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스티커 페인팅북 : 명화 - 안티 스트레스 힐링북 프리미어 스티커 페인팅북
베이직콘텐츠랩 지음 / 베이직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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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스트레스 힐링북

스티커 페인팅북에 따라붙는 말이다. 실제로 안티 스트레스의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해보면 안다. 꽤 오래전에 스티커북을 처음 받았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고 스티커 번호를 찾아 붙이는 것이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얼마전 시간을 보내기가 무료해 스티커북을 집어들어봤는데 은근 재미있었다. 그제야 예전의 것은 어린이용이라 그런지 스티커도 크고 숫자도 많지 않아 재미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도라면 정말 어떤 색을 칠해야 좋을까 고민하고 어울리지 않으면 괜히 속상한 컬러링북과는 달리 정말 아무 생각없이 번호에 맞는 스티커를 찾아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진짜 안티 스트레스 힐링의 효과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 나의 이런 말에 친구는 손이 똥손이라 정교하게 붙이지 못하면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며 반론을 펼치기는 했지만.


이 스티커북에는 프리미어가 붙어있고 그에 걸맞게 스티커북의 재질도 탄탄하고 두껍다. 그리고 세계의 명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점선으로 된 부분을 뜯어내어 스티커를 다 붙이고 나면 액자에 담거나 액자 형태로 만들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수도 있게 되어 있다. 

저녁시간에 짬짬이 스티커북을 펼쳐놓고 번호에 맞는 공간을 찾아 스티커를 붙이다보면 안티 스트레스 효과에 더하여 손운동을 하고 두뇌활동도 하면서 치매예방도 할 수 있고 집중력을 키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쉽게 붙일 수 있는 방법은 스티커를 붙여야하는 작품의 번호에 맞게 스티커를 찾는 것이지만 붙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 순서대로 A1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하는 방법을 쓴다. 


첫작품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해볼까 했는데 이건 무려 스티커가 A에서 F까지 있는 작품이라 생각을 바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완성했다. 번호 순서대로 찾아가며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퍼즐맞추기의 판을 놓고 하나씩 맞춰가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나름 심혈을 기울였는데 빈틈이 보여서.. 이런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까 두렵지만 그래도 완성의 재미가 더 크다.



하나의 작품을 끝내고 이제 고흐의 해바라기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더 넓게 퍼져있기는 하지만 A1을 금세 찾고 A3부터 8까지 여러번을 훑어볼때까지도 A2는 절대 눈에 안띌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되면 신나서 스티커를 붙이고 스티커를 붙이는데 집중을 하다가 그동안 찾았던 번호를 또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단점을 뺀다면 꽤 재미있다. 특히 명화 스티커 페인팅 북이라 그림을 완성해가는 느낌도 좋다. 이러다가 또 책읽는 시간을 줄어들고 스티커 붙이기에 빠져들까 걱정될만큼 별 생각없이 즐기는 재미가 있는 안티스트레스 힐링 북,임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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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가명강 시리즈 15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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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끌게 하는데 특히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부제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믿고 읽는 서가명강 시리즈여서 부담없이 덥석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다. 그 이유는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문학의 고전 작품을 최근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작품들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지만 - 사실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는 이 책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번역서를 찾아보니 이 강의가 있을즈음에 번역된 책이 출판된 것 같았다. 아무튼 - 처음 들어본 작가와 작품이고 다른 작품들은 분명 오래전에 한번쯤은 읽었었지만 서정적인 감상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그냥 읽어보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읽고 감동해도 좋다! 고전을 즐기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라는 문구에 제대로 홀려서 무작정 전진을 했던 것인데 사실 문학작품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어도 별 차이는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데미안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다"(162)


정서적 혹은 감정적 경험으로 읽는 고전을 언급하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언급되고 있는데 나 역시 이 시에 담겨있는 의미를 모르면서 감성적인 시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2차세계대전 나치의 집권기에 쓰여졌고 나치에 저항하던 동료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혼자 살아남은 그 감정을 표현해낸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그의 시가 처음의 느낌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을 읽는다면 알 수 있는 정서를 그 시를 처음접하는 외국인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걸 떠올린다면 딱 이해가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사실 문학작품에서 제주의 4.3이나 광주 5.18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나는 그 시대와 정치적인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학속에 담겨있는 은유를 알고 이해하며 문장속에 담겨있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조카는 명확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 역시 청소년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한탄할 필요는 없지않을까. 대신 아는만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새롭게 데미안, 젊은 베르터의 고통, 변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카프카의 작품은 성인이 되고 읽어 그 간극이 크지 않지만 성장소설로, 사랑소설로만 알고 있었던 작품들에 대해서는 다시 읽어보면 그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글은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새로운 읽기, 여러 의미에서의 새로운 읽기와 더불어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카프카는 특별하다. 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동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미지를 기괴한 이야기로 형상화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해석, 하나의 이해로 고정시킬 수 없다. 카프카는 있는 그대로, 기이하고 이해가 불가능한 방식 그대로 읽고 즐겨야 한다. 이 경우, 해석은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카프카는 우리에게 새로운 읽기의 방식을 요구한다"(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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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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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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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찬 눈빛, 비정한 거리에서 의리 하나로 살아가는 패밀리, 복수와 배신이 넘쳐나는 어둠의 뒷골목에서 정의를 찾아 나서는 외로운 탐정. 글과 영화로 배운 하드보일드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다. 내게는. 그래서 현실에서 중년의 아저씨가 담배를 꼬나물고 있으면 백퍼센트 인상을 쓰지만 "담배를 물고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았다" 같은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분위기에 혹하게 넘어가버리고 만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는것이지!를 외치면서 말이다. 아, 이야기의 끝이었는데 시작을 외치다니. 아니지, 그렇게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맞는 는것이다. 


