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 먹고 나면 식곤증이 몰려온다. 잠깐 한숨 붙이고 일어나면 열시 반쯤. 더 이상 잠 들지 못한다. 이제 밤을 꼴딱 새기만 하면 된다. 몇 달째 이어지는 나만의 루틴. 밤 새 할 일은 쌔고 쌨다. 글쓰기 프로젝트 수행도 하고, 읽은 책 리뷰도 정리하고, 새 책도 고르고, 사념에 시달리기도 하고.
여섯 시, 사과와 토스트 각 한 조각을 차려서 침대 머리맡에 가져간다. 남편이 아침 먹는 그 때가 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남편 말에 의하면) 매번 자신이 사과를 다 먹기도 전에 나는 벌써 골아떨어진단다. 출근 배웅 같은 건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대개 일어나면 열시 전후. 코로나 때문에 바깥 활동을 하지 않기에 늦잠이 가능하다. 어제도 밤을 꼴딱 샜다. 토요일이라, 정시에 출근용 아침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 침실로 갈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7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전화 한 통에 잠을 깼다.
지인이 잠깐 내려오란다. 책 몇 권을 드리기로 했기에 부은 눈은 안경으로 가리고, 떡진 머리에다 (잠옷 위에) 파카를 걸친 채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인의 양 손에는 큰 김치통이 들려 있다. 김장을 했단다. 당장 먹을 맛보기용 김치까지 김치통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다. 내 몰골을 보더니, 눈치까지 빠르셔라. 긴 말 하지 않고 후딱 사라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코로나를 들먹이며 자주 만나지 못한 내 여유없음이 부끄러웠다.
집에 올라와, 달리 인삿말이 생각나지 않아 '살림 거덜 낼 일 있냐'는 핀잔 섞인 카톡을 보냈다. 김치통은 안 줘도 된다, 는 무심한 다정의 답 톡이 왔다. 이럴 땐 부러 김치통을 비워 급히 되돌려주지 않는 게 예의다, 라고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김치통 김치가 익어가고 김치통이 빌 때까지 유쾌한 숙제를 지니게 되겠지. 무엇으로 빈통을 채워 되돌려줄까 미소 짓는 숙제.
2. 급히 우체국에 들러 알라딘 님들에게 책을 보냈다. 다정한 안부도 이쁜 말들도 넣지 못했다. 받는 분들은 이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첫날, 책 알림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몇 분께도 보내드렸다. 주소가 안 맞아 못 보낸 한두 분께는 다음 주 내로 다시 보내드리겠다. 책을 보내드렸기 때문에 책 안내글은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비공개로 돌렸다.
3. 북플에서 8년 전 오늘의 글이라면서 글이 뜬다. 내 옛글은 거의 클릭하지 않는다. 이건 이상한 경험인데, 옛날 글을 보면 지금은 저처럼 못 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이 덜 절실하기 때문에 글이 잘 되지 않는다는 심정이랄까. 그때도 힘들게 썼지만 지금도 쓰는 게 힘들다면 굳이 짊어지고 갈 필요가 있을까, 늘 그런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쓰기를 멈추진 못한다.
너무나 좋아하는 알라디너 한 분께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재미있는 덕담을 해주셨다. 내 에세이보다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솔직히 뜨끔했다. 어쩔 수 없이 에세이를 쓰지만, 언제나 내겐 에세이가 더 어렵다. 자기 검열, 문장의 밀도, 진솔함, 인품 등등 에세이에서는 살피고 따지고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시중에서는 붓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장르는 아무나 써서는 안 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기질상 소설이 딱이다. 감추지 않아도 되고, 다 드러내도 되고, 비틀어도 되고, 불편해도 되고... 소설의 강점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나 스스로 소설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힐링이 되는 부류이다.
그 님께 2년 뒤에는 제 소설을 만나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응원해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니 계속 쓰는 일만 남았구나. 장편이 될지 소설집으로 묶을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4. 알라딘에서 몇몇 지인을 사귀고 좋아하게 된 데에는 <올리브 키터리지> 덕이 크다. 알라딘 하기 전에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몰랐다. 이렇게 '아련 돋고' 저렇게 가슴 저미는 작가라니! 그 책을 프레이야님이 선물해줬는데, 첫 챕터 약국, 만 읽고 바로 빠져 버렸다. 왜 그 책을 선물해줬는지 알 것 같아 마구 껴안아주고 싶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원서로 읽고 낭독으로 듣는 라로님과도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났을 때, 언니, 올리브 키터리지 몇 번이나 들어도 좋아요. 언니도 들어 봐요. 했는데 너무 슬펐다. 까막귀가 원서 히어링이라니. 그 정도는 될 거라고 단정 짓는 라로님의 순정을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 두 분과 친한 오기 언니와 세실님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지금은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게다가 알라딘 말고도 여러 소셜 매체가 있으니 그쪽으로 옮겨 탄 이도 있다.) 난 다른 곳은 하지 않으니 소통하려면 싫으나 좋으나 알라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옛글들을 보면서 십 여년이 되어 가는 그때가 다들 알라딘 시절의 피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몇몇 터줏대감 빼고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다. 알라딘을 꿋꿋이 지키는 몇 분들, 진짜 존경스럽다. 한결 같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각설하고, <올리브 키터리지>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소설이다. 독서회에서 이 책을 권했을 때, 열광하는 이는 한 분도 못 봤다. 앨리스 먼로 작품을 더 쳐주는 눈치였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시리즈로 방영된다고 언젠가 라로님이 말했다. OCN인 것 같았다. 넷플릭스에는 안 올라와서 무지 서운하다. (지금은 되는지 모르겠다.) 혹, 올리브 키터리지 한국어로 방송되는 매체 아시는 분 덧글 달아 주시면 감사. 유튜브에 감질맛나게 올라오는 것 이 년 전인가, 본 적 있는데 그것만 봐도 눈물 날 것 같더라. '강' 부분이었던가.
어쨌든 <다시, 올리브>가 나왔다니 얼씨구나 지화자다. 바구니에 담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도라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