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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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히가시노 게이고가 에세이를 썼다고?

물론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한다. 평소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볼 때 그가 쓰는 에세이란 어떤 것일지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소설들은 좀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가 있어서 에세이마저 그런 느낌이라면 그닥 기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들어버렸다. 아니, 근데 잠깐. 이 에세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번역작품이라고 친다면 그는 평소 에세이를 많이 쓰나? - 그래, 좀 아닌듯해서 찾아봤더니 엄청난 다작을 한다는 그의 명성에 비해 에세이는 고작 5편을 썼댄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아, 그럼 그는 에세이를 잘 못쓰는거 아냐? 싶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은 나의 의견을 묻는다면 그가 썼다는 다른 4편의 에세이마저 다 읽어보고 싶다고 말하겠다. 그는 결코 작품으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꺼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제목만으로는 여행에세이인가 싶은 느낌이었지만 이건 올림픽 관전기이다. 이쯤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벌써 떠올려볼지 모르겠지만 이미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를 썼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일본에서는 꽤 인지도 높은 소설가들에게 올림픽 관전기를 쓰는 기획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읽는다는 느낌의 에세이라고 생각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계올림픽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계올림픽 이야기는 딱 그만큼의 재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를 더 선호할 것이다. 왜? 그건 내 맘이지, 하고 싶지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 하긴 이 나름대로의 이유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것인데 뭘.

 

하계올림픽과는 달리 동계올림픽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못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동계스포츠를 맘껏 즐기기에는 자연환경이 그닥 받쳐주지 않으니 인기있는 종목이라고 해 봐야 빙상에서 하는 스케이트가 많고 근래들어 점프스키, 봅슬레이에 이어 컬링, 아이스하키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잘 몰라서일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내가 아는 정도가 보통의 관심 정도가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답게 에세이를 마무리하면서 통계적인 부분까지 언급하고 일본의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와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그 이야기중에 우리나라와 비교한 부분도 있는데 - 십여년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쇼트트랙에만 한정된 우리 선수층에 대한 분석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새겨들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 그런데 뭐 에세이가 이런 동계스포츠에 대한 분석으로 넘쳐나냐? 라고 할지 모르니 이런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라. 술렁술렁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동계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인기작가로서 올림픽 관전을 한 글을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있게 올림픽의 정신을 느껴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올림픽이라고 하면 - 특히 우리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환경문제가 많이 언급되었는데, 미래의 가상 동계올림픽을 이야기하면서 지구환경에 대한 것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 이래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다.

 

한가지 강하게 덧붙이자면, 그의 에세이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라 인간으로 변한 그의 애완 고양이 유메키치가 썼음에 유념하시라. 그래서인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좀 어두운듯한 소설들과는 달리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이우일의 삽화가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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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도 시골생활은 처음입니다
바바 미오리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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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족 삼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향' 이야기가 나왔다. 조카녀석이 '고향'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순간 모두 잠시 머뭇거리는데 나 역시 '고향'을 뭐라 해야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조카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으니 태어난 곳이 고향이면 자신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서울에서 산 시간보다 경기도에서 산 시간이 훨씬 더 긴데 과연 서울을 고향이라고 할 수 있나? 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정착하게 되는 곳이 고향처럼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만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라고 생활한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흙을 만지는 것이 좋아지고 뭔가 작물을 키워내는 것이 좋아지는데 도시생활만 하고 자란 사람들은 어떨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궁금증에 답하듯 오롯이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가족이 아이들을 위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대부분 시골생활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다 자라고 은퇴 이후의 삶을 계획하며 도시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이 한창 커가고 있는 성장기에 시골 생활을 꿈꾸고 실행한 것이다. 그것도 시골로의 이주가 아니라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이 생활은 일단 시작해야 계속할 수 있다"(41)

말 그대로 과연 이런 생활이 가능할까? 라고 머리속으로만 아무리 계획하고 실현 가능성을 생각해본다해도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짧게 스치는 문장 하나도 허투루 넘겨지지 않는다.

