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출간기념 사전 서평단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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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한꺼번에 다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직 세 권은 래핑도 뜯지 않은 상태이고, 우리의 취향은 첫 장에서 어, 이건 뭐지? 하다가 지금은 글에 쏙 빠져들어가고 있다. 무..물론. 어머니 모시고 병원왔다갔다하느라 오늘은 엉뚱하게도 이덕일의 식민사관에 대한 글을 신 나게 몇쪽 읽고 멈춘 상태이긴 하지만.

엊그제 책을 담으러 방에 들어갔다가 책탑이 무참하게 무너진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정리는 커녕 겨우 책탑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너질까봐 조그맣게 옆쪽으로 또 다른 책탑을 쌓아올리고 황급히 빠져나오고 말았다. 거기에다 나는 오늘도 천일야화 박스를 담아넣고, 무려 예약주문으로 사놓고는 읽지도 않은 책들을 마구 집어넣고 도망쳐나왔다. 그리고 오늘. 책주문을 해야하는데 못했다고 기웃거리고 있으니 아마 미쳐도 단단히 미쳐분거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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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기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적의 세기, 라는 뜻 안에는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담겨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기적의 세기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SF와 지구 환경에 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내용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라는 것에 더 중점을 둘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지구의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소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하루의 길이가 달라지는 '슬로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지구에서의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수많은 것이 조금씩 엉켜가기 시작한다. 하루가 몇 분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스물네시간, 칠십시간... 밤 낮을 구분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밤낮의 구분없이 기존의 24시간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학교생활을 비롯한 모든 일과가 이루어지게 된다. 해가 내리쬐고 있는데도 커튼을 내리고 잠을 청해야 하고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데도 등교를 위해 길을 나서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에 반발해 리얼타임을 따르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은 점차 고립되어 간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슬로잉 탓에 내 사춘기가 어땠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 사춘기는 지극히 평범했고, 내가 느낀 고통은 누구나 경험하는 흔해빠진 것이었으리라. 우연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경우는 흔하다. 어쩌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난 일 모두가 슬로잉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55)

그런 혼돈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도 소녀 줄리아는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슬로잉'은 그녀에게 실생활의 변화뿐만 아니라 친구관계, 가족의 유대감도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슬로잉이 진행되고 있는 불안정한 시기에도 소녀의 첫사랑은 싹이 트고 무너져내려가기는 하지만 일상에서의 행복도 느끼게 된다.

슬로잉이 아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슬픈 사건들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험난한 항해였다. 힘든 여정이 늘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132)

 

사실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춘기 소녀의 풋사랑이 담겨있는 성장소설을 공상과학이라는 장르로 표현한 독특한 소재의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삶과 죽음, 인간의 본성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인간관계들...그리고 지구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결과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완전히 무너져버린 지구환경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이 접해봤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슬로잉이라는 표현처럼 지구가 조금씩 현재의 환경을 무너뜨려가면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갈수록 더 끔찍한 미래를 예상하게 되는데, 그 변화가 일상 생활에서의 구체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기때문에 진지하게 현재의 삶과 미래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 익숙했던 것이 점점 낯설어졌다. 우리의 해가 정해진 시간에 뜨고 졌다는 사실이 놀랍게 생각되었다. 내가 한때 외로움도 수줍음도 덜 타는 행복한 소녀였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나간 시절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화가 덧입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조금만 비틀면 비정상으로 바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처음에는 새로운 생활이 김하게 생각되었지만, 얼마 안 있어 옛날 생활이 기묘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147)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나 온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다들 그렇게 기적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고, 간혹 기묘하게도 느껴지는 그 옛 시간들은 신화처럼 과장되고 슬그머니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실제처럼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일년 삼백육십오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하루의 생활이 지속되고, 한때 행복한 소녀였다는 기적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는 지금의 이 시간도 역시 기적의 시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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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잭과 콩나무 애덤 기드비츠의 잔혹 판타지 동화 2
애덤 기드비츠 지음,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아무리 새로 쓴 동화이야기라고 해도 잭과 콩나무는 내 관심을 벗어난 이야기다. 아니, 이야기였다. 단편동화가 왜 이렇게 두툼한가,라는 생각은 당연하게 이 책이 단편동화모음집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는 동안 시끄럽고 번잡한 대기실에서 가볍게 읽기에 괜찮을듯하여 챙겨들고 나갔었다. 그런데 선입견을 무참히 깨버리고 이 책은 정말 흥미로움을 주고 있다. 아, 물론 아이와 함께 읽을 일이 없으니 이 책이 얼마나 어린 친구들까지 읽을 수 있을까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라면 함께 읽어보고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독서활동이 될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잭과 콩나무는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동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가끔 인용하며 쓰곤 했던 성경말씀으로 시작되는 글은 이 책에 대한 기대치를 또 다르게 해주고 있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라는 것은 그 뜻을 생각하며 쓸 수 있기는 하지만 또 누군가는 성경이 쓰여질 그 당시는 청동거울을 쓰고 있어서 지금의 거울처럼 뚜렷하지 않고 모든 사물을 어렴풋하게밖에 비출 수 없어 그런 말이 나온 것이라며 찬물을 확 끼얹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잠깐. 이건 우리의 상상력과 희망에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사실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위험한 잭과 콩나무는 바로 그러한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기나긴 모험 이야기이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로 시작되는 듯한 이 이야기는 공주의 키스로 왕자로 변하여 둘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 다리를 잃은 개구리가 공주를 무서워하며 이십여년을 지내게 되고 왕비가 된 공주의 딸인 공주 질을 만나게 된다. 질은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벌거벗은 채 행진을 하다가 부끄러움에 도망쳐나오게 된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에게 휘둘리며 놀림을 당하기만 하는 잭은 암소 한마리와 작은 콩 한알을 바꿔버리게 되고, 그 후 잭은 질과 개구리와 함께 마법 거울을 찾아 떠난다.

