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편견은 개인이 단순히 어떤 인종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그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 인종이 다른 인종 집단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회, 시대는 얼마나 미개한 사회,
시대인가. 식인종 집단 사회, 그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표피가그렇게 중요한가?


그럴 때면 하늘에서 칼이 내려오는 것 같다. 다양한 모양의칼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 그것들은 한국에서 몸을 껴입고 온나를 한 꺼풀 벗기려는 칼인가? 아니면 나무속, 돌 속, 바닷속에숨어 있는 나를 파내려는 칼인가? 나를 조각하려는 칼들이사방에서 쏟아지지만 나는 이때까지 형체가 없었으므로,
나도 내 형상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 칼들은 끝내 나를 조각할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지만 칼들이 나라는 형체를 빙둘러싸고는 성적으로 헤프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무조건남자에게 순종하며, 불교에 심취해서 ZEN을 사랑하는 동양여자로 깎아내려고 한다. 그럴 때면 외국으로 간 심청처럼치마를 부풀려 뒤집어쓰고 날아가버리고 싶어진다. 47-48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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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성물질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인체는 동적인 시스템이다. 우리는 수많은 독성물질에 노출되며 살아가지만, 인체는 그런 물질을 끊임없이 몸 밖으로 배출하고,
활성을 없애고, 분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자기 몸에 독성물질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파악하고 더 쌓일 일을 자초하지 않는것, 그래서 균형이 깨지고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것이다. - P67

인체가 늘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생존을 가운데 두고, 생존에 가장 덜 필요한 기능을 추려서 버린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버려진다.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게 아니라 다른 정보들을 토대로 재해석된 것이다. 그리고 경험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에너지가 없어서 뭔가를 길에 버리고 가야 한다면 남들과공유하는 기억부터 수레에서 내려놓는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잊더라도 남들의 도움으로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제 점심때 뭘 먹었는지, 그저께 출근하거나 등교할 때무슨 옷을 입고 갔는지, 그제 TV로 어떤 프로그램은 봤는지 허다하게 잊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생존과 무관하고, 설사생존에 필요한 일이 되더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그 일을 상기하도록도와줄 수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다들 주머니에 작은 컴퓨터를 한대씩 가지고 다니는 시대에는 사진, 메시지, 달력에 써둔 일정 등이기억을 되살리는 직접 증거나 정황 단서로 활용된다. 그래서 이런 기억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챙겨가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되살릴 수 있으므로 안심하고 수레에서 내려놓는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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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새와 같아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25
안드레아 파로토 지음, 안나 피롤리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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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라는 깊이 있는(!) 단어를 새에 비유를 했네요. 그런데 내용이 미루어 짐작이 되는 동화책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밝은 표정의 - 아니, 어쩌면 조금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의 새 모습이 어떻게 진실과 비유되는 이야기로 이끌어가는지 궁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진실은 새와 같아. 높은 절벽에서 떨어크려도 날아오르거든"

아, 첫문장부터 심상치 않군요. 절벽에서 떨어져도 비장하게 날아오르는 마음보다는 진실은 늘 어둠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다는 믿음으로 행복하게 날아오르는 것 같은 새의 표정이 첫문장을 더 와 닿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물고기처럼 물에 빠져도 죽지 않고, 땅에 묻어버리면 오히려 씨앗처럼 자라서 꽃을 피우고, 불구덩이에 던져도 결코 타지않는 돌과 같은 단단함이 있고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별과 같은 것이 "진실" 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고 그 다음 진실과 상반되는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거짓은 나의 세상을 흔들어버리고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게 만들어버리며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지요. 

이렇게 진실과 거짓의 반대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그림책 읽기는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런데 이 책은 그냥 진실과 거짓을 말하는, 당연히 진실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그런 교훈적인(?) 이야기로 끝이 나버리는 그림동화가 아니예요. 어둠속에서 길을 잃은 거짓이 가득한 그림을 넘기고 갑자기 밝은 배경에 아빠와 아이가 등장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문장 하나가 눈에 띄는데 '이제, 다시 물을게' 하고 정말 묻고 싶었던 아빠의 한마디에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진실과 거짓에 대해 진지하고 무겁게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의 이야기에 녹여놓은 마지막 그림과 글을 읽고 나면 기분이 유쾌해지기도 해요. 

물론 이미 어른이 되어 거짓이 온통 어둠일뿐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내게는 마지막 장의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떤 느낌이 먼저일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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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우리는 살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는 내용이 있지.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란다." 103 - P103

"보이지? 저게 바로 우리의 길이야."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 건지 알겠지?" 내가 물었다.
"응"
"이제 저기로 가자. 그냥 걷기만 하면 돼, 언니."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야기는 처음에 그렇게 시작해서 계속되다가 마침내 끝난다. 씨앗은 자라 전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으며 점점 더 자라다가 결국엔 쓰러져 죽는다. 사람들은 신을 만들어내고 잊기를 반복한다. 계절은 오고 간다. 주유소 뒤편의 크리스마스트리 가게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몇 개만 보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순환이다. 햇빛이 바위를 따뜻하게 데운다. 사람들이 그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을 때도 있다. 때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누군가가 물속에서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숨을쉬려면 다시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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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팬케익 :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남선우 지음 / 뉘앙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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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팬케익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팬케익 책을 읽으며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대표되는 양자역학 이야기까지 나올줄은 몰랐다.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부제의 문장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물리학의 한 분야로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팬케익으로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이 책을 읽으며 팬케이크데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재의수요일 - 부활절 전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하는데 그 사순절의 시작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한다. - 전 날을 팬케이크데이라고 한단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슬람의 라마단 단식기간 전에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2024년 팬케이크데이를 기념하여 서울 하늘 아래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팬케이크 레이스를 했다니, 이건 정말 웃긴 에피소드로만 넘기기에는 팬케익에 진심인거 아닌가.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 그러니까 팬케익인가 핫케익인가부터 시작해서 팬케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볍게 읽기에는 딱 좋았는데 이야기는 양자역학에 이어 사이언스지에 실리는 논문을 인용한 '완벽한 팬케익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하니... 아, 또 쉽지가 않네? 제빵비율과 팬케익 표면의 패턴 분류를 과학적으로 실험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로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팬케익 사진이 위로해준다. 밥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맛다시며 먹고 싶게 만드는 팬케익 사진들은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알것만 같은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느껴져 자꾸만 사진을 보고 또 보게 된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팬케익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특별해지는 것을 느낀다.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팬케익 가게를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팬케익 가게를 추천받아 행복해지고 그 수많은 추억들이 쌓아놓은 팬케익을 바라보는 것처럼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보니 달콤한 꿀을 끼얹고 상큼한 딸기와 블루베리를 곁들여주던 그 맛있는 팬케익 메뉴가 우리 동네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없는데... 왠지 그리움의 추억속 음식이 되어버린 것 같아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니. 

나도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날을 뒤로 미루지 말고 빨리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팬케익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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