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불편한 돈의 교양 -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살기 위한 리스타트 이코노믹스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음 / 청림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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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개 반이 있었다면 그리 찍었을 것을. 몇몇 이야기는 지나치게 희망적이거나 원론적으로 받아들여지나 몇몇 정보는 유효하고 의외이며 여러 관점을 반추하게 만든다. 각자의 취향, 관심에 따라 분명 주효한 챕터가 몇은 있을터(개인적으로는 마블링의 거짓과 의류업계, 키오스크 이야기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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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윈터 에디션)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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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 ‘쓸모‘라는 단어에 주력한 책. 왜 지금 과거를 복습해야 하는지, 먹고 살기 바쁜 지금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둥글고 부드럽게 답하는 역사 에세이. 다만 너무 부드럽고 관대하다보니 몇몇 생각은 다소 미묘하게 위험한 소지를 갖는지라 갸우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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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예전엔 수첩을 썼고(지금도 손글씨로 쓰는 간단한 일기는 병행한다) 지금은 엑셀파일로 한 해 동안 본 영화나 책, 다녀온 전시회나 여행 일정 등을 정리한다. 사실, 모르진 않았다. 모를 수가 없다. 알라딘 페이퍼나 리뷰만 뒤져봐도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다'라는 염려와 민망함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머릿속을 잠시만 뒤져도 반성할 거리가 넘쳐나니. 헌데 이렇게 잘 정리한 표로 보면 더욱 참담하다.


그러던 와중 모종의 자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분에 작년보다는 조금 더 나은 독서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봤자 8월에 간신히 네 권을 읽었고 이 페이퍼는 기억을 돕기 위한 일종의 기록의 장치다. 



  완벽하게 잘 만든 걸작이 아님에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작품들이 있다. 박민정 작가의 『미스 플라이트』역시 그렇다(그렇다고 이 책이 형편없거나 별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엄청난 대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조심스러운 서사와 담백한 진심에서 굉장히 진한 울림을 느꼈다. 또한 이 책이 그 즈음, 시기적으로도 그 당시에 나왔어야 할 책이라고 평한 것도 이해가 간다.


방산 비리, 군대 문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간질하게 만드는 직장내 문화, 성희롱, 사회적 타살, 갑질 문제 등등. 온갖 뜨거운 감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이 크고도 작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솥에 들어있는 감자를 집다보면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뜨거운게 아파서인지 눈물이 찔끔 난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들 하지만. 사는게 사는게 아닐 땐, 가버린 사람은 어떻게 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살아내야할까. 



  『팩트풀니스』역시 책 소개 페이지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13개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다소 놀라운 정답에 대한 결과로 천천히 이끈다. 이 책의 요지는 한 가지다. 긍정보다 부정이 인식체계에 더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언론과 통계는 공포를 조장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대부분이 짐작하는 것보다 세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서양의, 그것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스웨덴 사람이라는게 아이러니하거나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혜적인 태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흥미로운 결과가 많았다.


유행성 질병이나 테러, 자연재해보다 알코올과 교통사고,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높음에도 대중은 전자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공포를 가진다는 사실,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에서 탄소배출량이 높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사실 1인당 배출량을 계산했을 때 열강의 서구국가들이 훨씬 더 높은 수치를 가진다는 것과 현재 인구 분포도와 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패권은 100년 안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옮겨갈 거라는 예측, 생리대 회사들은 여성들의 임신하지 않을 자유를 위해 더 힘쓰는게 이익을 위해 낫다는 주장과(임신을 하면 약 2년간은 생리대 사용이 멈추기에 피임을 할수록 오히려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종교과 관계없이 소득이 자녀의 숫자를 결정한다 등 어떤 것은 '당연히' 그럴만하고 어느 것은 다소 놀랍거나 의외로 와닿는 수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세계의 80% 1세 이하 영아들이 하나 이상의 예방접종을 받으며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중간 소득 국가에 해당한다. 


