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님은 내가 외과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난 심리학을 선택했어.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거든.˝
˝왜죠?˝
˝외과 수술엔 규칙이 있어. 풀어야 할 문제는 기술적이고 분명히 실재해. 반면 심리학은 그보다 본능과 공감에 많이 의지하지. 의사는 작업의 결과를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어. 수술후 모든 답이 풀리거든.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았는지, 아니면틀렸는지. 앞을 내다보고, 뒤를 이해하면서.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 사는 방식 아니겠어? 하지만 심리학자는 확신이란 게 없어. 뇌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필요한 부분을 재배열할 수도 없고 손끝으로 구멍을 찾아볼 수도 없지, 설령 찾는다 해도 봉합선과 죔쇠로는 고쳐지지도 않아. 그래도 난 그래보려고 무던히애를 써. 하다못해 종잇조각이라도 끼워 구멍을 메워보려고 하지 고치고, 보상하고. 내가 쓸 수 있는 도구는 오로지 말과 아이디어와 생각뿐이야.˝
˝세상을 치유하고 싶어요?˝ 나는 말한다.
˝어쩌면 나 자신을 구제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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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진실이고 현실인지 어떻게 알지? 우리가 한때 사실로받아들였던 것들이 이제는 거짓이 돼버렸다. 지구는 평평하지않고, 흡연은 건강에 좋지 않고, 명왕성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니며, 마녀들은 세일럼에서 화형에 처해지지 않았고, 인간에게는다섯 개 이상의 감각이 있다. 모든 것은 반감기를 가지고 있다.
진실마저도.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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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답해 준 다윈


최재천 : 올바르게 잘하고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윈의 사상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말씀해 주세요.
피터: 생각나는 대로 말하라면, 다윈의 진화는 우리가 어디에서왔는지 말해 줍니다. 모든 생물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 주는 그런 이론이 있는 것은 그런 이론이 없었을 때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이해할 수 있게 해 주죠.
로즈메리: 사람과 질병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떻게 질병에 대응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새로운 병에 걸리는지,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진화 이론을 이해하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질문을 하게하죠.
최재천 : 갈라파고스가 두 분께 어떤 의미인지 가능한 한 짧게 말씀해 주신다면?
피터: 아, 말문이 막혀버리네요. 로즈메리, 당신에게 갈라파고스는 무엇인가요?
로즈메리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비교적 단순한 환경. 그곳에갈 때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돼요. 제게는 이 세상에서 다녀본 그 어떤 곳보다 자극적인 곳입니다.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곳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리 많은 생물이 사는 곳이 아니에요. 다프네 섬에는 겨우 마흔네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요. 복잡하다면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단순해서 질문하고 답하기에 안성맞춤이죠.
최재천: 다윈 흉내를 좀 낸다면 이쯤 되겠네요. ‘그토록 단순한 곳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니!(From so simple a place endless questions most beautiful and most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raised!)‘
로즈메리: 그거 멋지네요.
피터 :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답? ‘과거를 보여 주는 신기한유리창?‘
로즈메리: 그것도 멋지네요.



#############


저는 결혼 생활 초기부터 설거지를 제가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당시 설거지를 자원해서 한다는 게 한국 남성으로서는 퍽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할 때마다 빠르게 해치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그리고 늘 그 일을 아내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설거지하는 제 어깨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왜 나는 이것이 내 아내의 일이고 내가 그녀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는 같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결국 제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설거지를 정말 잘하고 싶어졌어요. 제 일이니까요. 그전에는 항상 설거지를 빠르게 끝내고 얼른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어 했죠. 하지만 그날부터 저는 차츰 설거지의 달인이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가끔 아내가 설거지하게 되더라도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결국 다시 하곤 합니다.


###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결과. 쉬워보이지만 실상 많은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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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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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D. 라이트(C.D.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209)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글을 읽는 느낌이라 그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번역의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다음은 저자가 다듬어지지 않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천천히 읽어가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작가인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고래 이야기로 시작해 환경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어서 생태환경에 중점을 둔 에세이 작가의 글인가 싶었는데 휴가여행을 이야기하며 수탈당하고 침략당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진작가의 연대기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사진작가의 사진과 활동을 통해 르포르타주의 의미에 대해, 자비와 연민에 대해 툭 던져놓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강렬하게 펼쳐놓고 있다. 

"집단 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131) 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나 자신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잠시 책을 덮어놓기도 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대학살은 알고 있지만 만약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역시 '기념'일뿐인 것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쓰기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이 아니라 깊이있는 통찰에 의한 날 선 것의 느낌이었나...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고.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개인의 체험 속에서 보편성을 찾게 되고 삶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레슬리 제이미슨의 에세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머리의 인용처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보는' 것이지만 같은 것을 본다고 같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또한 떠올리게 된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의도'와 '의미'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려 하지 않아도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을 읽다보면 애매모호함의 글이 아니라 명확한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애매모호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부끄러움 가득할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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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 D. 라이트(C. D. 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 

애니는 마리아 가족 그 누구에게도 자기 집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국경을 건너와 집을 찾아오면 결코 돌려보낼 수 없을 것을 알아서였다.
사진가 메리 엘런 마크와 그의 남편 마틴 벨은 1983년 타이니라는 이름을 가진 시애틀의 열세 살 성노동자를 중심으로 기록물 「거리의 아이들」을 제작하는 동안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어야 할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이들의 고통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기록하는 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도움이라는 부가적인 책임을 진다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란 지속 불가능해진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리 큰 도움을 주어도결코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마크와 벨은 자신들이 촬영한 아이들에게 돈은 절대 주지 않았으나 음식, 재킷, 신발은 주었다. 촬영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타이니더러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벨의 표현대로라면 "입양이나 다름없었다." 조건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나 타이니는이를 원치 않아 함께 뉴욕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수십 년간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로부터 19년 뒤 타이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늘 생각해요. 제가 뉴욕으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 P204

애니는 일기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온갖 신화적인 버전의 자신들을 심문한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스스로 구원자 행세를 해야 하나?" 그는 수십 년간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욕망과 싸워왔다. 한 일기에서 그는 자신을 "선한 의도를 가진
‘박애주의자‘라는, 나 자신도 속일 만큼 효과적인 가면을 썼지만 사실은 무방비에 취약하고 독선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예술가"로 묘사했다.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애니는 썼다. "인과응보를 내리는건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이 사진이 아는 모든 것과 함께 사진이 아직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본다. 그리고 이 알지 못함은 사랑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다. 사랑이란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헌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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