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술이 있기에 그들이 살고, 그들이 살기에 예술이 살고... 저도 그런 자들 중 하나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저 예술이 저의 말이 되는 삶이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5:01   좋아요 0 | URL
앗, 이 무슨 텔레파시??
저 방금 이진님 서재에 가서 비밀글 남기고 왔단 말예욧. 크~~
이진님도 설 잘 보내셨지요?
저도 오늘부터 서서히 움직일라구요.
새학기 시작되려니 일거리도 몰려오기 시작해요.
남은 이월 달 알차게 보내요. 우리...

라로 2013-02-1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아니 저도 비틀즈의 앨범을 다 들으면서 그들이 뜻밖에 '외로움'에 대해 많이 노래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에게 '진정한 대화는 음악'이라는 말씀이 팍 와 닿네요.

저는 덕분에 설 잘 보냈어요, 팜님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위에 답글 다신 것 보니까 바빠지시려나 봐요??? 바빠지시기 전에 프님이랑 함께 만나고 싶은데….^^;

2013-02-1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4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2-1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한 꿈을 이룰 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
3월은 더 바빠지나 보네요, 저는 3월엔 프리랜서로 살려고요.^^

다크아이즈 2013-02-14 00:38   좋아요 0 | URL
소박한 꿈도 못 이루고 세월만 갔어요.
우리(!) 일이란 게 학기가 시작되면 좀 바빠지잖아요. ㅋ
프리랜서 순오기님 추카하옵니다. 프리랜서가 운신하기엔 좋지요? 안 얽매여도 되고... 같이 파이팅해요^^*

페크pek0501 2013-02-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글 많이 쓰셨네요. 님의 숨은 저력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요.
어떤 주제로 쓰든 글이 술술~~ 풀리는 걸 축하드려요.
알라딘에 들어오는 재미 중 하나가 님의 글을 읽는 것, 을 추가합니다.
설날은 잘 보냈나요?

님의 글은 '그냥 헛짓'의 글이 아니옵니다. ^^ㅋㅋ

다크아이즈 2013-02-14 19:50   좋아요 0 | URL
페크언니님, 단상을 쓰긴 하는데 건질 건 드물다는 ㅠ
그리고 늘 글 쓰는 게 어려운 것도 제 한계랍니다. (체력, 에너지 모두)
페크 언니 글 보면서 힘을 얻고 용기도 내고 그런 걸요.

그냥 헛짓, 저 말 아마 버나드 쇼가 한 말 같은데 시니컬한 게 맘에 들어서 따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