이렇듯 세상이 내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는 차근차근한 주장은 분명 마음이 놓이는 말임에도 이상하게 읽고나선 다시 우울해졌다. 왜냐하면 한국은 고소득국가, 4단계 발달 단계에 해당하기 떄문에 우리는 대부분 가난하지 않음에도 가난하기에 나 역시 가난이 몸 담은 소속 자체가 다를 뿐 여전히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구매할 책이 있어 알라딘에 들어왔다 이 책의 광고를 읽었다. 자신의 독서량과 집중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일 뿐 스스로가 의지만 가지면 얼마든지 '전처럼'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저자는 생각했다. 이론을 점검하기 위해 실험을 했으나 이럴수가, 몇 페이지를 읽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폰을 힐끗대거나 메일을 확인하고는 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른바- 인생의 책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는 지지부진한 서사를 가진 책으로 느껴진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정확히 지금의 내 상황 아닌가. 이 책은 책을 읽는 뇌와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뇌는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고 대조하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만큼의 균형을 책으로 맞추지 않으면 뇌가 완전히 불균형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또한 책을 읽는 방법이 e-book인지 종이책인지에 따라 글을 습득하는 방식과 양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며 책읽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성인 또한 뇌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졌기에 영유아와 청소년들에겐 책을 읽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설명한다. 


책의 설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짐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책이긴 하나 대부분의 독자가 막연히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실을 수치로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가치가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줘야 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동화책에는 일반적이로 쓰지 않은 글귀들이 등장한다는 주장이었다. '옛날 옛적에', '소스라치게 놀라','환상적인' 이라던가 심지어 '마녀'나 '변신'이라는 단어조차 비일상성의 일상성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골자다. 즉 이야기의 메시지 말하자면 교훈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단어의 사용 또한 못지않은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는 요새 아이들은 책을 주면 터치를 한다는 점이나 자꾸 책을 확대하려고 검지와 엄지를 벌린다는 이야기, 글로 쓰여진 설명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면 알아듣는다는 보고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책을 읽는 내 자신의 집중력이었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가 했던 경험을 공감하며 읽으면서 정확히 같은 태도를 취했다. 책으로 풍덩 뛰어들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8월은 4권의 책으로 느리지만 천천히 물들었으므로 그것만은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팩트풀니스』에 그런 글귀가 있었다. 더딘 변화라 하여 불변은 아니다. 세상은 천천히, 분명 좋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고 내 독서생활도 다시 느리지만 분명하게 회복하고 있으니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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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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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이다그러나 새삼스레 한 해를 돌아보며 열정적인 후회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민망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나이를 곱씹으며 과장한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 한다아마도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태도의 변화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그러니 마찬가지로 한 해를 보내며 읽어야 할 마지막 책이라며 호들갑 또한 떨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며칠 전 터미널 앞 카페통유리로 된 창가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부러 장소를 선정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니나 읽다보니 이보다 더 적합한 순간이 있을까 낯선 감탄이 일었다. 12스산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간헐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으로 새어들어오고 먼지처럼 내리는 눈발을 간간이 내다보며 읽은 책은 소설가 손흥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었다. 

 

첫 챕터를 읽은 후 책의 앞날개로 돌아가 작가의 나이를 돌아본다. 1975년 생한참 젊은 나이다이문구와 오정희. 처음 떠올린 것은 둘이었고 그 다음엔 지금은 신축으로 공사한 옛날 큰아버지 댁이었다소와 여물이 있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그래서 언니가 가기 싫어했던 집이었다기껏해야 우리가 그 집에 가는 것은 일 년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이었음에도 그 냄새와 마당의 진흙과 예쁜 눈을 가졌던 소의 눈은 여전히 기억이 된다외갓집은 그보다 나았다꽃이 있고 털이 하얀 강아지가 있었고 할아버지의 자전거와 호미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 곳엔 어린 사촌동생이 타던 낮은 장난감 자전거도 있었다. 어떤 것들은 아주 사소하지만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그리고 문득 어떤 냄새공기날씨를 보며 그 날을 떠올리게 된다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아스라한 향수정확히는 거기 있었던 지도 몰랐던 어린 날의 어떤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다


