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이며 스스로 초래한 고통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면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삶의 수많은 고통이 자기 자신의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은 대부분 외부의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이는, 즉 우리가 믿거나 믿지 않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지요. 우리의 마음.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고통이 움을 틔우는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리지않는 한 그 생각은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이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더라도 아픔이 덜해지진 않습니다. 그 앎 자체로는 조금도 고통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고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믿지 말아야 하는 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149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 좋아합니다. 우리중 많은 이가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아가지요.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그렇게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좀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뭐지?‘ - P150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대체로 무관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누군가가 우리 생각대로 바뀌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라는 식이죠. 예컨대 ‘아빠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했어요‘, ‘명색이 친구들인데 그런 건 기억했어야 하는거 아냐?‘, ‘자식들이 좀 더 돌봐줬어야지‘, ‘상사가 그정도는 알았어야지‘, ‘배우자가 말이나 행동을 다르게 했다면‘ 하는 식이지요.
이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
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했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날뛸 때라도 할 수 있는일이 있습니다. 먼저 조심스럽게 한 발짝 멀어집니다. 그러고는 말하는 겁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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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130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130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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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슈퍼마켓
벤 밀러 지음,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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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고 또 읽었던 동화책들을 떠올리면 정말 잔혹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어린시절에는 그것이 잔혹한 이야기라는 걸 떠올리지 못했을까. 사실 난 이런 것들이 의문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이야기는 그런 부분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이야기들의 조합을 읽는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물론 잔혹함은 없는 이야기들이다. 피터팬이 아닌 후크이야기가 그렇고 슈렉도 정말 재미있게 본 이야기이다. 그런 내게 '그림형제 슈퍼마켓'은 왠지 기대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위험에 빠진 동화 속 세계를 위해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아야 한다"라니.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라나의 모험으로 시작된다. 조용한 마을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갑자기 '그림형제'슈퍼마켓이 생겨난다. 

라나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리틀 힐콧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하루 아침에 생긴 슈퍼마켓은 모두의 관심을 갖게 한다. 오빠 해리슨이 중학생이 되며 공부에 열중하느라 라나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들어 상심해하고 있는 라나를 위해 엄마는 슈퍼마켓에 간다. 그리고 동화책 한 권을 사 주게 되는데...


처음의 시작은 어른들의 탐욕, 자본의 마케팅에 속아 넘어가며 자원 낭비를 하는 부조리함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것은 정말 부차적인 이야기일뿐이었다. 엄마가 라나에게 사 준 동화책을 읽어주려고 하는데 뭔가 무서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 같아 읽어주기를 꺼리다가 결국 '잠자는 숲속의 공주'이야기를 읽어준다. 아홉살 라나에게 읽어주기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아 책을 감춰두지만 이야기가 궁금한 라나는 아빠를 따라 슈퍼마켓으로 갔다가 동화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동화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결론으로 이야기는 끝이나는가 싶지만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마법에서 풀려나 아토 왕자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지내다 궁전을 떠나 숲속에서 두 아이를 낳아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이름을 짓는다, 라는 이야기의 전개가 또 다른 흥미를 이끌어내고 있어서 이 이야기는 그때부터 더 큰 궁금증을 갖게 한다. 과연 라나와 해리슨은 헨젤과 그레텔을 어떻게 마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줄수 있을까.


이야기의 흐름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중학생이 되어 공부에 열심인 해리슨이 동생 라나와 놀아주던 때처럼 동화를 같이 읽고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 함께 모험의 세계로 뛰어든다든가 어려움에 처한 그들에게 해리슨이 배운 지식이 도움이 되는 걸 보며 라나 역시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든가, 슈퍼마켓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 너무 배가 고파 생각없이 젤리를 먹어버리고 계산대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교훈'이라거나 '도덕성'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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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지혜를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내면을 확장하고, 다른방법을 고안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셋이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119



푸와 피글렛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푸와 분홍색 수영복을 입은 피글렛이 눈앞에 선하지 않나요? 두 친구는 토끼네 집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 푸가 말했습니다. "토끼는 참 영리해."
"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 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 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 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봐."

- P120

누구나 이러한 ‘논리‘에 빠지곤 합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는 더욱 특정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해칠 수 있는지, 또 해로운 생각을 믿을 때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자초할 수 있는지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도 다음 순간 우리는 고개를 젓지요. 그래, 뭐 그럴듯하게 들리네. 하지만 이 생각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거야. 이게 사실이니까. 이게 옳으니까. ‘
그 순간 이미 좁아져 버린 자신의 관점에선 그게 사실입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옳아요. 하지만 그 확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설사 그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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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헬레나 애틀리 지음, 이석호 옮김 / 에포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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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크레모나'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이올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 본 '스트라디바리'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데 바로 이 유명한 현악기 제작자가 태어난 곳이 바로 크레모나라고 한다. 

이 책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은 저자 헬레나 애틀리가 어느날 우연히 듣게 된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을 받고 그 바이올린이 어디서 어떻게 제작이 되어 지금의 주인에게로 온 것인지,를 추적해 나간 이야기이다.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연주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연주자가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서도 감동이 달라질 수 있을텐데 저자는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레프의 바이올린이라 불리는 그 바이올린은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고 그 바이올린이 예상과 달리 무가치하다는 판단에 수긍을 할 수 없었다. 저자는 레프의 바이올린 제작자와 역사, 그에 얽힌 이야기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버릴수가 없어 결국은 그 바이올린의 기원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지 바이올린의 제작자를 찾아 흔히 말하는 '명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조금 허무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레프의 바이올린은 크레모나산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름없는 한 악공의 손에서 탄생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유명한 제작자의 레이블이 사라진 -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의 앞판이 한번 깎이면서 제작자 이름이 새겨진 부분도 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한다. 서두에서 시작하여 결론으로 치닫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바이올린이 떠나 온 길을 되짚어 찾아가며 저자는 악공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대적 상황과 연주자들에 대한 사히의 인식의 변화 등의 이야기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역사와 맞물리는 스토리 텔링으로 잘 풀어내고 있어서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으면서 새롭고 흥미로웠다. 

- 그런 예의 하나는, 사실 현시대에 스트라디바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스트라디바리의 악기가 유명해지고난 후 크레모나를 찾아가 스트라디바리우스 제작공방을 찾아보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저 스트라디..라는 사람의 집이 어디인가,할 정도로 의미가 없던 시기도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21세기에 몇백억을 호가하는 바이올린, 몇백년이 지나도 손상된 부분없이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온 전설의 '메시아'라고하지만 그 굉장한 바이올린들은 연주용이 아니라 장식용처럼 박물관에 전시용으로 보관될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악기들의 입장에서 행복한 일일까...에 대한 의문도 담겨있다. 


교회의 악기는 레이블이 없지만 그것이 교회의 청빈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세와 편법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교회전례 속 음악연주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어 흥미로웠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면 특송을 하거나 필요한 경우 초호화연주자가 전례에 연주를 할수도 있는데, 이것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고아, 장애인, 여성 등 힘없는 이들이 교회내에서 악기연주를 배워 연주자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역시 모든 세상일에 대한 양면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치하에서 유대인이 만든 음악을 유대인이 만든 악기로 유대인이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나치를 위해 연주를 해야했다는 아이러니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고.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은 클래식 음악, 클래식 악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도 꽤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사의 역사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어 책을 통한 즐거운 여행의 시간을 보낸 듯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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