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우, 그미는 이중적 사랑의 대명사이다.
메피스토 출판사의 이 책을 'dasan'님이 보셨다면...(그는 표지 디자인을 보고 페이퍼를 올리시는데 안목의 깊음에 시사받는 점이 많다.) 혹평을 남기지 않으셨을까?
아마도 '제목의 뻘건 색'은 '선정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엽기적'이지도 않다고 말이지...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이 책을 속속들이 읽은 독자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이므로, 줄거리를 건너뛰는 리뷰는 무효라고 생각하므로...)
밀림같이 적자 생존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애정 시장의 절대 강자 '구우'는 양다리 걸치기 대장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구우의 미모는 주변의 남성들의 오후를 단박에 '하레(맑음)'로 만들 수 있을 지경이다.
축제를 빌미삼아 그미에게 접근한 남자는 둘이 있었으니,
늘상 꾸리꾸리한 '구우(흐림)'의 심기를 한꺼번에 '하레'의 쪽으로 돌린 사내가 <법대 수석>으로 유명한 '뻬빠'였다.
세상에 즐거울 일이 별로 없다던 심드렁한 구우에게 '메이 퀸'의 시대를 선사한 반짝반짝 빛나는 뻬빠의 존재는 구우에게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나를 불러 숨쉬게 한다는 통속적인 유행가 가사가 하루하루 구우가 눈뜨는 일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구우의 치명적 사랑인 뻬빠는... 법대 수석 졸업생이자, 고시 1차 패스를 이미 했고 2차 시험을 두어 달 앞두고 있는, 한마디로 욜라 바쁜고 시간없는 고시생이었다. 뻬빠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한들... 구우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도가 있었다. 구우는 뻬빠가 거는 전화를 받을 수 있을 뿐, 뻬빠의 스케줄을 깨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구우가 그토록 원하는 갑자기 나타나 놀래키기, 엽기 문자로 사람 시험하기, 안될 거 뻔한 시간인 줄 알면서 강제로 불러내서 코가 삐뚤어 지게 술마시게 해 놓고는 사라져 버리기... 시험 앞두고 갑자기 강릉 경포대 은빛 바다가 보고 싶다고 '선배, 나 가슴이 아픈거 같애' 이런 쌩쑈를 뻬빠에겐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구우를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어 갔다.
그렇지만 구우는 날마다 뻬빠가 고시 합격만 하면 그런 것들을 몰아서 와장창 해버리리라고 맘을 먹고 또 먹는 것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눈 아래 걸리는 초승달 문양의 다크 써클까지 무시할 순 없는 것이었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구우를 우울의 구덩이로 몰아 넣은 뻬빠를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구우는 매일 가슴에 멍이 들고, 쨍~~~하고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건 써프라이즈에서... ㅠㅜ)
기말 고사를 망치고, 집에 가기도 싫은데, 갑자기 이제 여름방학이란 생각에 발걸음을 향할 곳이 무연해진 구우... 시험을 망치고, 집에 가기 싫었을 때 가는 '오락실'에 가서 추억의 테트리스를 두어 판 하고 우울하게 나서는데... 오락실 밖엔 바로 1,2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든 소나기가 맹렬하게 내리 꽂히고 있었다.
우울한 구우. 이런, 줸좡. 만화 같은 데서 보면, 이럴 때 '우산, ...... 같이 쓰실래요?'하면서 캔디의 테리우스라도 나타날 법 하건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정말 그 소리가 현실로 재생되었다.
'우산, ...... 같이 쓰실래요?'
스틸 사진을 1초에 서너 장 넘기듯, 천천히 화면 효과를 유발하는 플래시가 넘어가듯, 뚜, 뚜, 뚜, 뚜 하고 고개를 돌린 구우.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높이 구두를 신을 자신이랑 비슷한 키의 남학생이 혼자 쓰기도 작아 보이는 투명 우산을 들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썩소'라고 일컫던 그런 표정을 안면 가득 머금고서...ㅠㅜ
그렇지만, 됐어요.
하고 나가기엔 소나기가 더욱 거칠게 땅바닥에 메어 꽂히는 상황에서 구우는 잠시 '아, 네'하면서 '감사합니다'도 꿀꺽 삼켰다.
구우의 집으로 오는 길에서 그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좁은 우산으로도 구우를 비맞지 않게 해 준 사내. 구우가 하숙집 앞에서 '이제... 감, 사 합니다.'하며 그와 눈을 맞췄을 때, 그의 웃음은 갑자기 소나기가 그쳤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맑았다. 돌아가는 그의 옷은 구우를 씌워준 왼팔을 제외하곤 흠뻑 젖어 있었고...
며칠 후 쌩뚱맞게도 구우네 써클에서 참가한 '농촌 활동'에서 구우는 다시 그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같이 구기자 차 잎을 따기도 하고, 콩밭을 매기도 하면서 그의 밝은 눈을 다시 읽는다.
그의 이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후배들이 그를 '리뷰 선배'라고 불렀다.
왜 별명이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도 책을 좋아해서 독후감과 사랑을 나누는 인종이라 그렇게 붙였단다.
구우... 그미의 마음은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의 뻬빠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땀흘리며 막걸리를 마시고는 목덜미의 수건으로 입가를 쓱 지워버리며 밝은 웃음을 비추는 썩소의 사내 리뷰를 혼자서 빙긋이 웃으며 바라본다...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지만, 구우는 '첫사랑'을 그리기에 적합한 청순 가련형과 극대극에 있는 존재다.
그런 구우를 사랑에 단련시키던 뻬빠... 그와의 미래가 장밋빛 미래라고 치더라도, 그는 항상 바쁘고 '바쁠 때 전화 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하는 구우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미에게 어떤 의사 표현도 하지 않았지만 구우의 마음은 그에게로 자꾸만 끌려 간다.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조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이다.
구우와 뻬빠와 리뷰의 뻔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먹는 일>과 <빌려서라도 써대는 일>에 몰두하더라도 진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얼굴 보며 웃을 수 있는 그것이란 사실을...
오늘도, 내일도 구우의 얼굴에 '하레'가 가득하길 바란다.
10만 힛!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졸업식날이라, 수업이 없는 관계로, 졸업생들이 간혹 인사하러 오면 손도 잡아보고, 하다가... 간간이 씁니다. 응모자가 너무 적으면 썰렁할까 싶어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