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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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표고버섯이 제철인지 생표고가 많이 보여 자주 사 먹고 있다. 여러 요리에 넣고는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별다른 양념없이 그대로 참기름에 살짝 볶아 먹는 것이다. 버섯이 익어가면서 나는 향이 가장 강하기도 하고 그 버섯향이 너무 좋아서 그러는데 음식의 향이 없다면 그 식감만으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코끝의 언어'는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던져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런 의문에 대해 다양한 냄새의 이야기를 통해 옛추억의 향수뿐 아니라 사회문화, 인문학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해주고 있다.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향신료, 음식, 식물, 흙 같은 자연의 향에 더해 저자는 담배와 심지어 대마초의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어떤 냄새를 맡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150)라고 말하며 담배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 사실 이것은 담배를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상사가 흡연실로 향할 때 항상 따라가 온갖 정보를 빼오는 직원을 볼때마다 농담처럼 우리도 담배를 배워야겠어! 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그와는 또 좀 결이 다르게 "우리는 저마다의 세상을 품고 있으며 대화는 우리에게 그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같은 하늘 아래 머물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좋았다. 


대마초에 대해서는 단순히 냄새만이 아니라 그에 얽힌 사회적인 인식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어디서나 흔하게 잘 자라는 잡초같은 대마가 밧줄, 종이를 만들고 천을 짜고 심지어 차로 마시기도(241)하는데 꽃을 이용해 농축액을 만들며 많이 알려졌듯 진통제로도 쓰였지만 결국 그 중독성으로 인해 마약으로 규정되었는데, 미국에서 외래종인 것처럼 대마초를 마리화나로 부르며 금지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흑인, 타국의 이주민이나 불법체류자들의 전용인것처럼 만들어 폭력적인 사람들로 낙인찍고 차별을 정당화했다는 이야기는 마약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사회적 편견이 어떻게 정부조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가저 더 언급해보자면 '돈'에 대한 것인데 새 돈의 냄새가 아니라 헌 돈의 냄새를 맡기 위해 헌 돈을 구하는 과정에서 돈의 흐름은 결코 가난한 동네에서 부자동네로 가지 않으며 어떤 돈에는 고달픈 인생사가 담겨있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냄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닌것이 '코끝의 언어'를 더 깊이 읽게 하고 있다. 


각 장의 사이에 엑서사이즈가 있는데 쉽고 간단하지만 독특하기도 하고 냄새에 집중하며 냄새를 맡아보는 여러 실행방법들이 제시되어있다. 눈과 귀를 막고 바닥에 엎디어 오로지 코로만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는데 만약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대학의 연구논문을 위한 실험중이라는 대답을 하라는 등 저자의 유머감각이 담겨있기도 해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동안 쨍쨍한 햇빛에 이불을 널어 말릴 시기가 되었음을 떠올렸는데 햇빛에 말린 이불에서 나는 향은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포근함과 안정감을 주며 기분을 좋게하고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게하는 그 좋기만한 것을 같이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 설명한 과학적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건조기 반대론자가 아니라 빨래줄에 빨래를 너는 것을 더 좋아할뿐이기도 하고. 

"냄새를 배울수록 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360)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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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게 싫어. 그애에 대해 그 빌어먹을 입들 좀 닥쳤으면 좋겠어. 난 그런 말이 도는 것 자체가 싫다고,
네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레이먼드가 말했다. 그는 몸을 돌려 복도를 가로질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뒤돌아섰다. 사람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수군거림이 옳은 건 아냐. 난 절대로 그걸 당연시하지 않을 거야.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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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는 이미 인도의 종교와 사교 관습뿐만 아니라 음식 문화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무엇이든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는 조치에는 부작용이 따르는법이다. 서구인들에게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대마 냄새는 지독한 저항의 악취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인도와 남아프리카, 그 외의 여러 식민지에서 대마초를 사용하는 갈색 피부의 식민지 주민들은 게으르고 시간을 관념을 모르는 노동자이므로, 유럽인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의 한 근거가 되었다. 대마초에 씌워진 어들고 음습한 오명은 그대로 답습되었다. 243



