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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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내가 제정신이 아닌걸까? 최근에 읽는 책마다 조금씩 예상치를 벗어나거나 책의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날씨가 역사적인 어느 순간에 어떤 역할을 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 지구의 기후를 보호하고 환경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잠시 응? 하고 있다가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조금 명확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역사적 사실에 주관적인 관점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을뿐인 듯 했다. 더구나 예전에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 유명한 해전 이야기를 그냥 쓱 지나치듯이 언급하고 있는 느낌에 책이 그닥 재미있지 않았다. 이건 마치 우리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날씨, 기후 덕이라고 넘겨버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읽는 것일 수도 있으니 술렁술렁거리면서라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재미없다, 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역사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 읽다보니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굳이 날씨,에 집중하려 하지 않고 글을 읽기 시작하면 애써 그 연관성을 찾으려하지 않으니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는 물음이겠지만, 그래도 그 역사적 순간의 이상기후가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고 있다. 안개로 인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열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연설을 짧게 끝낸 히틀러는 그로인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정밀한 시간계산을 하고 폭탄을 설치한 엘저의 이야기였다.

사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던데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 듯 하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 (사실 에필로그를 읽을때에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내가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건가? 싶기도했다) "단기간을 염두에 둔 미시적 개념인 날씨와 그보다 긴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 개념인 기후는 중대한 고비 때마다 실제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비교적 작은 행성인 지구에 그런 식의 구분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제 지구상에는 수많은 기후 대신 단 하나의 기후만 존재한다" 라는 글을 읽으니 기후와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며 흥미거리로 그날의 역사를 바꾼 날씨에 대한 지엽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지구환경의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다. 굳이 사막화되어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언급하지 않아도, 일본의 후쿠시마 지역의 황폐화를 언급하지 않아도 바로 우리 주위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바뀌고 있고 또 그로인해 생존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누구나 한번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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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일 리스트
파(pha) 지음, 이연승 옮김 / 박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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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책에 대한 정보를 대충 봤다는 것을 실감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었고 다행히 그부분에 대해서는 맞는 것이 많았지만 나는 이 책이 재미있게 구성된 일러스트 책인줄만 알았다. 그래서인가. 괜히 글자가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며 책을 한쪽에 치워뒀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읽지 않을 책 리스트'에 들어갈것만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슬그머니 훑어보기 시작했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다가 책을 읽는 것 자체도 왠지 읽어야만 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요즘, 해야만 하는 일들의 틈바구니에서 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자꾸만 기웃거리게되지만 사실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 모든 것을 다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그래도 괜찮을거야, 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곤한다. 잠시 힘을 빼고 뒤로 물러서서 내 일상을 되돌아보니 정말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뭔가, 싶어진다.

이 책은 그저 단순하게 '에이~ 그냥 하지마'라고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는 쉽게 술렁술렁 넘기고 있지만 한번 더 새겨보면 나름대로 자기 확신을 갖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무소유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는 생활습관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쇼핑을 줄이고 셰어하우스에 사는 것이나 공유경제를 이용하며 소유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런 생활습관은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성공을 쌓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두번째 장부터는 그 의미에 대해서는 수긍이 되지만 완전공감하지는 못하겠다.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스케줄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것. 계획한대로 꼭 해야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책의 내용에는 자신의 계획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약속과 신뢰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핑계대며 어길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져 좀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받아들이면 하고싶은 것만 하겠다는 뜻이 될수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사실 뭐, 저자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이 책 역시 굳이 애쓰며 열심히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니 그리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아닌 듯 하다.

다만 적당히, 너무 고되지 않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게으르게 책임을 회피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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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요소와 원리, 매체, 역사, 주제 -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 史, 라는 제목이 들어가있으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어려울까? 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특히 '예술사'라고 되어있는 책들은 그동안 너무 어렵게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내가 도대체 뭘 읽고 배웠나 한탄하게 된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각조각의 지식이 연결되면서 한 분야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특히 미술사에 있어서는 그동안 봐왔던 그림책이 많아서인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설명은 알아들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 아, 이렇게 쓰면서도 자신있게 단정적으로 말을 못하고 있..... ;;

 

뭐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게이트웨이 미술사'라고 듣도보도 못한 책이 나온다고 했을때 그냥 궁금했다.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원리, 매체, 역사, 주제.... 내가 이것에 대해 얼마나 알겠냐,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그리고.

책읽기가 쉽다, 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책읽기가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샘플북을 볼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기조각상. 오동통하니 귀엽게도 보이고 실제 크기가 33센티미터라고 하니 실물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 물론 이 아기조각상도 커다랬으면 올메크부족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거대두상 곁에 있었겠지? 생각해보면 좀 더 커다란게 좋았을까?

 

 

뭐, 어쨌거나. 울메크부족의 두상 이야기가 나온김에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보자면. 하나의 작품을 놓고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그러니까 원리, 매체, 역사, 주제의 부분으로 나눠 설명을 하고 있다. 사실 이걸 굳이 구분해야 된다거나 이런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큰일날 것도 아니지만 굳이 지식을 얻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일수도 있다. 그런 즐거움에서 조금 더 체게적인 지식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좋은거고.

