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티비를 보다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작곡가로서 윤이상 선생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핏 지나가는 말을 들은 기억뿐인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역시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난해하고 어려울지라도 어느 순간 그 음악에 감동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지금도 나는 윤이상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를 찾아서 듣고 있는 중인데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두어번은 들어봤던 이것 말고 오페라 심청을 찾아 듣고 싶었는데 찾을수가 없었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동백림 사건으로 잡혀왔다가 풀려났고 세계적인 음악가이지만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그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고 그토록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끝내 고향땅 통영을 다시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것 정도이다.

책을 읽으며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을 통해 그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사실 앞부분부터 집중되는 그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 빨갱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그는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고 오히려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어 있다"(290)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내 예술적 양심에 따라서 의식의 순수성과 광대한 차원을 향한 고도의 요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예술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만인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하고, 따라서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단기간의 임무일 수밖에 없습니다"(290)

그래서 그는 일제시대하에 자신의 소신과는 달리 무장혁명을 생각하기도 했고, 전후에는 집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고아원 시설을 운영하려고 하기도 했다. 고난의 시대를 겪은만큼 그의 삶 역시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했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유학생활을 견뎌내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윤이상, 상처입은 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삶의 여정이 그래서일까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그의 태몽과도 연결되어 지은 제목인 듯 하다. 용이 승천하는 꿈은 대단한 인물이 나올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용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나라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말이죠. 게다가 나를 감금하고 고문하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실제 우리나라 민중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민중 자신도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갇혀 있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독일 시민이 되었다고 해도 나 역시 한국 민중이며 한국 민중을 사랑해왔고, 사랑하고 있습니다"(282)

특별한 인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기 수십년 전 같은 날 태어났고 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윤이상 선생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갇혀 예술가로서의 그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 그의 마음은 한국 민중이며 한국 민중을 사랑했는데 말이다. 한국을 사랑한 진짜 한국인, 세계적으로 그 음악성을 인정받은 천재적 예술인으로서의 윤이상 선생에 대한 존경과 평가는 이미 늦었지만 이제 뒤늦게나마 제대로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문가와 강적들 - 나도 너만큼 알아
톰 니콜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왜 책의 제목이 '전문가와 강적들'일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한 이유는 요즘 난무하는 가짜 뉴스의 홍수속에서 가짜와 진짜를 어떻게 구분하고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읽어보니 일반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딱히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는 없다고 느꼈다. 저자가 외국인이라 외국에서의 실제 예들은 많은데 광고 문구에 나온 것처럼 탈원전 살충제 달걀, 생리대 파동, 백신 논란등의 정보 홍수 시대의 혼란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방향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슬그머니 실망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려고 보니 어쩌면 내가 너무 쉽게 정답만을 찾으려고 했기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책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가짜와 거짓의 홍수속에서 구별해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실상 그것을 딱 끄집어내어 정답만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었나, 생각해보면 내가 터무니없는 기대감으로 혼자 실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새로운 것을 느낄수는 없었다. 예전에 소비에트 연합이 있었을 당시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미국 학생들의 대다수가 소련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고 막연히 캐나다를 소련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에 어이없어 했었는데 이 책에도 그와 비슷하게 1943년 대학 신입생들의 상당수가 링컨을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노예를 허약하게 만든 - emaciated, 해방시켰다는 뜻의 emancipated와 혼동하여 -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글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잘못알고 있는 것도 자기도취적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는 착각에 빠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 전문가의 말을 믿지도 못하고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요즘은 특히 유명 인기 연예인의 말은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이다. 사실 책에서도 언급한 달걀에 대한 이야기는 나 역시 부끄럽게도 달걀을 먹으면 살찐다는 속설을 들어 한동안 먹는 것을 꺼려하기도 했었다.

