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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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목걸이는 영국인 메리 린리가 1917년 한국으로 와서 태평양전쟁으로 미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되기 전까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1948년 남편의 유골을 한국 땅에 묻기 위해 찾아온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활하던 딜쿠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애초에 왜 그녀의 삶이 궁금한것일까?

사실 우연찮게 티비를 보다가 딜쿠샤라는 낯선 이름을 보게 되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국인이 거주하던 딜쿠샤 -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의 주인에 의해 독립선언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집 자체가 역사적으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책 '호박 목걸이'는 우리나라에 선교활동을 하러 온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삶을 기록한 책으로 치부하고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호박 목걸이'는 메리 린리가 한국으로 오게 된 운명과 같은 매개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어린시절 호박 목걸이에 매료되어 버린 메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박'을 조선이라는 동양의 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아, 물론 그녀가 한국에서 살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남편인 브루스를 따라왔기 때문이지만.

 

이 이야기는 한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하고 틀에 박힌 생활을 박차고 나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모험으로  읽을수도 있고 개화기 시대를 한국에서 살았던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펼쳐볼 수도 있는 책이다. 사실 개화기 시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쓴 메리 린리가 그러한 관점에서 책을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은 감안을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모험 가득한 삶의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해도 이 책은 한편의 소설처럼 읽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쁠것도 없지만.

 

일제시대 개화기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 세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혹 등장하는 고종의 장례식이라거나 삼일절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등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고 존중하며 이해를 하려는 모습이 느껴져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기미년 삼일절 당시 아이를 출산하면서 병원에 있게 된 것으로 우연히 독립선언문을 숨기는데 일조하게 되고 그것이 그녀의 남편에 의해 전세계에 공표되게 된 것들은 그녀가 우리의 독립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보지 않고 더 많은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은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간섭하지도 말고,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도 말아요."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갔다.](135)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가르치려 들거나 우리의 방식이 틀렸다고 고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방식과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한 메리 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뭔가 새롭다. 딜쿠샤가 지금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단지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 메리 린리의 더 많은 그림이 없는 것이 아쉬웠고, 그녀가 만난 많은 한국인의 이야기, 한국의 풍경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아쉬움만을 남기고 있지는 않다. 우리 역사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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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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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가장 기쁜 것은 같이 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로 행복했어요. 내 옆에 누가 누워 있다는 것으로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잊고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는 주간지에 같이 담겨 온 노란 봉투를 받아 본 것이 얼마 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손배청구액 46억원이 선고되었고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그들을 위해 노란봉투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잊고 지내다가  한 사람의 몫이라도 해내고 싶어서 사만칠천원의 기부를 했다. 약간의 망설임끝에 선뜻 낼 수 있는 그 금액은 내가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만큼 커다란 돈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에 알량한 위안을 가졌었다. 이것 하나로 그들의 기쁨에 함께 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 정말 부끄러움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마음을 베이듯 스며들어 와 자꾸만 내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정혜윤 역시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느낀 부분은 더욱 커다랬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고 있을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복직투쟁을 위해 싸워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산자, 해고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외면하지 못해 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다른 일을 하면 한달에 오륙백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도 불편한 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희망뿐 다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미사 강론시간에 신부님께서 대한문에서의 매일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더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제단의 결정에 따라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면서부터 죽음의 행진이 멈추었다며, 그들에게 종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님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자신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 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의 힘과 미사성제의 위대함을 믿는 마음에 괜한 자부심을 느꼈었지만 이제는 신부님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라고 한 그 마음을 더 깊이 깨닫는다.

 

"공장에 안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보충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 이 투쟁을 운동과 계급에 의해서 했던 사람은 그 생각 안할 겁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동지들, 썩어 빠지게 일만 했던 동지들, 운동이 뭔지도 팔뚝질이 뭔지도 모르는 동지들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어느새 "쌍차 투쟁이 이 나라 정리 해고의 문제, 노동자들의 문제다"하고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럼에도 "또 만들고 싶다. 또 하고 싶다"고 해요. 그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 옮겨 적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담담히 흘러나오는 쌍용자동차 선도투 스물여섯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연결되는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측은지심을 알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묵묵히 자기 일, 자기 역할을 하고 자기 삶을 살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답을 모를 때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를 택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중 일부라도 현실로 만들어 보길 선택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너무나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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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근처에 백년넘은 녹나무가 있다. 녹나무는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겨울이 아니라 봄이 되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느라 무수한 낙엽을 쌓이게 한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봄날에 낙엽밟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된 녹나무 만큼이나 오래된 나무가 옆에 있는데 그 나무는 올라가기 편하게 적당한 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져 엄청나게 뻗어있다. 엊그제 그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는 것을 지나치면서 봤는데 잘라나온 가지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무는 그 위용을 잃지 않고 굳게 서 있더라. 아무튼.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위에 올라가 놀고 싶은 충동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집을 짓지 않더라도 그냥 올라가서 머물고 싶은 기분을 갖고 있었단 말이다.

 

한강의 소설은 사두기만 하고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전에 희랍어 시간을 먼저 읽어보고 읽어볼까 싶어지기도 하는.

