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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차를 타고 지나가다 '덕수'를 지나칠 때 어머니가 갑자기 어릴 적 동무였던 덕수를 떠올리시고는 덕수를 덕구라고 놀려먹는 애들이 있었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제주 4.3이 있었던 당시 이덕구가 사형을 당하고 관덕정에 시신이 효시되었을 때 산지천에 있는 식수를 뜨러다녔던 아이들은 그렇게 폭도라 불리던 이덕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해마다 봄이면 관덕정 마당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본다며 산책을 나가고 여름이면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광장 옆 산지천을 걸어다니곤했다. 아니, 알고있지만 어쩔건가. 머리로 아는 것과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현실감없는 옛이야기는 잠시 잊어둔다. 아니지. 현실로 그 모든 것을 봤던 어머니도 그냥 그 끔찍한 장면들은 기억에서 지워 흐릿하게만 남겨두고 관덕정에서 산지천으로 핏빛이 선연했던 산으로 바다로 다니신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산지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곳의 다리가 아름다운 다리 건축상인가 뭔가 받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섬의 하천은 대부분 건천이라 비가 내리면 한라산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려 하천이 넘치게 되고 가문날이 계속되면 물기 하나 없이 마른 돌덩어리들만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시동쪽의 식수원인 산지천이 옛도심의 중심이었다면 서쪽에는 한천이 흐르고 있으며 한천은 바닷가의 용연을 지나 바다로 흐르고 그것은 용이 해를 여의주처럼 물고 날아오르는 형상을 볼 수 있는 용두암에 이른다.
지금 이게 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다뉴브를 읽으며 느낀것은 내가 다뉴브가 흐르는 인근에서 살았다면, 그래서 현재의 문화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도 알고 시대를 지나며 변화되어가는 많은 것을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부모님에게 듣고 자라거나 역사로 체감을 하고 있다면 다뉴브에 대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것은 다뉴브를 읽은 사람이라면 다 공감해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어머니의 한마디에서 시작해 제주의 지리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내용,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그 역사속에 담겨있는 정치와 이념의 이야기까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것처럼 다뉴브의 이야기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벨라루스가 중재를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삼십년전 소련의 해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되려나?
다뉴브는 아주 독특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데 수많은 이야기들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전쟁반대이며 나치의 유대인학살에 대한 역사를 잊지말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야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내 인문학적 소양이 폭넓고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다뉴브를 읽고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