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아홀로틀 이야기 재잘재잘 세계 그림책
린다 분데스탐 지음, 이유진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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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홀로틀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홀로틀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이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멕시코에 사는 도룡뇽의 이름이래요. 동화책의 표지에 떠억하니 조명을 받고있는 아홀로틀은 작가 '린다 분데스탐'이 저 먼 우주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아홀로틀을 그린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시대의 지구에 살고 있는 아홀로틀의 초상화를 그려넣은 듯한 사실감 넘치는 그림이었어요. 그러니까 지구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같이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요.


"옛날 옛적에 지구가 태어났어요. 뒤이어 바다와 땅이 생기고 작은 생명체들이 와글와글 재잘재잘거렸어요"

이렇게 '보송보송하고 까끌까끌하고 맨들맨들하고 따끔따끔한 덩어리'가 생겨나고 지구가 나이들어가면서 새로운 동물들이 생겨났는데 바보 같은 동물들만 점점 많아졌지요. 어느 날, 저 멀리 햄버거탑 뒤쪽 멋진 호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희귀하고 아름답고 작은' 아홀로틀이 태어난 것이지요. 


987개의 알에서 유일하게 태어나 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홀로틀은 세상 한구석에서 잘 지냈지요. 가끔 물 위로 올라가 우스운 바보들도 구경하면서요. 그 바보들이 호수에 흥미로운 보물을 던졌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홀로틀에게 정말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나는 아닐꺼라고 생각했지만 아홀로틀이 구경하는 그 우스운 바보, 아무 생각없이 아홀로틀의 생활터전인 바다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게 바로 나와같은 인간종이니까요. 

아홀로틀은 호랑이도롱뇽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물밖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다시 혼자가 되어 하루하루가 지루해져버렸어요. 호랑이도롱뇽으 찾아 다녔지만 만날 수 없었던 어느 날, 물이 이상하게 따뜻해지고 ......


물은 왜 따뜻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아홀로틀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기한 생명체 아홀로틀의 세상살이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속에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여러 생명체들 중에서 바보같은 인간이 아름다운 지구를 어떻게 망쳐가고 있는지, 그리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어요. 잔뜩 화가 난 괴물 파도가 아홀로틀을 세상 밖으로 내 던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림과 글 모두가 좋았던 아홀로틀 이야기,를 꼭 읽어보면 좋겠어요. 괴물 파도의 등장으로 세상이 무서워지는걸까, 싶겠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는 것이 참 좋았어요. 


"지구상의 생명체가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는지 모른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살면서 이 행성 전체를 뒤덮고 있다. 생명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 미항공우주국 우주비행사 에드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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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를 만들어간다 - 장마리아 그림에세이
장마리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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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과 색채를 수놓는 화가, 장마리아"의 그림 에세이라고 하는데 이름도 작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글이라니...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에세이를 읽을 때 작가를 알아야 글을 읽는 것은 아닌데 화가의 글이라고 다른 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물론 요즘 극찬을 받는 화가라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장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톨릭 세례명을 이름으로 쓴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날 때 거꾸로 들어선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기적을 바라자며 희망을 주었던 간호사의 이름이 마리아였기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가 되었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이름을 받고 태어난 장마리아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림에 대한 이력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이 책은 장마리아 자신의 삶의 모습과 그녀가 그려내고 있는 그림의 연결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그림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인의 느낌으로만 감상을 하는 수준이라 장마리아의 그림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운데 초반에 실려있는 그림들은 솔직히 감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스프링 시리즈를 보고 있으려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무채색의 추상화에서 시작해 점차 화사함으로 변해가는 그림들이 그저 색의 변화만은 아닌 것 같아 더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멸하던 회색빛 반워은 이제 봄의 아지랑이가 되었다. 불운을 행운의 표식으로 바꾸는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128)라는 해답을 찾은 장마리아의 그림을 보면 "망막에 맺히기 시작한 회색빛 반원이 스프링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에 다시 한번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게 되고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화가에게 황반변성으로 인한 시력저하가 시작된다면 더 이상 화가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일까,가 아니라 그 시점으로 시작된 스프링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긍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태어날 때부터 거꾸로 자리잡고 있던 위치를 바로 잡아 무사히 이 세상에 나온 그녀가 아니었던가.

자신의 삶이 글과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던 장마리아의 그림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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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작, ‘스프링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시련은 사람을 녹슬게 한다. 끝없는 부식과 소멸로 의지를 꺾어버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나는 뼈아픈 과거의 일면을 통해빛의 역설을 전하고 있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불행의 성질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실 인생을 통틀어 불행 없는 희망이란 없다.
희망도 불행을 겪어봐야 희망인 줄 안다. 그때 알았다. 극단과 극단은 통한다는 것을. - P126

사람들은 대개 관성의 법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면 결국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영원히 삶을 마감하게 된다. 예술이 그렇듯 인생도 그렇다. 자신만의고유한 빛깔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주도하고 선택한 시간 속에서 생을 여러 번 담금질하는 가운데 가능해진다. - P130

"예전 그림이 더 나은 것 같아."

초반에 새로운 시리즈로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급부상할 때였다.
값진 축하의 인사도 받았지만 더러 놀라운 시선도 쏟아졌다. 개중에는 진심 어린 조언을 가장해 어두운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이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맥락 없이 변한 것이라면 이러한 질문들이 따가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나름의 역사가 있었다. 지나온 모든삶에 당당했다. 세찬 비난과 조롱에도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였다.
나는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변화를 줄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삶과 그림의 장르를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게. 그러나 그 본질이나라는 사실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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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시력 저하는 화가의 인생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겼다. 사물간의 거리를 느낄 수 없었고, 색과 형태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추상화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사실 추상이라는 세계는 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무얼 그렸는지가 불분명하고,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나는 추상화를 그리면서 인생을 살다가 만나게 되는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원근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시멘트를 발라 두께감을 쌓았고, 디테일한 스케치를 생략하는 대신 색과 터치에 힘을 실었다. 툭불거진 조소와 색채가 깔린 회화, 그 어디쯤의 경계선상에 서게 된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 지금 할 수 있는일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 이처럼 인생에서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지를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삶의 명확한 방향을찾는 시작은 언제나 자신이 어디 서 있는지를 아는 것부터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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