우르슬라에 비유한 고모의 죽음이나 그녀들의 아들들과 딸할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 함께 소의 궁둥이를 밀어 트럭으로 싣고 장에 나갔다가 소머리국밥을 먹고 온 일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이견과 그 사이에서 시소를 타야 하는 자식으로서의 태도와 외동의 난감함 같은 것건봉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산수유와 감옥에 갔던 일과 하다못해 이스탄불에 체류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작가에겐 오래된, 빛 바랜 냄새가 났다. 이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도시에 대해 쓰는 작가들은 차고 넘치고 특히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도시의 삶과 그 진절머리에 천착한 이야기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마흔 다섯(내일이 새해라는 것을 감안, 한 살을 높임을 사과한다)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린시절과 자신의 삶에는 갖은 냄새와 촉감과 추억인지 향수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했다. 그게 낯설었고 동시에 신선했으며 조금 부끄럽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아마도 넛할아버지는 아직도 캄캄했을 새벽에 집을 나섰을테고 초겨울 짧은 해가 지고도 밤이 이슥해질 무렵에야 그 집으로 돌아갔을 테다오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을 오직 누이의 얼굴 한 번 보고 손등 한 번 쓸어보기 위해 다니는 이 없어 쌓인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누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곶감을 지게에 지고 걸어왔을 넛할아버지.


혈통처럼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사연처럼 쌓이고 해가 저문다삶이 이슥해지는 시간들사소하고 비범한 우리의 노년이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그러나 문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공통의 기억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글을 읽는 내내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니, 사실 겨울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평생을 기척도 없이 살다 가신 분인지라 강렬한 기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 문득문득 미안하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숨을 쉬는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 분의 삶의 태도같았던 날숨과 뻣뻣하게 자란 하얀 머리와 막내딸과 손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이 잠시 흐른 뒤 춥지 않느냐, 밥은 먹었느냐 묻던. 그리고 이제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가족들 중 누구도 보지 못한 저 먼 곳에 걸린 현수막도 읽을 수 있는 시력으로 굳어가는 다리 때문에 집 밖으로는 혼자 나가지 못하는 분. 옆에 놓인 고무나무 화분처럼 해가 있는 곳에서 늘 바깥만 바라보는. 거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비죽 눈물이 나온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신기한 일 중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해선 한없이 메말라있는데 어떤 부분에선 믿을 수 없게 눈물이 쉽게 나온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다. 그 책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필멸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못내 서럽다.

 

문학은 언제나 가망이 없었을 따름이며 문학을 죽음 직전에서 일으켜세우는 건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나의 환멸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그해를 지나쳐 더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이 무언지 모르던 시절까지 혹은 문학이 생겨나기 전에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이 없는 그곳에 이르면 아마도 누군가는 기어이 그곳에서 문학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묵새기고 앉아 문학을 이야기할 것이며 설령 벽도 천장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혹은 오르지 별과 달만이 머리 위에 빛나고 있을지라도 그 별과 달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독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에 환멸을 느낀 자가 가까스로 참고 견디며 하는 일임을.

 

글을 쓰는 사람은 흔히 남김없이 쓴다 해도 결코 완전하게 쓸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적게 쓴다 해도 너무 많이 쓰게 되리라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이들 역시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으리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편의 글이 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글의 틈이나 군더더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소거하며 읽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작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그것으로 충분하겠냐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그 수동적인 행위로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힐난도 해보고 적당히 구슬려도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도무지 나는 대답이 없었다. 자주 그러했다.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는 신중함을 방패 삼아 게으름을 정당화했고 어차피 안 되었을거란 불분명한 절망을 근거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허나 열심히, 꾸준히 쓰는 사람들 앞에서 늘 똑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서러울 것 같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터키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오르한 파묵이 아니라 아지즈 네신이라고 말하는 작가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 없이 12월에 멈춰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무척 불편했던 영화를 만든 작품의 신작 포스터를 보고서 나쁜 작품을 쓰는 것보다는 나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계절이 있었다. 그 때부터 작게나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것도 아니고 등단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그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견디는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그런 해였다. 여전히 문장은 헤지고 형편없지만, 쓰고자 하는 욕심의 절반도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절룩거리면서도 무언가를 썼다는, 도마뱀의 꼬리보다도 짧은 안도감. 작가가 쓰는 소설가의 일, 문학의 자격,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좋은 문장을 쓰는, 이처럼 편안하게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것 같은 글을 쓰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그렇다면 내 고민 따위는 너무도 당연하다.