 

이 책은 도판이 많은 것도 좋았다. 아니, 도판이 많은 것이라기보다는 아는 그림이 많고 - 물론 모르는 그림도 많지만 (그만큼 도판이 많다는 뜻이 되기도 하겠다;;;) -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더라도 그림 도판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샘플북만으로도 이렇게 만족스러운데 책은 더 만족스럽겠지? 책 한 권의 가격으로 생각하면 비싸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수많은 도판과 육백쪽이 넘는 책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리 비싸지 않은 책일지도. 아, 그러니까 이거 빨리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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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헤집은 방의 풍경.

 

  

 

 

이녀석이 안 보여 저 수많은 책탑을 치워야했어. 마침 이 녀석은 거의 끝쪽 책탑의 맨 밑에 깔려있어서 어쩔 수 없이 책탑을 다 뒤집어봤어야했.....

 

 

선택받은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의 근간인 백성의 이야기.

그리고 제도.
특히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깊이 생각할꺼리가 많다. 근본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는것이 본질임을 이야기하고있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인간.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은 나중에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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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i 2017-02-2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더미가 장난 아니군요. 고생하셨어요.

chika 2017-02-26 21:16   좋아요 0 | URL
^^ 이번 기회에 책정리를 좀 해볼까 합니다.
 

 

왜 떠나는가?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 왜 안 떠나는가?

 

점심을 먹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간단히 - 라고 하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걸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락아닌도시락을 먹고 단 몇분이라도 운동삼아 걷기를 해 보기 위해서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겨우 동네 한바퀴를 멀리멀리멀리 돌아서 십여분에서 길게는 달랑 이십분을 채우고 들어오면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쳐 항상 조금씩 늦게 들어올때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건가.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어질 것 같다. 언젠가부터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고 있고. 먹는 양은 비슷... 아니, 열량으로 따지자면 더 많아지고 있는데 운동량은 줄어들기만 하고 소화도 잘 안되니 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할 수밖에.

 

 

"제목부터 설렌다. 나는 걷는다, 라니. 그런데 벌써 아쉽다. '끝'이라는 단어와 함께 마침표가 단호하게 박혀있다. 제목 하나로 사람 마음을 달뜨게 했다 애달프게 만드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신작이 돌아왔다. 기자 출신인 그는 예순두 살에 실크로드 1만2천키로미터를 혼자 걸어 다녔다. 그런 다음 [나는 걷는다] 3부작을 펴냈다. 이번에는 연인과 함께였다. 일흔다섯살에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3천킬로미터를 걷고 쓴 책이다. 책상 앞에서 책을 읽기만 하는 이에게는 묘한 질투심까지 준다. 길 위에서 본 세상, 곁의 길동무, 그리고 걷기 그 자체가 다 부럽다. 중간에 책장을 덮고 몇 차례 서성이게 된다. '나도 걷겠다!' 속으로 외치며.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은 걷기에 최적화된 도시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얼마나 걷고 있을까. 출퇴근과 점심시간에 걷는 것을 겨우 다 합해봐야 한시간이 될까말까한다. 그마저도 다 걷지는 않는다. 꼴랑 이십분의 거리를 버스타고 다닐때가 많다. 매연과 담배연기 가득한 대도로가 아니라 골목골목의 뒷길을 걸어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 숲속을 거니는 효과를 볼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나무와 꽃이 가득한 골목길도 많다. 그런데 왜 걷지 않고 있는 걸까......

 

 

 

 

 

 

 

 

 

 

 

 

 

 

 

"인간은 신의 장례식 중에 그들 자신을 재창조할 기회를 포착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무신론이라는 단어가 유럽 언어에 등장한 16세기 이래, 수많은 서구 지식인들이 종교에 맞서왔다. 하지만 종교는 약화될지언정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냉전이 끝나고 '역사의 죽음'이란 서사가 유포되면서, 신 또한 불필요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행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고, 종교는 또다시 거대한 화두가 됐다.

신을 옹호하다,를 쓴 테리 이글턴은 서구사회 무신론의 실패를 되짚는다. 이를 통해 '세속적 서구'와 '종교적 동양', '온건한 기독교'와 위험한 이슬람'이라는 현실 인식을 비판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읽는 흥미로운 참고서다. 덤으로 근현대 철학사까지 익힐 수 있다.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는 읽어보고 싶다. 다른 책도 그렇기는 하지만.

 

 

 

 

 

 

 

 

 

 

 

 

 

 

 

 

 

 

 

 

 

 

 

 

 

 

 

 

 

 

 

게이트웨이 미술사, 가 출간되면 사야겠다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직 책정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잠시 망설이고 있다. 재미있기는 한데 지금 당장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또 망설이고 있다. 도대체 신간은 왜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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