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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ㅣ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티비 드라마중에 파수꾼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 거기에 악의 화신같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살인을 서슴지않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 자신은 그 모든 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어떻게 살인에, 그것도 진실을 밝히겠다며 증언에 나선 선량한 시민을 살해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거의 끝무렵까지 온 드라마는 죄의식이 없는 검사 아버지를 등에업고 사이코패스처럼 그려지는 그 아들의 죄를 밝혀내는 것을 클라이막스로 종영할 분위기이다. 별생각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자꾸만 자신을 귀찮게 하며 거슬리게 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그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책이 떠올랐다. 기꺼이 죽이는 모습, 거리낌없이 자신의 살인을 덮기 위해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그 악의 모습이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말 한마디가 스포일러가 될수도 있어서 장르소설을 읽고 난 후 그 느낌을 쓰려면 자꾸 멀리 돌아서 이야기하게 되고 뜬구름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자꾸 뭔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이 소설의 재미를 혼자만 알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은 건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다 같은 마음이리라.
이야기의 전개는 이미 은퇴를 한 전직 형사에게 걸려 온 전화 한통에서 시작된다. 오래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 일명 '착한 양치기' 사건은 돈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부의 불평등 구조를 없애기 위해 부자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한 미해결 사건이 있는데 당시 벤츠를 몰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피해자의 가족에 초점을 두고 트라우마 치유의 일환으로 가족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송기획 프로젝트를 하는 딸을 도와달라는 전화 한 통.
과거의 살인사건은 현재의 사건과 그리 연관되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존재가 의심스러운 다큐멘터리 기획자인 킴의 남자친구 로비의 등장에 더 관심이 쏠리게 된다. 미심쩍은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전직 형사인 데이브 거니는 직감적으로 '착한 양치기'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데이브 거니 형사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인 '기꺼이 죽이다'는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꺼내보게 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위한 장르소설의 재미를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사건들을 풀어헤치고 다시 짜맞추는 과정에서 살인에 대한 정의, 공적 이익을 위한 살인은 정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없어하는 고위 관료들 - 그뿐인가,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사건의 해결보다는 사건을 독점수사하려는데 더 혈안이 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고 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고발은 더 적나라하다. 굵직한 것만 이야기해도 이 정도니, 아무리 책이 두껍고 과거의 이야기가 반 이상을 잡아먹는다 해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회차가 제한된 티비드라마의 한계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에 비해 그 표현이 좀 부족하고 마무리 되는 이야기가 좀 답답해서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존 버든의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산만하게 분산되지 않고 짜임새있게 잘 엮여있어서 끝으로 갈수록 아쉬움이 든다. 물론 마지막 장면의 거창함(?)은 영화제작을 염두에 둔 듯한 스펙타클함에 좀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도 없잖아 있지만 뭐 어떤가, 너무 진중한 독자를 위한 작가의 액션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재미가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