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알라디너 분께서 책을 보내주셨다.

어린양을 위해 책 선물을 아끼지 않는 분인 것 같다. 

그 분은 내가 즐기는 댓글놀이도 하지 않는다.

알라딘 고수분들 중 몇몇은 그 단계의 소소한 위안을 넘어섰기 때문에

댓글 교류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대놓고 덧글 단 분이 아닌 님께서 보내준 두 권의 책과 가지런한 손편지.

눈길에 우체국까지 가서 손수 주소를 쓰고 포장을 했을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님께 당장 보답하는 건 님이 바라는 바도 아닐 것 같고,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보답하겠다.

내가 생각해놓은 다른 분께 릴레이로 내 가진 책을 보내드리려고 한다.

 

읽어서 간직하고팠을 글줄에 붙인 미니 포스트잇의 숨결까지 사랑스럽다.

나보다 먼저 아들이 읽기 시작했다. 아들 끝난 뒤 언제 시작하게 될 지 모르지만

고마운 선물은 원래 완벽히 못 가져도, 쳐다보기만 해도 므흣한 법이다.

님 잘 볼게요.^^*

 

근데 어째 두 책의 제목이 부조화의 조화미를 강조하는 것 같구나.

안녕 다정한 사람아, 악녀를 위한 밤을 꾸려 봐.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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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2-06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이 담뿍 느껴지는 선물인 걸요, 자필편지까지!
저도 어서 댓글교류의 소소한 위안을 넘어서야 할텐데, 아직 댓글 교류에 집착하는 걸 보아 어리긴 어린가 봅니다. 아마 아드님은 <악녀를 위한 밤>을 읽고 있나요. 울 엄마도 저런 책 많이 갖고 있어요. 저는 안 읽는데, 엄마는 재밌어 하더라구요. ㅎㅎ

다크아이즈 2013-02-12 13:58   좋아요 0 | URL
이진님 어머님 감각도 무척 젊으시네요. ^^*
당근 울 아들 악녀를 위한 밤 읽지요. 설 즐기느라 아직 덜 읽었는데 지금도 읽고 있네요. 크~

꿈꾸는섬 2013-02-0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죠. 근데 알라딘에서 선물받으면 더더더 좋더라구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3:59   좋아요 0 | URL
네 꿈꾸는 섬님이야말로 책 선물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저도 받은 만큼 나누려 노력하고 있어요.

라로 2013-02-07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책을 보내주신 분을 저도 알 것 같아요.^^
저에게도 그런 고마움을 갖게 하신 분 같은데,^^;;;
예전엔 알라딘 지인들이 책을 보내주신다고 하면 덥석 받았는데 작년부터는 보내주신다고 해도
거절한 적이 대부분이에요.
받는 것보다 줄 것을 걱정해서 그런 걸까요??어느새,,, ㅠㅠ


다크아이즈 2013-02-12 14:02   좋아요 0 | URL
네, 나비님께도 그 분이 책 선물 많이 하셨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주신다 하면 받고 또 보답하고 그러면 될 것 같아요.
되돌려주는 수고도 아직은 작은 기쁨인 날들이라고나 할까요.
나비님 이력 쯤 되면 당근 그런 부담 느끼실 것도 같아요.
설 잘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여긴 간간이 눈발 흩날리옵니다.^^*

2013-02-0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애덤 스미스의『도덕 감정론』을 펼치다 보면 그가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라는 걸 알게 된다. 중등교육 과정을 거친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 경제의 원리를 전파한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도덕 감정론』이나『국부론』에서 그것에 할애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 감정론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는 개인의 사익에 기초한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사회 공동의 이익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말할 만큼 철학자로서 할 말이 더 많았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 지닌 도덕적 본성 및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도덕 감정론은 인간의 이기심이 공감이라는 사회구성의 합의를 획득할 때 공공선이 될 수 있다는 논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이 ‘오만과 허영’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바라본 오만한 사람은 표리부동하지 않다. 근거 없는 자기 우월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는 것만큼 타인도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우월함을 타인이 느끼게 하기 보다는 그 우월감 때문에 타인이 비굴함을 느끼게 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한다. 예를 들면 그런 사람들에게 다정한 눈길은 스마트 폰에다 고정시키는 것이라서, 타인이 와도 시선 한 번 맞춰주지 않는다. 자신이 발언권을 행사할 때가 되었을 때야 유일한 다정한 눈길의 대상인 스마트 폰을 거두고 거들먹거림을 권위로 포장해 일갈을 해주신다. 불행하게도 그때의 청중은 그에게 비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약자들이란 점.