기꺼이 나이를 떠올리지 않고 지난 해를 후회하고 앞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실은,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것을 가까스로 인정하면서 어쩌면 작위적인 태도보다도 지금 이 인정이 나이를 먹는다는 진짜 물증일수도 있겠다. 그래 12월은 어쩔 수 없이 향수와 서글픔과 울음의 계절인가보다. 그리고 겨울을 관통하는 이 시기에, 따뜻한 차 한잔과 조금의 눈물과 함께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12월 31일이다. 또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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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Shining 2019-01-03 09:41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늦었죠ㅠㅠ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많이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요 :D

2019-02-02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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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해야 할, 반드시 필독해야 하는, 한 번은 봐야 할 등등의 표현을 싫어한다. 강요를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가끔 영화나 책을 읽으며 특정 타깃층을 겨냥해 쓸 때가 있다. 이런 식이다. 영화학도라면 혹은 시네필이라면 아마도 좋아할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자서전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물론 만족스러울 것 같지만 특히 영상연출을 다루는 사람들에겐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영화자서전이라는 표현이 돋보이는데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개인사 등은 배제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와 영상)의 이야기만을 다룬 게 인상적이다. 아마도 원고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기억을 기반하여 현재에 썼을텐데도 정말 1995년이나 2005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더 진심으로 담은, 귀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영화의 집필 시기가 달라지는 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는 등의 이야기가 가끔 더해질 때) 그의 영화가 그러하고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사로운 이야기는 배제했지만 돈과 투자영화제와 시상은 물론 자국의 상황과 비판도 빼곡이 들어있기에 영화 바깥에 이야기에 주목해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처음엔 자신 역시 서툴렀고 어렸지만(그런데 허오 샤오시엔과 이미 알았던 사이... 지아장커와 사진 찍으신 분...) 영화제란 마켓이기 때문에 에이전트와 단합해서 공략을 해야 한다는 것과 3대 영화제 등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서도 서술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그 중에서 한국의 이야기도 몇 번 등장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와 연혁은 물론 외압으로 인한 문제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데다 심지어 지지성명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게다가 한국의 영화학교나 영화아카데미외국으로 진출한 감독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영화산업을 꽤 중요시하며 착실히 발달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놀랍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은 언제고 대두되고 개인적으론 근래 2,3년 간 절실히 느끼지만 그런 우리나라의 실정도 일본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애니메이션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만이 남아서 일본배우들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한국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지칭하며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는 평도 들었었다단순히 영화제에 진출하고 상을 받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영화가 얼마나 사양길에 들었는지를 들었었지만 이렇게 일본의 감독에게서 들으니 또 남다르다(하긴나만 해도 한 때는 구로사와 아키라미조구치 겐지오즈 야스지로오시마 나기사이마무라 쇼헤이구로사와 기요시미이케 다카시이와이 슌지 등의 영화를 봤지만 요샌 ......정말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만 봤다그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오기가미 나오코와 나카시마 테츠야 정도였나). 


