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왼손잡이 로망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지는 왼손잡이였다. 상냥하고 눈치가 빨라 선생님들께 귀여움을 받았다. 그녀가 선생님들께 관심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이 썩 호의적인 시절이 아니었다. 왼손잡이라도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썼다. 품위 있는 학문의 길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기성세대의 생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짝지는 희소가치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짝지는 공책을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돌려놓은 채 옛사람들처럼 위에서 아래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오른손잡이처럼 바르게 공책을 놓고 쓰면 왼손바닥에 연필 자국이 새까맣게 묻을 뿐만 아니라 노트에도 글씨 얼룩이 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짝지 곁을 지나칠 때마다 지휘봉으로 꺾인 노트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얌마, 오른손으로 바꿔 써!’ 한 마디씩 하는 선생님의 말씀은 시비나 훈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애정과 관심을 향한 것이었다. 짝지는 그 상황을 매번 즐겼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았다. 공부는 나보다 못한 짝지가 그토록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는 건 오직 왼손잡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이었으니 나남할 것 없이 젊고 패기 넘치는 남자선생님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데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왼손으로 글씨 쓰는 짝지에게만 가 있었으니 질투와 부러움은 당연했다. 게다가 눈치 빠른 짝지는 오후에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이 있으면 교복 블라우스를 빨아 입을 정도로 유난을 떨었다. 내가 보기엔 그 교복이 그 교복인데 짝지에게는 안 빤 교복과 빤 교복은 달라 보이는 모양이었다. 노골적으로 그 상황을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짝지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짝지와 무척 친했기 때문에 오직 짝지 같은 상황을 겪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면 짝지 따라 노트를 비스듬히 놓은 채 왼손 글씨를 써보기까지 했다. 심하게 왼손에 어눌한 내 왼손 글 솜씨가 늘 리 없었다. 여전히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짝지에게만 가 있었고, 내 왼손잡이 로망은 그렇게 한 계절 실습으로 끝나고 말았다.
왼손잡이가 못 된 나는 아직도 그것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다. 해서 아들과 딸이 왼손잡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 은근히 서운하기까지 했다. 왼손잡이가 못 되어 선생님들께 관심 받지 못한 나를 아이들에게 투사하고 싶은 욕망이 은연 중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한때의 경험 한 자락이 평생 자기 인생관에 녹아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직도 나는 새로운 왼손잡이를 만나면 ‘글씨도 왼손으로 써요?’ 라고 묻는 버릇이 있다. 상대의 대답이 아니라고 하면 괜히 실망하게 된다. 왼손잡이는 나의 로망이었고, 여전한 로망이기도 하다.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가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건 왼손잡이어서 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겠다. 예쁘고 상냥한데다 영민했던 짝지는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염세적이고 냉소적인데다 소심하고 어리바리한 모범생이었던 나에 비해 예쁘고 상큼하고 털털하고 눈치가 빨랐던 짝지를 좋아하지 않았을 선생님이 어디 있었겠는가. 아직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을 어린 나이였기에 나는 짝지의 ‘관심 받음’이 단지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제 밥 그릇 제가 챙기고, 제 사랑은 제가 얻는다. 짝지가 누린 사랑과 관심은 제가 가진 역량 때문이지 결코 왼손잡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제 역량을 발휘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지 극히 일부분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각설하고 그래도 왼손잡이에 대한 내 긍정의 로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맙긴 하다. 아직도 나는 왼손잡이를 만나면 그들이 글씨마저 왼손으로 쓸까, 궁금해진다. 내게 진정한 왼손잡이란 글씨까지 왼손으로 쓰는 자여야만 한다. 거기다가 상냥하고 영민하기까지 하다면 왼손잡이에 대한 나의 로망은 완성되는 것이다.
2. 인사
<파울 클레 - 인사>
술을 잘 못 마시더라도 술잔을 들어야 할 경우는 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의 작은 행동 때문에 더 좋아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그분은 건배가 있을 때마다 내가 든 술잔 높이보다 낮은 높이로 자신의 술잔을 부딪는 것이었다.
우리사회처럼 은연 중 위계질서가 몸에 밴 곳도 없는데 연배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분이 내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은 재미로 그러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몸에 밴 자연스런 제스처였다. 조그만 데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나는 세 번째 잔부터는 무조건 그분보다 낮게 들었다. 그분이 눈치 채지 않게 속으론 끙끙댔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동판화 중에「인사」라는 작품이 있다. 키가 크고 군살이라곤 없는 두 남자가 서로 낮게 인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있는 힘껏 앞으로 꺾어 바닥과 친구가 될 정도다. 하지만 얼굴은 서로의 옆모습을 향해 치켜들고 있다. 서로 계급이 낮다고 생각해, 한껏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상대를 의식하고 눈치를 보느라 차마 얼굴까지는 숙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까지 낮아진 게 아니라 몸만 낮아지는 인사의 겉치레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관계란 상대적이다. 상대 쪽에서 ‘적의 없음, 배려할 것임. 군림할 의향 없음, 낮아질 것임, 친구가 되고 싶음’ 이런 신호를 보내오면 내 쪽에서도 당연히 더한 우호와 존경으로 상대를 대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면 클레의 그림처럼 형식적인 것이 되지만 맘이 원하는 대로의 배려는 무척 자연스럽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눈높이는 상대와 맞추고 술잔은 낮게 들어보자. 단, 고개를 지나치게 숙일 필요는 없다. 비굴을 감춘 게 들키거나, 과장된 마음이 드러나면 명징하던 술잔소리도, 맞춤한 눈높이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리니. 술잔 낮게 들고, 눈높이를 상대에 맞추러 오는 세상의 모든 친구들과 건배를!
3. 용서의 시효
누구나 실수한다. 실수나 상처가 당사자들에게 큰 아픔이긴 해도 그 자체가 문제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그 후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란 게 간사해서 받은 상처는 잦고 깊고, 준 상처는 드물고 얕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용서는 쉽게 받고 싶고, 용서 하기는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준 상처 중 가장 잊히지 않는 건 건 얌전한 모범생을 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자전거 도둑으로 몬 경우였다. 그 아이와 부모의 눈빛이 나를 용서하지 않았기에 그건 아직 미완의 사죄로 남아 있다. 그들의 분노와 응어리가 현재진행형이라면 당연히 내 사죄 또한 그러해야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용서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역시 내가 판단할 것은 못 된다.
영화「밀양」에서는 신이 용서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피해자를 또 한 번 수렁으로 빠뜨리고,「내가 살인범이다」에서는 공소시효가 면죄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피해자와 관계자를 농락한다. 출옥한 범인이 ‘봐라, 법과 대중이 날 이렇게 용서하는데, 당사자인 너희들만 용서 못하고 있잖아.’ 라는 뻔뻔함으로 용서의 칼자루마저 자신이 가지려 한다.
용서의 시효는 가해자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용서의 아버지는 시간이다. 정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하면 피해자가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려주는 게 양심 있는 자의 태도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잘못을 해놓고도 용서의 시효마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자숙 기간이나 용서의 시효는 한 사흘쯤이면 충분한 것일까. 용서의 기간이 단축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급기야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반문하기까지 한다.
법적용서는 공소시효가 정하고, 하늘나라에서는 신이 용서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엔 시간이 용서한다. 그 시간을 정하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피해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성찰할 일이다.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른 피해자인척 하는 건 상처 입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