얼마전 쉬는 날 티비에서 갱년기에 대한 특집방송을 하고 있는데, 내가 듣기에 호르몬제를 맞으면 암발생율이 높아지고 강제적인 호르몬 조절을 하면 더 안좋아질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것고는 달리 - 아니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암에 걸릴 확율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에 똑같은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떤 관점에서 그 사실을 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만 전문가의 말에 대한 신뢰를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감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에 무조건 따라가기만 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접하는 언론 매체를 살펴보면 자신과 같은 논조를 가진 매체를 선호하고 지적 비판 능력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사실에 근거한 진실'이 무엇인지 구별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기꺼이 배우려고만 한다면 대부분의 무지는 극복될 수 있다'(401)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임을 인식해야 하며 일반 국민들 역시 스스로 주인이 되려면 나라를 운영하는 일에 계속해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한다(406)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의 견해로 무조건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전문가의 견해에 무조건 받아들이고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없이  그 말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기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책을 읽고 진짜를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해결은 안되었지만 어떻게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잡을 수 있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베는 무민 동화에 묘사된 자연이 가능한 한 현실적이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크기는 제각각이더라도 달은 항상 제대로 된 방향에서 떠올랐다. 무민들이 사는 세계는 바다와 폭우, 험준한 산과 동굴로 이루어졌지만 꽃이나 빽빽한 숲도 있었다. 무민 골짜기는 아늑하고 동네같으면서 안전한 환경이며, 모험이 전개되는 배경은 정확히 그와 반대된다. 예측불가능하고 위험천만한 바다와 산악지대는 온갖 재난이 닥쳐올 것만 같다. 무민 가족은 광활한 세상으로 나갔다가 평화로운 골짜기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오면서 늘 안심한다. 물론 돌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떠나야 하지만 말이다. 14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ika 2017-10-0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이나 실망을 전혀 느낒 않는다고 생각해봐. ...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그에게 화를 내거나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봐. 잠도 못 자고, 추위도 못 느끼고 절대 실수도 저지르지 않고, 또 배탈이 났다거나 그게 가라앉지도 않고, 누군가의 생일을 함께 기뻐해주지도 맥주를 마시지도 못하고, 양심에 찔리는 기분도 못 느낀다고 말야......... 173.


서니데이 2017-10-0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벌써 연휴 3일째예요.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chika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chika 2017-10-02 20:50   좋아요 1 | URL
넵!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

2017-10-02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해가 새해에게 선물을 안기다, 가름, 1943년 신년호표지.

부상당하고 행색도초라한 애꾸눈지난해가 어린 새해에게 선물을 안겨준다. 그가 줄 만한 건 배식 쿠폰과 총, 방독면, 총탄, 장난감 무기뿐이다. 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순한 생각 같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한다. 늘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얕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 자신을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그날 밤 - 방금 서술한 내용보다 이 부분이 더 잘 기억난다 - 어둠 속에서 아빠가 오빠 옆에 누워 오빠를 아기 안듯 안아주었다고. 오빠를 무릎에 올리고 가만가만 흔들어주었다고 나는 말하려 한다. 나는 어느 눈물이 누구의 것이고 어느 중얼거림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다. 138-139.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한 오빠에게 소리를 지르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 오빠를 안아주는 아빠의 모습.

 

당신은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이야, 안 그래?

 

문장 하나하나 옮겨놓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지만 글을 읽기 위해 참는다.

 

모든 생生은 감동이다.

 

 

 

 

 

 

 

 

"내가 내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를 아느냐고?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217.

 

 

 

 

 

 

요즘 나는 가을에 우리의 작은 집을 둘러싼 농장에서 해가 지던 장면을 이따금 떠올린다. 어디를 봐도 지평선이 보여. 내가 한 바퀴 빙 돌면 지평선도 한 바퀴 원을 그렸다. 해는 등뒤에서 지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그 아름다운 변신을 멈출 수 없다는 듯 은은한 분홍빛을 자아내다 슬며시 푸른 기운을 띤다. 이윽고 지는 해에 가장 가까운 땅이 한 줄 오렌지색 선으 그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어두워지다 거의 컴컴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면 땅은 여전히 부드러운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내며 몇 그루 나무와, 흙을 갈아엎고 간작 식물을 심은 고요한 들판을 보여주고, 하늘은 머뭇거리다, 머뭇거리다 마침내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도 조용히 지켜볼 것만 같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218-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