 

 

  반면에 허영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하다. 자신의 우월성을 확신하진 않지만 타인이 그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자들이다. 자신이 가진 색깔 이상으로 화려하게 타인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이때 공정한 관찰자가 자신이 가진 본래의 색깔로 봐버리기라도 한다면 수치와 모욕을 느낀다. 예를 들면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다 어떤 날에는 누굴 만나고, 어딜 가서 뭘 먹고, 저기 가선 뭘 봤는데 매일매일 신나. 넌 이런 재미도 모르지? 하는 투로 필요 이상으로 키치적 도배를 하면서 그것을 봐주기를 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허영심의 노예일 가능성이 높다. 주례사 같은 인사용 댓글에 도취해 자신이 진짜 괜찮은 사람인줄 착각한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오만한 사람은 흔히 허영에 차 있으며, 허영에 찬 사람은 흔히 오만하단다. 오만과 허영이란 두 가지 결점은 동일한 캐릭터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확연히 구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로서는 허영의 천박한 과시욕구와, 오만이라는 가소로운 무례함이 결합되었을 때의 그 캐릭터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복합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오만과 허영의 캐릭터가 확연히 구분된다. 오만한 자는 안으로 들끓어 달뜨지 않고, 허영끼 있는 자는 밖으로 끓어 넘쳐 붕붕 떠다닌다. 다만 둘 다 청중들로부터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큰 목표 중 하나인데, 그것이 ‘가상의 공정한 관찰자’ (supposed impartial spectator), 또는 ‘가슴 속에 있는 이상적 인간’(ideal man within breast)의 눈에는 온당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는 지나친 자기비하 보다는 지나친 오만이 낫다고 보았다. 과도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는 스스로와 공정한 관찰자 모두에게 덜 불쾌하다고 보았다. 이 글이 쓰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오만하고 누구나 허영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비하하고 누구나 자책만 하는 사람에 비하면 허영과 오만이 있는 자가 더 솔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발전가능성만 보더라도 오만파가 자기비하파에 비하면 높지 않겠나. 잘난척하는 밉상보다는 짜증나는 진드기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걸 이백여 년 전 애담 스미스도 갈파한 것일까. 앞머리에서 말한 인간의 이기심이 공감이라는 합의를 획득할 때 공공선이 될 수 있다는 논지가 여기에도 적용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만과 허영과 자기비하와 자책이 뒤섞여 있는 캐릭터들이다. 하기야 그런 평범한 경우라면 애초부터 애덤 스미스의 눈길을 끌진 못했겠지. 이백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데 흥미로운 여러 정보들을 제공한다는 게 신선하기만 하다. 아울러 애덤 스미스 곁에서 여러 인간 군상의 모델이 되어 주었을 당대의 주변인들이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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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2-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서재에서 도덕감정론 소개 받고 당장 구했어요.
완벽하게 이해하긴 힘들지만 이런 책 진짜 괜찮아요.
모두 커버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한 부분 맘에 드는 것 단상으로 끼적이기에도 너무 제 식이라 애덤 스미스를 이해하고 썼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소득.
인간 군상에 대한 여러 생각을 알고 싶은 분들께 강추합니다.
더불어 오렌님 고맙습니다.^^*

oren 2013-02-06 21:49   좋아요 0 | URL
팜므님께서도 『도덕감정론』을 사서 읽으셨군요. 이 책은 인간 내면에 깊숙히 감춰진 '도덕감정'을 너무나 깊이있게 통찰한 글들이 많아서 저 역시 '철학책' 가운데 깊게 매료되었던 책이에요. 제 덕분이라는 특별한 댓글까지 남겨주셨는데 이 책을 읽고난 '기쁨'과 '공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라는 책에도 애덤 스미스의 이 책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 나와서 더욱 반가웠답니다.