내 친구는 커서 화가가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현금을 받는 일이 많은 서비스 직종으로 학비를 벌었는데, 업타운의 한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한 적이 있었다. 커피숍 길 건너에는 교도소에서 출소해 사회에 완전히 복귀하기 전까지 머무는 복지시설과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 단지가 있었다. 친구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길 건너 사는 사람들로부터 들어온 냄새나고 구겨진 돈과 출퇴근 시간대에 상업지역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빳빳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돈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금전등록기에 들어간 지저분한 돈에는 독특한 인간미가 묻어 있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숍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꼬깃꼬깃한 1달러짜리 지폐로 커피를 사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내 친구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나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이 내미는 지폐는 지린내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땀내찌든 손으로 꺼낸, 담뱃재가 그대로 묻어 있는 돈일 때가 많았지만고달픈 인생사의 한 조각이 담겨 있는 인간적인 돈이었다.
내 친구의 일화는 그저 개인적인 경험담일 뿐, 참이냐 거짓이냐를 판별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돈 냄새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 보여준다. 지폐가 사람들 사는 동네로, 현금지급기를 통해 들어가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 지폐들은그 지역에서 계속 유통된다. 논리적인 이야기다. 돈이 많은 사람은현금을 잘 쓰지 않는다. 아주 소소한 물건을 살 때만 현금을 쓴다.
현금은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동네로만 흐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소원을 비는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든가, 주차미터기에 동전을 넣는다든가, 길거리 공연가들 앞에 놓인 돈통에 넣는다든가. 하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부자 동네로 돈이 흐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난한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부자 동네에가서 돈을 쓰지 않는다. 현금, 특히 액면가가 적은 돈은 한 동네에서만 빙글빙글 돌 뿐, 그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현금 냄새는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을까. 내 것이 아닌 돈통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돈을 셀 때는돈 냄새가 다르다. 그 돈을 다 세고 나면, 그 돈이 그 돈통에 이르기까지 지나왔던 다양하고 폭넓은 인간 세상의 상호작용과 거기에 든 시간을 모두 세는 것과 다름없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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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깎은 잔디 냄새를 싱싱한 풀잎의 냄새라고 좋아하지만,
사실 잔디에게 그 냄새는 긴급 신호, SOS와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들은 이 냄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냄새니까. 누군가에게는 위기의 냄새지만 누군가에게는싱그럽고 상쾌한 냄새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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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백설희.홍수민 지음 / 들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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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알지못하더라도 귀에 익숙한 문장이다. 세일러문이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지만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의 몸으로 바뀌며 외치던 그 문장때문에 내 기억속의 세일러문은 정의의 수호신일뿐이었다. 사실 지금도 검색을 해보고서야 '사랑과 정의'라는 걸 깨달은 것이지 내 기억속 세일러문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무찌르는 정의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법 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라고 묻고 있다. 내 얄팍한 기억때문이었을까. 이 책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물음이다. 


이 책은 디즈니의 프린세스 브랜드에서 시작해 게임으로까지 확장된 공주 역할, 소녀로서의 여성성이 마케팅으로 이용되며 사회적으로 규정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학 속 소녀에 대한 이야기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린게이블스의 앤이 빨강머리 앤으로 한정짓거나 작은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을 단순한 소녀문학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으며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의 역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들 중 한명이라기보다 이야기가 이어져가며 등장인물들과의 로맨스에 치중되는 것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제인 오스틴의 여러 소설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누군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그저 '로맨스 소설일뿐'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정말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연애소설이 맞는거 같다 싶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문학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여성의 로맨스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책 읽어주는 서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담겨있는 심리학적인 묘사와 남성중심의 문학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문학의 등장이라며 제인 오스틴의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 역시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사회적으로 교육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여자아이의 놀이와 상관없이 총싸움의 적이 되어야했고 바둑, 장기 등을 배우고 옷조차 3년터울인 오빠의 옷을 물려받아입어서 여성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환경, 더구나 '여자가' 라는 말을 집안에서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내가 사회화되면서 바뀌어간것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성아이돌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언급하는 글을 읽으며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들에게 동시에 성적인 이미지를 덮어 소비하려고 하는 아이러니함 속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소녀들뿐이지 않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설렁설렁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소녀문화의 이후 행보를 응원하고 싶은 어른이라면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소녀문화가 안전하려면 성인들의 문화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197) 라는 저자의 말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새삼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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