사실 나 역시 주중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주말에 쉬고 싶을 때 과수원에 가서 가지도 치고 풀도 베고 해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언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귤을 따는 시기에도 대부분의 귤은 내가 쓰고 있으면서 일은 자꾸 빼먹는다. 시골 생활이 아니라, 그것도 매주가 아니라 가끔가다 주말에 가서 일을 하는 것도 힘이 든데 이들 가족은 매주 도쿄에서 미나미보소를 왕래하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그게 가능해? 라고 의문이 먼저 떠올랐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많은 어려움보다 이 가족의 생활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과 우리의 현실적인 조건은 다르니 구체적인 상황들은 달라지겠지만 도시와 시골이라는 두 지역 살이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삶의 변화를 갖고 오게 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으니 한번쯤 시골 생활을 꿈꿔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생활의 근거지에서 주말 동안 가서 생활할 수 있는 곳, 온 가족이 모두 함께 이동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하여 대중교통으로도 이동하기 편한 곳을 중심으로 살 곳을 찾아보는 것에서부터 시골생활은 도시생활과 달리 농부가 되어 직접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어야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각자의 생활패턴이 달라지며 겪게 되는 주말생활의 위기 같은 이야기도 담겨있다. 평일엔 도시에서 살고 주말에는 시골에서 사는 두 지역 살림의 이야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떠나 왠지 꿈과 낭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일까?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없다. 함께 작은 생명과 마주하고 가까이 하는 가운데서 자신들의 옳고 그른 행동거지가 아로새겨진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자연이라는 막연하고 거대한 존재가 단박에 우리 것이 되는 강렬한 사건을 지금도 매일매일 함께 경험하고 있다"(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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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3-27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라하에서는 도시에 생활을 두면서 주말에만 전원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생활보다 더 간소하게 잠과 식사만 가능한 코티지를 마련하고 작은 텃밭을 꾸미며 힐링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chika 2017-03-28 11:01   좋아요 0 | URL
두 집 살이가 아주 생소한것만은 아니네요.
개발되고 도시화되는 그런 시골 말고 정말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골이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욕심일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잖습니까.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진실되게 살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의 이면을 보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도 용납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전부랍니다. 사랑은 인내하며 무한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삶이 아주 길기를 바랍니다. (79-80)

 

 

저는 종종 생각해보곤 했답니다. 이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고 비교하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편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걸까요. 그러면 예전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편이 분명 더 나을 거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343)

 

 

 

사람들은 이 일을 잊을거예요.

아마 그러겠죠. 그러나 전 잊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원치 않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건 확신이죠. 사람들이 주일 아침 교회에 오는 것은 새로운 사상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심지어 오래되고 중요한 사상을 생각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전에도 들었던 얘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평생 들어온 얘기에 약간의 변화만 더한 얘기 말이죠.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가 고기찜을 먹으면서 예배가 좋았다고 말하며 흡족해한답니다. (345)

 

 

사람들은 불행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 문제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약간은요. 모든 사람들은 불행에서 불행으로 옮겨다니는 것 같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요.

하지만 좋은 일도 있잖니. 난 그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구나.

짤막짤막하게 그런 순간들이 있긴 하죠. 지금도 그중 하나고요. (346) 

 

 

 

 

이 방안에 평온함과 사랑과 조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집 바깥의 저 모든 힘들고 충돌하는 세상이 똑같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분이...... 여기서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대드에게 직접 말했다. 당신이 더는 고통이나 후회나 불행이나 가책이나 스스로에 대한 회의나 걱정없이 이 육신의 세계를 떠나실 수 있기를. 모든 시련과 곤경과 근심을 놓아두고 떠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오로지 당신이 평온하시기를 빕니다. 이 방안에 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저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모든 축복을 구하나이다. 아멘. (424)

 

 

 

 

 

 

특별하게 평범한 동네 슈퍼히어로 - 캐셔로

 

 

모닥불 옆에 있는 것 같아.

한 번만이라도 이런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면

난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223

 

 

 

힘이 없어도 돼.

이런 일에 그런 힘이 필요해선 안돼.

이런 작은 일에 그 소중한 힘을 써선 안 된다 같은게 아니라 그냥 사람끼리 아웅다웅 하는 데 그 힘이 필요해선 안돼.

내가 조그만 여자애이기 때문에, 특별한 힘이 없으면 저런 사람한테 뭐라 할 수도 없는 세상이어선 안돼.

그런 세상이면 안 돼.

- 하지만 네가 그런대도 세상은

아까 나는 그 세상에 살았어. 방금 내가 그 사람 나무랄 때, 난 아주 당연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조그만 여자애가 큰 남자에게 밤에 그렇게 나무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어.

내가 그 세상을 살아갈수록 그 세상이 이 세상과 가까워질 거야.

 

 

 

 

 

밤에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런 평범한 삶. 그들이 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삶이지요. 나는 거기에서 뭔가를 되살리기를 바랐습니다.

소중한 일상을요.

 

예전에 나는 사람들이 유해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잔인한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내가 본 것은 상대방에 대한 다정한 태도입니다. 여름날 밤에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 이 평범한 삶 말이예요. 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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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 - 25개국 522일, 미니벨로 세계여행!
황장수 지음 / 알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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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자들이여 여행을 떠나라.