* * *

아주 중요한 감정인 공감은 사랑의 감정과는 별개의 것이다. 어머니는 잠자는 아기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 아기에게 공감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개에 대한 인간의 애정은 공감과는 별개의 것이다. 주인에 대한 개의 애정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베인도 주장했듯이 일전에 아담 스미스는 공감의 기초는 우리가 과거에 고통스러웠거나 즐거웠던 상태를 강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배고픔, 추위, 피로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그러한 상황을 회상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생각만으로도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괴로운 감정을 동시에 없애고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도 동참하게 된다.21)

21) 아담 스미스가 쓴 『도덕감정론』의 인상적인 제1장을 참조하시오. 베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감은 그것을 베푸는 자에게 간접적으로 기쁨의 원천이 된다." 그는 이것을 호혜주의에 입각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이익을 얻은 사람은 공감과 받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모든 희생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사정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공감이 전적으로 본능이라면 동정을 베푸는 일은 앞에서 언급했던 거의 모든 본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감을 베푸는 자에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줄 것이다.(179쪽)
- 제4장 인간과 하등동물의 정신 능력 비교(계속) 中에서

다크아이즈 2013-02-12 14:48   좋아요 0 | URL
오렌님 오랜 만이에요.
오렌님 덕에 좋은 책 곁에 두고 곱씹고 있어요. 넘 어렵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오렌님이 작성하신 페이퍼는 고단수라 저와는 격조와 품위가 다르네요.^^*
추천 많이 받을 만하네요. 설 잘 보내셨지요?^^*

oren 2013-02-0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만과 허영'에 관한 대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페이퍼'를 하나 쓴 적이 있었는데(2011-03-13 01:33) 정말 뜻밖에도 '추천수 40'을 기록했답니다. 아마도 제가 쓴 글 가운데 '최다' 추천수를 기록한 글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글에 그토록 추천수가 많았다는 게 저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만과 허영'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놀라운 통찰'에 많은 알라디너 분들이 '공감'해 주셨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 * *
알라딘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오만과 허영'에 관한 이야기
http://blog.aladin.co.kr/oren/4625433

라로 2013-02-07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에 이어 팜님까지!!!
저도 올해 안으로 꼭 저 책을 사겠습니다. 불끈

다크아이즈 2013-02-12 14:49   좋아요 0 | URL
나비님 이 책 흥미 있어요. 단, 욕심을 버린다면. 크~~
나비님도 설 잘 보내셨지요? ^^*
 

 

 

 

 

 

  1. 시누이 자랑

  전통적 가족 제도의 보편적 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스스럼없기란 쉬운 게 아니다. ‘친동생처럼 대한다’는 시누이의 말은 ‘딸처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 만큼이나 공허할 가능성이 높다. 혈연으로 맺어진 감정과 사회적 계약 관계에 의해 생긴 그것은 심리적·정서적 출발부터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시누·올케 관계는 ‘스스럼없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리라.

 

 

  내게도 시누이가 한 분 있다. 손위인데 예의 친자매처럼 흉허물 없는 관계는 아니다. 나이 차가 있는 시누이를 내 쪽에서 어려워하고 존경한다면, 당신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역할이다. 시누이 노릇 한답시고 내게 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을 압박하거나 눈치 비슷한 거라도 준 적이 없다. 이십여 년 동안 한결 같은 배려와 관용으로 대하신다.

 

 

  통념상 해야 할 며느리의 도리마저 시누이가 저 만큼 앞서서 본보기를 보이신다. (실은 내가 안 하거나 못하니까 시누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의 물리적·정서적 지원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올케인 나의 정신적·심리적 상담자까지 자청하신다. 시누이로서 올케에게 왜 서운한 감정이 없겠는가. 한데 천사표 시누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해버리면 서운한 것도 잠시다.’ 라고 말하는 분이다.

 

 

천성이 고운데다, 자기 수양의 모범을 보이는 분을 시누이로 만난 건 내겐 큰 복이다. 가끔씩 남편이 힘들게 할 때도 ‘아참, 내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시누이가 있었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이다.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처럼 까칠하고 칠칠치 못한 이도 시누이라는 바람막이 덕에 적어도 나쁜 며느리는 면하고 산다. 내 깜냥만으론 어림도 없다. 좋은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 흉내 내기란 얼마나 쉬운가. 내가 며느리로서 평균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오롯이 시누이 덕이다.

 

 

 

 

 

 

 

 

 

2. 불안 - 폐쇄공포증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당황할 때가 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과 맘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MRI 촬영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게 경미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건 여러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폐쇄공포증세에 비하면 그것은 천국이었다.