이를테면 제 어머니가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전쟁은 도쿄 대공습뿐이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타이완과 한국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그랬다면 지금쯤은......” 하고 주눅 들지도 않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명백히 피해 감정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아버지는 식민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는데타이완 시절의 행복했던 청춘가 이야기와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하며 시베리아로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그 사이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본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말하지 않았습니다개인의 수준이 이러니 당연히 일본사 자체도 그런 형태를 취하겠지요. ‘가해의 기억은 없던 셈 치거나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정색하거나 불문에 부칩니다즉 나라 전체가 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작품 제목으로 붙인 망각은 그런 점을 가리킵니다헌법 제9조는 대담하게 말하면 성서에서의 원죄가 아닐까요요컨대 가해를 망각하기 쉬운 국민성에 대한 일종의 쐐기로우리가 항상 죄의식을 자각하며 전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닐까요(중략그러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라고 아무리 말한들 국제적으로 이해받기 어렵습니다적어도 어쩌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졌을지도 모를 중국인과 한국인은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011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일이며 일본의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 등을 담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말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영화를 무슨 생각에서 생각에서부터 시작했고 어떻게 살을 더했는지. 투자를 받은 곳과 어째서 제작이 늦어졌는지. 캐스팅은 누구를 만나 누구를 소개받고 어디에서 보고 누구를 원했는지 등등.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해, 책을 쓴 시점에선 아직 영화화 되지 않은 <세 번째 살인><어느 가족>을 제외한 모든 영화의 비하인드가 꼼꼼하게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도중 더해진 사건이나 시간으로 인해 바뀐 설정은 물론 장소 섭외와 콘티까지 빼놓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의 경우에 아이들의 어떤 모습이 캐스팅과 시나리오로 이어졌는지도 꽤 상세히 써놓았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전공으로 삼았던 사람인지라 픽션을 연출할 때 어느 정도의 간섭과 작위가 허용되는지는 물론 피사체에 대한 예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기도 하고 그 영화는 실패했지만 그 때 느꼈던 것들을 다음 영화에 좀 더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취가 있었다는 단단한 소감도 읽을 수 있다(ㅇㅇ작품은 실패했습니다, 라고 본인은 느꼈지만 주변에서 조언하길 ㅇㅇ영화를 함께한 배우, 스탭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가 된다는 말을 듣고 수긍했다는 것도 재밌다. 그러더니 20년이 지난 영화이니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요?라고 하는 것 또한). 이쯤 되면 거의 영업 비밀을 다 담은 셈인데 이걸 읽는다 해도 그만큼 영화를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밝힐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감독의 팬이라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책이 즐겁겠지만 만약 전작을 다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지 않을까. 내 경우에도 감독이 다큐멘터리 PD출신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데다 <디스턴스>와 <태풍이 지나가고>는 아직 보지 못했고 <공기인형>과 <하나>역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때문에 아직 보지 않은 두 영화의 챕터는 읽지 않았고 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지 텍스트만으로 화면을 전달받기 어려워서인지 TV드라마의 에피소드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 그 외의 이야기들, 어쩌면 몇 개의 챕터만으로도 분명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 말했듯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꼭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라면 한 번쯤 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영화를 봤다면 이 책 역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리라 지레 짐작해본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누가 옳고 그르다든가,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든가, 아이를 둘러싼 법률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나 교훈이나 제언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서 사는 듯이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을 그들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의 말을 독백(모놀로그)이 아닌 대화(다이얼로그)로 만드는 것. 그들 눈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제가 원했던 건 이러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통상적인 픽션 연출에서는 드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발견한 대상과의 거리를 잡는 방법이자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이고, 취재자로서의 윤리적 자세입니다. (중략) 그 시도는 마지막까 제대로 관철했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도 모른다> 챕터 중 

 

자잘한 디테일은 그다음에 채워 나갔습니다. 가령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나온다면 어머니가 심술궂게 트는 것일 테니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겠지...... 라든가, 식사를 한다면 모처럼이니 내가 좋아했던 옥수수튀김으로 할까 등등. , 먹는 장면은 밤의 장어 요리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요리를 하거나 치우는 장면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편이 등장인물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 장면에서는 먹는 것보다 준비와 정리가 중요하단느 점은 무코다 구니코 씨의 흠드라마에서 배웠습니다.     - <걸어도 걸어도> 챕터 중 

 

이처럼 저의 경우, 주제는 찍기 전에 아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자잘한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가운데 생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제나 메시지는 저 자신이 의식하고 있을 뿐이라서 인터뷰할 때도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작품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나 생각하는 게 반영되어 있을 테니 구태여 말로 표현함으로써 제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 외의 주제나 메시지가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재는 채워지는가. 채워지지 않는가.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덧)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지만 그 화자가 창작자 본인인데다 불편한 자만심이나 공허한 자기혐오, 공연한 자기연민이 배어있지 않은 어조라 인상적인 한편 읽는데 부담이 적었다. 게다가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영화가 궁금해진다. 궁극의 셀프 세일즈이자 영화자서전이란 말이 딱이다. 혹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더 영화가 보고 싶어질까 싶어 열심히 스틸컷을 업어왔다. 나는 팔게 없어 나 대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팔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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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2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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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9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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