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졸업 축사

 

 

 

 

 

 

 

 

 

 

 

 

 

 

  졸업 시즌이다. 마침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지라 오랜 만에 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다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졸업식 분위기였다.

 

  하 수상한 시절 탓인지 그때의 식 절차는 얼마나 까다롭고, 방식은 얼마나 딱딱했으며, 시간은 또 얼마나 지루했던가. 별 의미도 없는 사전 연습을 몇 번에 걸쳐 해야만 했다. 연단에 올라 졸업장과 상장을 받아 옆구리에 끼는 팔의 각도까지 담당 선생님이 정해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리허설을 되풀이하곤 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창의적이지도 않았고 운치도 없었다. 초대 손님의 축하 인사말은 겉도는데다 그 대상도 불분명하기 일쑤였다. 강당도 없는 운동장에서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데 요즘 졸업식 풍경은 그때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우선 주인공인 졸업생을 충분히 배려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 한 명마다 선생님들은 어깨를 보듬고 덕담을 건네신다. 교장 선생님 훈화는 딱딱하지도 틀에 박히지도 않았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손님도 교육계 인사라 현장성이 있었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담임선생님들의 격려 말씀 또한 현실적이고 유머가 깃들어 있다.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진다.

 

 

  여러 말씀 중 귀담아 들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백두산에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아느냐고 한 선생님이 운을 떼신다. 비행기로 가는 것도, 헬리콥터를 타는 것도, 남다르게 보폭을 빨리 하는 것도 아니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이 가장 빨리 백두산에 오르는 비법이란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져, 지루할 틈이 없다나. 교장선생님은 사회에 나가면 꼭 존경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 셋은 만들란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란다. 두 분 다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란 말씀이렷다. 졸업 축사로 이보다 더한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도 없다 싶다.

 

 

  시대 흐름에 따라 유연해진 졸업식 풍경에 훈훈해진 하루였다.

 

 

 

 

2.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사회에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본인 및 자녀 군필 문제는 그들의 국가관 및 도덕성 유무를 판단하는 가장 큰 잣대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에 비해 그들의 군 면제비율이 월등하게 앞선다. 합당한 사유가 있고,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누군가 대변해준다고 해도 그조차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 가지 더. 암 투병 중이던 유명 엔터테이너가 끝내 사망했다. 안타까운 사실 앞에 각종 커뮤니티마다 추모의 물결이 파도를 이룬다. (악플러들이야 원래 악플을 다니 별도로 하고.)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잠재적 악플러였던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너무나 진지한 애도자로 돌변한다. 악성 댓글을 부추기거나 동조했다는 것을 잊은 채, 현상적 악성 댓글을 달았던 치들을 향해 보란 듯 정의의 투사로 자리를 바꿔 앉는다. 자명한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관대한 보시를 연출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이때껏 구설에 오른 고위 공직자 후보 아들은 합리적이든 불법이든 스스로는 군 면제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강권이나 환경적 습득에 의해 군대 가는 것보다는 가지 않는 것에 길들여졌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간 당사자를 기만했던 사람들일수록 ‘애도라는 무한한 연민’의 탑승권을 얻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무죄함을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악플러요’ 하고 대놓고 내지르는 사람들이 일관된 악역을 자처한다면, 악플러가 아닌 척 위장한 악플러들은 이율배반적 자세를 취하고 만다. 그리하여 저 관대하고 무한 발산하는 애도의 행렬조차 그 순수성에 불온한 혐의가 덧씌워지는 것이다. 아프고 힘들 때 적었던 친구들은 명백한 죽음 앞에서는 어째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 친구 아니었던 사람 없는 우리의 값싼 애도에게 애도를!

 

 

  내 욕망은 순수한 내 욕망이 아니다. 내 내면의 의지가 바라는 모든 욕망은 실제론 타자가 욕망하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의 타자성에 대해서 라캉은 ‘주체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타자 속에서이다.’라고 말했다. 군대를 면제 받고 판검사가 되거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취직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타자의 욕망 일순위에 그것이 있으니 따를 뿐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원했던 것처럼 길들여진 개별자는 착각할 뿐이다.