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는 꽤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새롭게 번역 출판된 시리즈인가 싶어 원제의 출판연도를 먼저 확인해봤다. 2018년, 이전의 사와사키 후 무려 14년만의 등장이 맞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사와자키에게도 뭔가 변화가 있을까? 했는데 여전히 그는 휴대폰이 없고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혼자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21세기의 독자를 상대로 과거시대의 탐정이야기를 회고하는 것도 아닌데 현시대에 휴대폰도 협력자도 없이 혼자 탐정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사와자키 탐정의 입을 통해 선수를 쳐 버린다. '휴대폰이 있으면 편리하겠군' 이라거나 잠복을 위해 다른 흥신소의 직원을 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후계자를 키우는 것은 아니라며.


주변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묘미는 그 이야기의 구성에 버금가게 툭툭 던져지는 대사와 사실적인 묘사에 있다. 이야기의 스포일러와 관계없어 보이는 대사 하나를 끄집어 내 보면,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 이야기의 무거움이라기보다는 우리집 골목의 끝 어딘가 오래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이웃집 탐정 이야기 같은 느낌도 들어버린다.


"이놈들을 방패 삼아 한판 뜰까!" 조수석 남자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빛 속에서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렇게까지 희생할 의리는 없잖습니까." 운전석 남자가 외쳤다. 요즘 폭력단은 어디든 나이 어린 쪽이 상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324)


긴박한 상황에서도 상식을 언급하고 있는 사와자키 탐정의 이야기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코지와 하드보일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기도 하지만 탐정사무소의 의뢰에서 시작하여 은행강도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건의 흐름은 뒤로 갈수록 정교하게 맞춰지는 퍼즐을 완성해가는 느낌이 든다. 


의뢰인이 아닐 것이다, 라는 확신과 달리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찾아 온 사람은 유명한 저축은행의 지점장이었고 그 의뢰 내용은 은행에 대출 예정인 아카사카 요정 여주인의 사생활에 대한 조사였다. 조사 의뢰를 받은 여주인을 확인하던 사와자키는 그녀가 이미 병으로 사망하였음을 알게 되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의뢰인이 모르고 있었는지,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의뢰를 요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결국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지점장이 근무하는 저축은행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은행강도 사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모치즈키 지점장은 계속 행방불명 상태로 찾을 수 없게 되는데...


솔직히 처음 이야기를 읽기 시작할 때는 도대체 이 분위기는 무엇인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 퍼즐이 다 맞춰지고 난 후 다시 되돌아가 읽기 시작하면 그 세심한 묘사들이 정확하다는 생각에 두번째 읽는 글이 더 재미있어진다. 나만 그런것은 아니지 않을까? 의심스럽다면 다시 읽어보시길. 애매한 표현들이 명확해지는 재미가 보일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당신이 내 아버지입니까?'라는 질문에 웃어버렸지만 그것에 집중을 해버린 나머지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놓쳐버려 사건의 전환점, 아니 관점을 바꿔야 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에서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나는 탐정보다는 탐정소설을 읽는 독자의 역할이 딱인가보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의미에서 사와자키 탐정의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빨리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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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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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래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구원의 날'이라고 하니 왠지 종말신앙과 관련된 SF소설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소설이 이미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고 있으니 터미네이터와 같은 구원의 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괜히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정해연작가의 '구원의 날'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하는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우리의 현실 이야기로 되돌아와야겠다. 


아빠 선준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고, 혼자 아이를 돌보던 엄마 예원은 불꽃놀이 구경을 갔다가 아들 선우의 손을 놓치고 만다. 그 짧은 시간의 손놓침으로 인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우를 찾지 못하고 결국 선준은 아이를 찾느라 신경이 예민해진 예원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한 예원은 선우만 알고 있는 개사된 동요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 로운을 병원 로비에서 만나게 되고 로운을 선우로 착각한 예원은 로운을 데리고 병원을 탈출해 집으로 가버린다. 자칫 로운의 유괴범으로 몰릴 수 있는 예원을 찾아나선 선준은 로운이 자신의 아들인 이선우를 만났으며 울림기도원에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워진다. 며칠 전 발견된 강가의 시신에서 선우의 십자목걸이가 나왔고 과학적 증명을 위해 DNA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예원의 믿음과 로운의 말대로 선우는 살아있는 것일까.


미스테리가 아니지만 미스테리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는 숨가쁘게 선우를 찾아 헤매는 부모의 마음처럼 단숨에 그 흐름을 좇아가며 단숨에 읽어버리게 된다. 영화처럼 현재의 사건에서 시작해 과거의 사실이 오버랩되며 현재의 일들이 이해되는 구조의 이야기는 예상치못한 그 사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반전의 느낌을 갖게 한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단순히 미스테리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꾸만 멈칫하게 되는데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몰라도 그 '엄마'라는 것에 시선이 가게 되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사이비 종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내 탓'에 대한 깊은 상심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벌하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손을 잡고, 놓고, 놓친다. 하지만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있다. 그걸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결국 용서의 이야기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독자의 관점에서 그 용서라는 것이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엄마란 존재는 결국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270)라고 하는데 아이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 사이비종교에 빠져든 엄마도, 아이의 옆에 없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엄마도, 아이를 버렸다고 자책하는 엄마도... 모두 그 사랑의 형태가 왜곡되어 나타날지언정 엄마는 엄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믿고 싶다. 특히 요즘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아동학대의 온갖 이야기가 내 마음을 파고들어 힘들게 하고 있는데 부디 제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기를. 

지금까지 잘못하고 있더라도 다시 손을 잡고 용서받고 치유되고, 우리의 아이들은 사랑만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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