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가 물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아요, 그렇죠,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병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증세가 나타나거든요. 고양이 스스로 죽음을 겨심하는 게 바로 그 증세예요. 그래서 어딘가 서늘한 곳으로 기어들어간답니다.. 피가 뜨겁게 달궈져 있으니까요. 그렇게 서늘한 곳에 웅크리고 죽음을 기다려요.
...

하지만 그냥 고양이가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비록 모두 녀석과는 상관없는 인간적인 이유이긴 해도, 하여튼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녀석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
내가 어디에 놓아두든 녀석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기운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입을 열어 용액을 받아먹으려 하지 않았다. 절대로. 남은 힘을 모두 거부의 뜻을 표현하는 데 쓰고 있었다.
...
그러다 검은 고양이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최악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관점에서 그랬다는 뜻이다. 어쩌면 검은 고양이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모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지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니까. 검은 고양이는 무슨 일이든 생전 처음 해 보는 새끼 고양이 또는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 같았다.  배변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 하지만 녀석의 증세가 차츰 나아졌다.
... 그래도 녀석은 이제 평범한 본능을 지닌 평범한 고양이로 살아가고 있다.

102-115

 

 

 

 

고양이는 낯선 생물이나 사건을 몇 시간 동안 계속 지켜보곤 한다. 침대를 정리하는 모습,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 모습, 상자를 풀거나 싸는 모습, 바느질, 뜨개질 등등 무엇이든 지켜본다. 그럴 때 녀석들은 무엇을 볼까?.. 녀석들의 눈에 비친 광경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새끼들을 꼼꼼하게 교육시키는 검은 고양이는 새끼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할 기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런 녀석이 왜 양편에 각각 한 마리씩 새끼들을 거느리고 앉아서 오전 내내 짙은 색 천 위에서 금속 가위가 번쩍이는 모습을 지켜보았을가? 왜 가위 냄새, 천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작업하는 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자신이 관찰한 것을 새끼들에게 전달해 장난꾸러기 새끼들 또한 같은 행동을 하게 했을까? 새끼들은 방금 어미가 했던 그대로 가위와 천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그러고는 앉아서 지켜보았다. 어미 고양이는 뭔가를 배워서 새끼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색 고양이 임신을 가볍게 건냈다. 정원 가격으로달려가서 나무를 쪼르르 올라갔다가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때 녀석이 눈을 반쯤 감은 채 박수갈채를 기대하듯이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다. 녀석은 계단을 한 번에 서너 칸씩 뛰어내렸다. 소파 밑에서 바닥을 기어다녔다. 사람이라면누구든 자신을 처음 보면 황홀경에 빠져서 어머, 이렇게 아름다운 고양이가 다 있다니, 하고 외치기 십상이라는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손님이 오면 항상 문 앞에서 적절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간을 타고 아래층 계단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려고 하다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굴욕감을 느낀 녀석은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계단을 굽이굽이 돌아서 한참 동안 걸어 내려가는 편을 더 좋아하는 척 했다. 나무를 쪼르르 올라갔다 내려오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더니, 아예 나무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새끼들이 배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당황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72-73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이강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음악을 즐긴다기보다는 어쩌다 듣게 된 음악이 좋으면 나중에 기억날 때 그 음악을 찾아 듣는 정도일뿐 일상에서 그리 음악과 밀접하게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오디오가 있을 때는 평일 퇴근 후 저녁이나 주말에 가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오디오가 고장 난 이후로, 컴퓨터마저 노트북으로 간단한 워드만 작성하고 있다보니 꽤 많이 소장하고 있는 시디를 못들어본지 십여년은 되어가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연결을 하면 유튜브로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어서 더욱더 시디는 장식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엔 이 책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보니'라는 단어에 조금은 가볍게 읽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알못인 내게 큐알코드까지 담겨있고 초보자도 즐길 수 있는 음반의 추천이 담겨있는 책이라면 이 기회에 재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생겨 책을 덥석 잡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시작은 선생님인 저자가 방과 후 수업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학생들과 함께 재즈를 듣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와 추천하고 싶은 노래들과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재즈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들을 책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급한 마음에 내용을 채 펼쳐놓지 않고 처음 나온 큐알코드를 찍어 음악부터 틀어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몰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연주들, 리듬을 듣기 시작하면 아, 이 노래! 하게 되는 연주들도 많고 지나가다 주워들은 음악가들의 이름도 많이 나와서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음악가들의 생애나 저자의 곡에 대한 감상평이 담겨있어서 곡을 듣는 가이드가 되어 준다. 물론 각자의 감상평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단순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까...싶었는데 책의 어느 부분에 저자가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글짓기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는 가르침에 자신 역시 글을 쥐어짜내는 글짓기를 하지 않고 글쓰기를 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나 역시 그저 내가 느끼는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재즈를 잘 모르지만 친구가 추천해 알게 된 니나 시몬이나 피츠제랄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현대 재즈 가수인 노라 존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노라 존스는 이미 팝음악으로 유명한 가수라 언급을 안했을지 모르겠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재즈를 가장 보편적으로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소개해줬으면 하는 사적인 바램이 맞겠지만.