 

 

  좁은 원통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대로 40여 분을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과 마음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친 듯이 벽을 두드려 위급함을 알렸다. 탈출을 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사람 제법 있다며 촬영기사가 위로를 해준다. 항불안제를 맞고 재촬영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좀 진정이 되자 멍청하고 창피하단 생각에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사전 설명 없는 가운데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다. 좁고 폐쇄된 공간 자체의 위압감, 바깥과의 소통 단절에 대한 불안,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어쩌지 하는 걱정, 등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급작스런 불신감으로 불안해할 수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데 그것이 과하다 싶으면 스스로 당황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리적·유전적 요인, 과거의 경험, 현재의 정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불안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내가 시원하게 모르니 더 불안하다. 이토록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었나, 이런 불안감을 스스로 자초한 건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왜 몸과 마음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지, 하는 혼란스러움이 한동안 휘젓고 다닐 것이다.

 

  여기저기 불안의 시대를 살다보니 몸과 맘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팽팽하게 부푼 풍선 같은 맘 걷어 내고 그 자리에 낭창거리는 버들가지 하나 내다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고로 긴장은 불안을 낳고, 여유는 안심을 낳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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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3-02-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내려주신 시누이시네요~~
팜님께서도 고운 성품이시라 주거니받거니 하시는것 같은걸요!
갑자기 팜므느와르님이 부럽부럽!
한동안 바쁠것같아요~밀린 팜님의 글들 읽어봐야해서요!

다크아이즈 2013-02-06 23:51   좋아요 0 | URL
데이지님 하늘이 내려준 시누이는 맞아요.
저는 성질 좀 더럽습니다. ^^* 크~~
전, 남편 자랑은 안 해도 시누이 자랑은 절로 되어요.
친구들이 부러워하긴 해요. 시누 복 많다고요.
데이지님은 제가 좋아하는 꽃이 데이지니 무조건 좋아할래요.
블루데이지가 있다는 게 신기신기... 봄 오면 데이지꽃 모종 사러 갈거예요.^^*

프레이야 2013-02-0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 전 없지만 제 올케에게 좋은 시누이인지는 잘 모르겠어요.ㅎㅎ 좋은 시누이도 팜님 복이죠. 근데 어디가 편찮으신거에요?

다크아이즈 2013-02-06 20:24   좋아요 0 | URL
시누이와 동서는 없는 게 좋다는 속설이 있으니 프레님은 좋아해야 하는 건가요? 크~~
프레님은 당근 좋은 시누이지요. 알라딘에서 우리들께 하는 것만 봐도 정감 있고, 사려 깊고, 글 잘 쓰고... 님 같은 시누이 만난 님의 올케도 행운일 걸요^^*


라로 2013-02-07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누이가 둘인데 손 아래야요. 그런 것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대부분 시누이 좋다시는 분들은 손 위가 많은 듯요. 어쨌거나 대한민국에서 시누이 복 있는 분이 드문 걸로 아는데 팜님은 큰 복을 받으셨네요!! 그런데 어디가 아프세요??? 저도 MRI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던데, 40여분이라면 그런 공포심을 충분히 느끼실만하세요!!! 저도 짧은(얼마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이상하던걸요!!!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팜님 아프지 마세요!!

라로 2013-02-08 02:43   좋아요 0 | URL
제가 40분이나 하는 MRI 한 적이 없다는 입찬소리를 했더니 오늘, 아니 어제 그보다 더 긴 촬영을 했지 뭡니까!!! ㅠㅠ 그런데 가만 보면 팜님과 제 일상이 어딘지 모르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이런 현상을 뭐라 해야 할까요??? 님의 글을 읽으면 다음 날 비슷한 일을 겪거나(이건 처음이었지만 너무 충격적이라) 아니면 제가 겪거나 생각한 일에 대해서 글을 올리시는;;;이건 뭐 SF소설도 아니고;;;ㅎㅎㅎㅎ 근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5:52   좋아요 0 | URL
나비님, MRI 촬영 심리적으로 힘들지 않으셨나요?
저는 앞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 긴장하고 있습니다.
죄 진 게 워낙 많아 그런지 목을 죄는 듯한 갑갑함과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오지 뭡니까. 맘을 느긋하게 먹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건 그렇고 나비님 일상과 제 일상이 어딘지 모르게 겹치는 이 느낌, 전 기분 좋은데요. 데자뷰 현상도 아니고 이런 걸 심리학적으로 뭐라 일컫는 말이 있지 않을까요. 흐흐~~