지금도 주말이 되니. 쌓아놓은 책탑을 정리하라고 잔소리가 심해지고 있는데 나는 책정리할 생각보다 책을 살 생각을 먼저 하고 있다. 사실 옆동네에서 인문서를 반액할인판매하고 있어서 카트를 채워두고 있고, 알라딘에도 쌓여있는 적립금이 많아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슬슬 구매해볼까 궁리중인데 그걸 살펴보려고 컴을 켜놓고는 또 딴짓이다. 프리모 레비의 책은 이미 읽지 않고 쌓아둔 것만 두 권인데. 꼭 읽어야지...해놓고는 책탑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내 관심사는. 아, 무한도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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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지붕의 나나 시공 청소년 문학 55
선자은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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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재미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굳이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결말을 가진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소녀에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상처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라고 용기를 주는 것은 두말할나위 없이 좋지만,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맞서면서 서서히 그 괴물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스릴러 형식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결론적으로 최고야,라는 평가를 내릴수는 없겠다. 그냥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만일 이 이야기가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쓰여졌다면 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일뿐이다.

 

주인공 은요는 고등학생이다. 어린 시절에 유괴를 당했다가 풀려나 그 이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최대한 친구들 틈에서 튀지않고 평범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주 멍하니 있게 되고 친구들에 대한 관심도 없이 무심하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릴때 유괴되었던 그때의 모든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봉인해버렸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은요를 감싸주며 살뜰히 챙겨주는 친구 세미는 은요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힘을 실어준다. 어린 시절 유괴되었었지만 그 모든 기억을 잃었는데, 사건 당시 할머니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촌동생 미루가 미국에서 지내다가 잠시 귀국을 하면서 은요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색칠공책을 건네주고 간다. 희미하게 기억이 떠오를 듯 하면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은요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데......

 

하나씩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갇혀있었던 것이 아니라 밖으로 잠그게 되어있던 문은 열린채로 있었지만 안에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그 문을 밀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빨간 지붕의 나나는 정체불명의 사건과 알 수 없는 실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어린 시절의 소녀와 만나는 은요를 통해 과거의 고통과 상처로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지 말고 그 모든것에 정면 대결을 하며 극복해 나가기를 청하고 있다. 고통과 상처에 무너져 버릴 것만 같지만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면 자신감을 찾고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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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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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은 어디이고 또 혼자선다는 느낌은 무엇인가.

사실 아무것도 실감할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걸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 혼자라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갖는 동시에 그 느낌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일까.

세상의 끝도 아니고 혼자도 아니었지만 언젠가 바닷가 길을 따라 걷다가 예고도 없이 새까만 어둠과 침묵속에 잠겨있게 된적이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순간적인 침묵의 고요속에 칠흑같은 어둠이 덮치듯 다가오니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 찰나의 순간이 그랬는데 세상의 끝에 혼자 선다는 느낌은 어떨까. 더구나 나는 영하의 혹독한 추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녀의 도전이 정말 극한 체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길을 떠난걸까?

 

이 책은 영국 여성 펠리시티 애스턴이 59일간 혼자 남극대륙을 횡단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혼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그것도 좋은 환경이 아니라 남극의 극한 추위와 눈보라속에서 걸어나가야 하는 나날의 기록인 것이다. 팀으로 원정대를 꾸려가는 것과 팀원들이 나눠서 하던 일을 혼자 해야하는 것은 일데 대한 단순 비교가 아니다. 또 팀을 이끌 때에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늘 자각하며 약하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약점을 지켜 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무엇이 그녀를 계속 나아가도록 동기를 불어넣어줄 지 알고 싶다는 펠리시티의 이야기에서 고독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 정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나도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나는 도저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이로움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남극대륙은 곡 필요한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제거된 장소며 그러고도 남은 게 있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진실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생각의 명료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바로 두렵고 외롭고 모든 게 노출되어 있는 때다. 게다가 정신을 딴 데 돌릴 실체가 없고 순수하게 풍경만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 표면 위로 떠오르며 세상의 구도 속에 우리는 어떤 위치고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공간과 자유, 명쾌함을 가져다준다"(201)

 

홀로 남극 대륙을 횡단하며 경험한 무서운 찰나의 순간들을 겨우 한 문장, 한 문단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지만 되새기며 글을 읽다보면 정말 몸서리쳐지게 무서운 일들이 많았다. 그 기나긴 시간들을 그저 담담하게 써내려가서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기록을 읽는구나 라는 느낌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그녀의 여정을 돌이켜보고 있으려니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더구나 남극점을 찍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자 남극대륙으로 갔고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임을 깨달았다고 수치스러울 것도 없으며 남극점에서 스키를 타고 다시 출발한다면 자신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다 아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혼자가 되는 그 경계선상에서 다시 한걸음을 내딛은 그녀는 정말 영웅이었다.

"눈물과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믿는 것보다 훨씬 큰 역량이 각자 안에 있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리 몸은 힘이 세며 우리 정신은 강한 회복력을 지녔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머릿속 깊이 새긴 채 남극대륙을 떠나기 위해 하나의 간단한 문구로 요약했다.

'계속 텐트 밖으로 나가라'

매일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도전이라도 다음 날 우리가 어디까지 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짧은 말 한마디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그녀의 위대한 여정을 알고난 다음 다시 들여다보면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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