그래도 취향 확고한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평소 듣지 않던 루이 암스트롱을 들었다고 하니 책에 실려있는 음악을 그저 개인취향이라고만 하면 안될 것이다. 아는 노래보다는 모르는 노래가 더 많이 소개되어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키스 재릿이나 스탄 게츠를 찾아 들어봐야겠다. 어쩌다보니 음악을 들을 시간이 나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라는 당연한 말에도 호기심이 동한다. 아니,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이 당연한 명제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궁금했다. 이 말에 대해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지만 사실 법의 내용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은 것이 또한 법이다.

 

최근에 지하철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람이 있는데 그에 대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뉴스로 이슈화 되면서 가해자를 찾아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법원에서의 판단은 피의자가 개인의 성채라 할 수 있는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의 위험이 없는데도 가택침입 수준으로 피의자를 체포했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것이다.

정신 질환이 있는 피의자가 또 어떤 범죄행위를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체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가택침입을 하면서까지 긴급 체포를 해야하는 사안인지는 사실 좀 헷갈리기는 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범죄자의 인권도 보장받아야 하는 것임을 떠올려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책의 부제는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라고 되어 있는데 법 규정에 '행복 추구권'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인간이란 행복할 수 없고 단지 추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철학적 함의가 담겨있을 수 있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 즉 잠시 고통이 없을 때 느끼는 쾌감이며 직전 고통이 클수록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비추어 봤을 때, 행복추구권은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하다. 행복추구권에 관한 사항을 공적 사안으로 객관화해 획일적으로 규율해서는 안된다"(232)라고 말하고 있다. 뭔가 간단한 말 같으면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심오하지 않은가.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은 평화로운 상태이고 평화의 유지를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 같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국민, 주권, 영토에 대해 헌법의 기초에 대한 개념이나 수립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왠지 그저 개념적일뿐이라는 생각과 정치적인 내용으 배재한 듯한 느낌에 그냥 술렁거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국민주권, 법치국가, 자유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왜 우리에게 헌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법이 우리를 제한한다고 생각해왔지만 그 법이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어떤 측면에서는 다수의 폭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관점이 아니라 다수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인간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좀 더 합리적인 결정에 이를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뭔가 새롭게 다가왔다. 부디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주권을 가진 국민을 위한 봉사직을 행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참 괜찮은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 술꾼의 술, 버번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조승원 지음 / 싱긋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스키는 커녕 맥주도 제대로 못 마시는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누군가 커피에 위스키 몇 방울만 넣어도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고 해서 정말 맛이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마셔보니 확실히 커피 향과는 또 다른 향이 나고 맛은 훨씬 좋아졌다. 더구나 그 때 마셨던 커피는, 기어코 위스키를 넣은 커피를 마셔보겠다고 자판기에서 뽑아 낸 백원짜리 믹스커피였는데도 말이다.

술 맛을 모르면서 술에 대해 알고 싶다니 조금 웃긴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역사 이야기와 문화 이야기가 어우러지면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 그리고 솔직히 이런 말은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양장본에 깔끔하고 멋스럽게 편집된 책은 내용을 읽기 전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버번 위스키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었는데 대략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위스키가 버번 위스키인 것은 아니다. 우리 막걸리가 기본적으로 곡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버번은 최소 옥수수가 51% 이상 함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맛에 좌우되는 것처럼 버번 역시 좋은 곡류에 좋은 물이 더해져야 맛이 훨씬 좋아진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라 생각하는데 특히 켄터키 지역의 위스키가 맛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켄터키에는 석회암이 많은데 물이 석회암 지대를 통과하며 철분은 제거되고 마그네슘은 풍부해진다. 철분이 제거된 물로 위스키를 만들면 쓰지않고 색깔도 검게 변하지 않는다."(256) 그러고보니 저자가 버번 위스키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찾아 간 곳이 켄터키였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버번' 자체가 상표와 동일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버번 위스키의 여러 상표들, 그러니까 한번쯤은 들어봤던 짐 빔이라거나 메이크스 마크에 더해 여러 곳을 다니며 그곳만의 배율이라거나 오크통 관리법, 증류기나 위스키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사실 고유 상품에 대해서는 헷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버번 위스키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기자 출신이라 스스로 팩트 에세이밖에는 쓸 수 없다라고 했는데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정말 알기 쉽고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 거기에 더하여 위스키 제조과정에 사용되는 용어나 기구들에 대한 개념을 먼저 알려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또 자연스럽게 쓱쓱 이어나가는 이야기에 빠져있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위스키를 전혀 몰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설명에 반신반의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처럼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며 술맛을 모르는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투명하고 거친 곡물 증류액은 숙성고에서 갈색의 향긋한 위스키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딱 세 가지. 오크통과 시간, 그리고 인간의 인내심이다. 이 세가지가 조화를 부려 위스키가 탄생한다."(166) 라고 하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정말 버번 위스키 딱 한모금만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