꿈꾸는섬 2013-02-0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 자랑하실만 하네요. 저도 시누이가 있긴한데, 손아래임에도 편하지가 않아요. 또 저도 다른이의 시누이인데, 우리 올케언니께 전 어떤 시누이일까 궁금하네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4:50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원래 손아래시누가 더 불편할 것 같아요.
저도 시누이이기도 한데 좋은 시누이는 전혀 아니고 무관심 시누이는 맞는 것 같아요. 그들이 하는 일을 시누는 몰라도 좋다, 뭐 이런 마인드라고나 할
까요. ^^*
 

 

 

 

 

 

 

 

 

 

 

 

 

 

 

 

 

  쓴다는 게 뭘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형식 상 잘 쓰는 것과 내용 상 절절하게 쓰는 것은 다릅니다. 잘 쓴 글은 시샘을 유발하고, 절절하게 쓴 글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물론 잘 쓰면서 절절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글쓰기는 작가들에게도 쉽지는 않겠지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잘 쓴 글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글을 더 좋아합니다.

 

 

  오늘 어떤 분을 급히 만나야 했습니다. 글쓰기 대회 입상자인데, 그 글을 활자화하기엔 비문이 많아 퇴고할 기회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입상자 참 잘 뽑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새벽마다 신문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본보기도 될 겸 다이어트도 할 겸, 즐거운 맘으로 새벽 공기를 가른다고 합니다. 이것만도 대단하다 싶은데, 아직 받지도 않은 제법 많은 상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모처와 약속을 했답니다.

 

 

  아주 세속적인 저는 그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워 정중함을 가장한 오지랖을 떨어보았습니다. 글쓰기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데, 상금의 일부분이라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요. 어디 제 말이 씨알이라도 먹혔겠습니까. 그분 왈 “그 상금 제 것 아니에요. 글을 쓰게 한 주변 것이지요.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얼음주머니로 머리 한 대 맞은 듯한 명징한 떨림이 밀려왔습니다.

 

 

  그분에게서 새삼 확인했습니다. 잘 쓴 글은 기법상의 하자 없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깃든 내면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글임을. 돌아오는 길 혼자 중얼거립니다. 착한 사람들이 정직한 비문(非文)으로 제 안의 나무에 꽃을 피울 때, 그렇지 못한 저는 경직된 완문(完文)을 찾아 저 밖의 태양을 좇고 있더란 겁니다. 그래도 욕망투성이 스스로를 보편적 인간이라 달래며 부끄러워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이분 같은 이들을 존경하고 칭송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안의 찌꺼기 하나를 털어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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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하신 팜님!!^^
글 잘 읽었습니다. 허접하면서 비문투성이 글을 써대는 저에게 위로가 되면서, ㅎㅎㅎ
팜님 글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신다고 생각하오니 믿어주세요.^^;;;
--팬으로부터

다크아이즈 2013-02-06 10:3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제가 더 팬인걸요. 크~
저야말로 모래알 서걱이는 건조 투에다 비문은 밥 먹듯이 생산해요.
문체나 문투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노력은 하는데 쉬운 게 아닌 걸 보니 그게 내 한계다 하고,
가는 거죠. 뭐^^*
오늘은 날이 많이 맑아졌네요. 나비님 더불어 제 맘도 맑아지길...

순오기 2013-02-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에 쓰는 글도 불특정 다수가 읽다 보니 나를 숨기거나 꾸미게 돼서 스스로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활자화 되는 글은 나를 100% 드러내자니 부끄럽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니 진정성이 떨어져 감히 내놓지 못했던 일이 있었지요.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건지 새삼 깨닫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2-06 10:4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하모요!
숨기거나 꾸며야지 살아남을 구멍이 있지,
자신을 향해 너무 아프게 찌르거나, 타인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면 그 둘다 상처가 되지요. 그 적당선이 문제이긴 한데 그 조율이야말로 개성적 글쓰기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프레이야 2013-02-0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사람들이 정직한 비문(非文)으로 제 안의 나무에 꽃을 피울 때, 그렇지 못한 저는 경직된 완문(完文)을 찾아 저 밖의 태양을 좇고 있더란 겁니다.

