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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움푹 파인 구멍, 텅 빈 공허, 無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였다.
우연찮게도 생일에 '행복한 사건'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쓰고 있으려니 뭔가 머리속이 아련...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행복한 사건'이 말하는 '어머니'로서의 엄청난 느낌을 알수가없다. 이건 도저히 간접경험으로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고 해도 '어머니'에 대해 단 10%도 알수없는것과 같은 것 아닌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주위에는 결혼으로 충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한번의 유산을 겪고난 후 1년이 지나서 임신을 하였고 그로인해 행복한 미소를 짓는 친구를 봤고, 침흘리며 어기적어기적 기어다니는 아이를 안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친구를 봤다. 그런 모습만을 보던 내게 이 책의 첫머리는 너무나 냉소적이었다.
"그날, 눈을 뜨는데 기분이 언짢았다. 누운 채로 고개를 드니 내 앞으로 불룩 튀어나온 희한한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온몸이 쑤셨다. 열 시간이나 잤는데도 피곤했고, 더 자고 싶었다. 아랫배 주위가 가려웠다. 몸을 일으켜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려고 끙끙거렸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배가 떡하니 눈앞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깃털 이불을 들춰보고서야 비로소 내 배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툭 불거져 나온 배 이쪽저쪽으로는 양팔과 다리가 막대기처럼 매달려 있었다.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 바로 그때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았다. 네발로 엎드린 자세, 축 늘어진 양 볼, 생기없는 눈동자, 벌름대는 콧구멍. 임신부인 것인지, 아니면 한 마리 개가 된 것인지."(14-16)
아니, 이게 행복한 사건이라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위선인거야? 아니면 이 책을 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이름도 어렵군!)라는 작가가 지나치게 독설적인거야? 왜 이리 냉소적인 모습으로 임신부를 바라보고 있는거지?
당황스러울뿐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를 하면 나는 당황스러워진다. 도대체 뭐가 일어난거야?
처음 책을 술렁거리며 대충 읽었던 것 같다.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술렁술렁, '아, 이건 너무 지독하다. 지독하게 냉소적이야'라는 느낌때문에 더욱더 대강 읽고 말았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가 얼핏 '행복한 사건'에 눈길이 갔다. 우연찮게도 생일,인것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이런 온갖 느낌을 갖고 이 고통과 두려움과 어려움을 다 견뎌내고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고 기르신거였다...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아, 생일이라고 어머니에게 큰소리 친 나는 정말 세살짜리 애기밖에 안되는거였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점심때 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린것이.
결국 나는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행복한 사건'에 완전히 몰입할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충 두번 훑고, 단숨에 한 번 읽어보게 되니 처음의 그 냉소적인 느낌은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사건만 기억에 남아버린다.
한 여자가 어머니가 되어가는 그 과정의 적나라함이 이제는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그 기쁨을 느껴보기는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했었다는 것이 새삼 부끄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어쩔것인가. 이제라도, 머리로나마 깨닫고 있으니 다행이라 할수밖에.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것이 끝이 아니라, 한 여자가 어머니가 되어가고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어가고 아기를 키우며 가족이 되고... 이건 정말 행복한 사건,이 아닐 수 없잖은가. 그 행복한 사건을 기념하는 오늘,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