오늘은 이것저것 할일이 많았다. 분명 아침까지만해도 그 많은 일을 하나씩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펴는 순간 모두 잊어버리고 책만 들여다보고 말았다.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한장씩 넘길때마다 빠져나오기 힘든 풍경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정말 모든 것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들어버린다. 그동안 많은 일에 치여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일년이 지나가버렸고 그렇게 또 일년이 지나가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지고 그럴수록 예전과 달리 몸이 먼저 반응하며 통증을 전해온다. 한참 일이 바빴을 때 오후만 되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괴로울만큼 힘들었었는데 요즘 좀 여유가 생기고 잠시이기는 하지만 사무실에 상사가 자리를 비우고 있으니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 하루하루가 편하게 지나간다. 그러니 오백일이 넘게 세계여행을 떠난 저자의 여행동기가 더 와 닿는다. 나는 지금 당장 떠날 용기를 갖지 못했으나 과감히 첫발을 내딛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 온 저자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고 싶어진다. 한없는 부러움은 내 몫일뿐이고.

 

공부하느라, 취업준비하느라, 일하며 돈버느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지금 직장인 대다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는 잠시 다른 길을 선택해보게 되기도 한다. 그냥 세계 여행이 아니라 '느린 여행'을 하고 싶어서 미니벨로 여행을 선택하고 지금이 아니면 떠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2013년 4월 여행을 떠난다. 거짓말처럼 외국인에게 폐쇄된 국경을 중국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건너게 되고,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고, 이정표 하나 없는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들면 죽음에 이를수도 있을텐데 기적처럼 마을에 도착하고, 마음씨 좋은 친구들과 지역주민들을 만나 함께 여행하며 지역의 음식을 맛있게 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기나긴 여행을 했다. 우연처럼 너무 좋은 인연들을 만나고 멋진 풍경 속에서 그 자신만의 여행을 한 그의 글은 처음 읽었을 때 여행을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을지 마음 졸이고, 이 길의 끝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를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느끼고, 지저분한 숙소와 사기꾼을 만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보다 저자에게는 여행길에서 만난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더 기억에 남고 그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것이어서 많은 일들이 우연과 행운의 연속처럼 느껴졌을뿐일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어떨까. 당장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며 지레 포기하고 마는 내 모습이 지금의 현실이고 그것이 전부일까. 그처럼 혼자 느린 여행을 떠날수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삶에 맞는 나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이란 그런것이고 그것이 삶일테니. 그러니 다시한번 되뇌어본다. '힘든 자들이여 여행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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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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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하나 만들 줄 모르지만 파괴할 줄은 아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잎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 우리는 모두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호프 자런은 한 과학자로서 다른 과학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랩걸인 것이다.

 

랩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읽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든 좋아서 -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자세히 알지못하면서도 무조건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한데 - 과학자가 쓴 식물 이야기는 좀 딱딱하고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감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왠 횡재인가. 과학자라 불리는 호프 자런의 이 책은 과학자로서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서전을 쓴 듯한 에세이는 문학으로서도 아주 훌륭한 이야기라고 느껴지는데 그것이 너무 좋았다.

 

이 책은 식물을 이루는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만 또 하나의 비유로서 호프 자런 자신의 삶과 과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린시절 문학을 공부하는 어머니와 함께 문학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하지만 또 과학자였던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과학자로서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녀에게 운명적인 만남이라 느껴지는 빌과의 만남과 연구 프로젝트 비용을 받기 위한 노력, 한눈에 반해 결혼하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런 삶의 이야기와 과학자로서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식물의 특성에 대한 이야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식물의 성장과 인간의 삶의 모습이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호프 자런은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고 말한다. 중대하고 기초적인 면에서 우리와 다르며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으며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할 수 있다(399)

그녀의 말처럼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인간의 욕심과 필요에 의해 식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수많은 질문을 던지도록 하자.

우리는 이미 과학자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시작하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나무를 심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진다.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부활초들은 대부분 작아서 우리 주먹보다 크지 않다. 보기 싫은 외모에 작고 쓸모없고, 그리고 특별하다. 비가 오면 부활초의 이파리는 다시 부풀어 오르지만 48시간 동안 초록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극적인 인생도 결국은 계속 갈 수 없어서 장기적으로는 부활초마저도 시들고 완전히 죽는 때가 온다. 그러나 잠시 스쳐지나가듯 누리는 영광스러운 그 순간 부활초는 다른 식물은 전혀 모르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누린다. 바로 초록이 아니면서도 성장을 하는 비밀 말이다. (2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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