온갖 동화 이야기속의 모험을 거쳐가면서 그들은 지혜와 용기를 쌓게 되고, 마법 거울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건 아주 지혜로운 생각이야.

하지만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변하기 위해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 넓고 거친 세상으로 나갈 때는 조심해야 해. 지혜는 얻기 힘들지. 일단 얻는다 해도 잃기 쉬워. 특히, 넓고 거친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 자기가 달아난 곳으로 돌아올 때에는."(377)

 

'위험한 잭과 콩나무'는 아이들과 함께,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라도 충분히 동화속의 여러 이야기들을 거치며 모험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이 될 것이며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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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죽음과 삶에 대한 글이 평소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책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성경 욥기의 이야기가 며칠 전 미사전례때도 나왔다. 사실 '욥'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어보지 않아서, 아니 진지하게 읽어봤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을 읽으며 죽음이란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이라든가, 죽은 이들의 염원을 이어받고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찾는다거나 죽음으로써 '영원'을 얻게 된다 라는 이야기들은 이해가 되는 듯 하면서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마음]은 저자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소설 속의 작가로 등장하여 사인회에 찾아 와 도움을 청하는 한 청년과의 메일을 통한 교류와 만남을 통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치유되어 가며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소설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려쓰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인문학적인 '죽음'에 대한 성찰로 읽히고 있어서 문장 하나 하나 깊이 있게 읽어나가야만 해서 그리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절친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나오히로는 강상중 선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을 보낸다. 어느 날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의 죽음은 상실감뿐만 아니라 친구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만 하는 존재의 의미가 사람은 어차피 죽어버리는데 과연 살아있는 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나오히로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강상중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소설에서는 나오히로의 학교 생활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곳에서 마주한 죽음들, 나오히로의 시신 인양 자원봉사활동이 그려지면서 더 생생하게 죽음의 현장에 한발 다가서게 되기도 하고, 그와 학교 친구들이 만들어낸 연극 '친화력'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의 본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더 깊이있는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제의 이야기에서 저자 강상중 선생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안고 있으며, 일본의 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과 그 후유증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세월호 사고 이후 갑작스럽게 닥쳐 온 죽음의 슬픔에 빠져있느라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스개처럼 우리는 오늘도 하루 하루 죽어가고 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음 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신앙을 갖고 있지만 가끔씩 죄없는 어린 영혼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죽음을 통해 삶을 더 깊이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삶'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죽음' 가운데에는 인생의 '기억' 이 있고, 그 사람의 '과거'가 있는 것이며 '죽음'에 의해서 그 사람은 영원이 된다"라는 말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새삼스럽게 죽음은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삶은 죽음과 이웃하고, 죽음과 동전의 양면이고서야 비로소 더욱 빛나고 의미가 잇어진다, 다시금 그렇게 느꼈습니다.

죽음 가운데에 삶이 포함되어 있다.

삶 가운데에 죽음이 감싸져 있다.

그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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