 

 

  잠재적 또는 교묘한 악플러들이 선플러로 둔갑하는 것 역시 내 마음이 움직여서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애도자의 눈길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타자의 욕망이 길을 터줬다. 그 길 덕에 잠시나마 선플러로 위장을 해서 자신의 죄사함이란 숨구멍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개별자의 자아는 스스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다듬어지거나 만들어진다. 타자의 욕망을 넘어서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회복하는 길은 쉽지 않다. 쉽기는커녕 우리 스스로 그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타인의 욕망, 즉 부모의 욕망, 사회의 욕망이 정해놓은 길을 추구하다 보면 자아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

 

 

  타자의 욕망은 안정된 길일 수는 있어도 진정성이 담보된 길은 아니다. 그 둘 간의 대립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 일상성의 조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면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대부분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타자의 욕망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라캉의 말대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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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1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의 졸업을 멀리서나마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 게임만 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실 건 아닐듯하옵니다. ㅋㅋ 언제 또 그렇게 놀아보겠어요!!! ㅎㅎㅎ

타자의 욕망에 길들어 오늘 하루도 마감한 것 같아요. 타자의 욕망이란 어쩌면 인간의 간사함일까요??? 오늘도 화두를 던져주시는 팜님~~~ 깊은 밤 평안한 잠드시길 바랍니다.^^

2013-02-15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1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롭고 멋진 출발! 축하드려요^^
목욜 학수고대하며~~~ ㅎㅎ

다크아이즈 2013-02-15 18:20   좋아요 0 | URL
축하는 이등이고 ㅋ
넹 당근 일등은 목욜 기다리면서 열심히 사는 것. 프레님도 뭔진 모르지만 상큼하게 털어내시고 밝고 환하게요, 우리^^*~~~ 크~

이진 2013-02-1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 이걸 왜 못 보았으며 그러고보니 졸업이라는 걸 왜 까먹었던 걸까요.
일단 아드님의 졸업을 축하드려요! (그런데 문득 생각하는데, 제가 아들분을 아드님이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답니다. 형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아드님, 하면 어른 같고... ^_^)
엊그제가 저희 학교 졸업이었는데 오랜만에 학교에 모인 선배들은 머리가 온갖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개중에는 형광빛이 나는 빨간색도 있었고, 연예인들이나 한다는 보라색 머리도 있었고. 그렇다구요. 저도 친구에게 졸업 시즌이 되면 하얀 색으로 염색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안 어울릴 거 같아요.

한 번 더 축하,

다크아이즈 2013-02-16 23:25   좋아요 0 | URL
이진님, 당근 아들과 이진님은 친구지요.^^*
머리 염색 전 강추요. 근데 이진님께 흰색이 어울릴까?
생기발랄한 색으로 변화를 주는 건 대환영이에요.
자고로 범생이 틀에서 약간은 벗어나줘야 글도 잘 되어요. ㅋ

순오기 2013-02-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 많으신 선생님들의 틀에 박힌 훈화도 이젠 바뀌어야 아이들에게 먹힐 듯해요.
아드님 졸업 축하합니다~~~~~~ 대학은 원하는 곳으로 진학햇겠죠?^^
어제 막내한테 들은 고3 담임샘 말씀~ 아직은 조심스런 접근이라 배려하는 듯한 언어표현에 아이는 마뜩찮아 하길래 한달만 지나면 서로 본성이 드러날거라 얘기하며 웃었어요.

다크아이즈 2013-02-19 09:13   좋아요 0 | URL
원하는 곳에 갔을 리가!
그냥 타협하는 거지요. 뭐.
순오기 언냐 님은 꼭 잘 다독여 막내 원하는 곳에 진학 시키시어요.^^*
본성을 드러내야 고3 선생님으론 적격일 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