팜님의 이런 문장 때문에 팬을 자처하는 거 아시죠?!!~~
글쓰기 책이 아무 소용 없는 이유 중 하나이겠지요.^^
늘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다크아이즈 2013-02-06 10:44   좋아요 0 | URL
프레님, 기다렸어요.
평안한 여행하신 것 같아 느낌이 좋아요.
칭찬해주시니 넙죽이요^^*
하지만 저 심정이 솔직한 제 맘이라고 생각하면 갑갑합니다.
다 버리고서야 뭔가를 얻을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하는 마음 하나... 휴ㅠ

페크pek0501 2013-02-0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저는 부끄럽사옵니다.
반성할 점이 있네요. 반성 반성...하옵니다.

다크아이즈 2013-02-06 10:47   좋아요 0 | URL
페크언냐가 반성할 일이 뭐간디요?^^*
열심히 앞서가는 님을 본보기로 자분자분 걸음질하는 저 같은 이도 있는걸요.
크~~

Jeanne_Hebuterne 2013-02-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결국 모든 글이 지향하는 그 목표는 바로 진정성인가 봅니다.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리도 부르짖었던!

다크아이즈 2013-02-06 20:41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글치요? 진정성...
진정성에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글쓰기의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 문장까지 되면 금상첨화구요.
그나저나 전 김연수는 적응되는데 김중혁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두 작가 되게 친할텐데 방식은 전혀 다른 게 더 매력적이네요.
좋은 밤 보내시어요.^^*
 

 

 

 

 

 

                                                         <같은 집 다른 의자>

 

 

 고갱 의자                                                           고흐 의자

 

 

 

 

 

 

 

 

 

 

 

 

 

 

 

 

  둘만 되어도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되어 있는 게 사람이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 적당한 거리 확보 없는 모든 관계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이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하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는 더 아름답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두 해바라기라는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고갱 해바라기

 

 

 

 

 

 

 

 

 

 

 

 

 

 

 

 

 

 고흐 해바라기

 

 

 

  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고수레라도 해야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이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렇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의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그토록 오래토록 기억해줄 것인가.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위쪽 고갱의 롤랭부인, 아래쪽 고흐의 롤랭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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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1-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옥이어서 그에 걸맞는 타인을 끌어들인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흐와 고갱은 그만큼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
이 아침, 팜므 느와르 님이 포스팅해주신 해바라기가 참 좋아요. 해바라기는 늘 슬픈 꽃이지만 그래서 더 좋습니다. 잘 보고 가요!

다크아이즈 2013-02-02 22:07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우리 자책은 하지 않기로 해요. 제가 자책의 대마왕녀인데, 정신 건강에 별로 안 좋더라구요. 제 영혼을 갉아먹느니 뻔뻔한 무심함이 더 나을 때가 많잖아요. ㅋ

님 말씀처럼 고흐와 고갱은 서로 필요충분조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모든 관계의 저울추가 공정하지 않듯이 주도권은 고갱이 쥐고 있었다는 생각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가 승자라고 보통이 말했던가요. 크~
좋은 밤 보내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3-02-05 08:3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아마 고갱은 고흐를 백 번 만나도 백전불패 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무림의 고수는 아니지만 세기의 만남은 때로는 제 머릿속에서 이렇게 유치하게 재생되어요.
보통은 역시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흑.

다크아이즈 2013-02-06 10:53   좋아요 0 | URL
암요, 고흐가 백전백패지요. 크~
사회화 과정에서 관계 설정이 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천성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고갱 같은 사람은 누굴 만나도 백전불패의 권좌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 캐릭터요...

오늘 갑자기 보통의 불안, 이 읽고 싶어지는 것 있지요. 휴 ㅠ

순오기 2013-01-3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저렇게 다르게 표현한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워요!
고갱과 고흐 사이에도 '갑,을'의 관계가 형성됐을 듯...^^

다크아이즈 2013-02-02 22:0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맞아요. 약간의 갑을 관계...
이 둘의 의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요.
순오기님도 편한 밤 지내시길...

꿈꾸는섬 2013-02-0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과 고흐, 재밌는 페이퍼네요.^^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남네요.^^

다크아이즈 2013-02-02 22:1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가끔씩 남푠과 자식조차 지옥일 때가 있는데, 제삼자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크~
통찰 깊은 사르트트의 지나친 진솔함이 죄라면 죄일까요. 크~~
꿈꾸는섬님도 오늘밤 멋진꿈 꾸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