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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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선입견으로 인해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레루라는 영화의 기억이 좋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소설보다는 그녀가 만든 영화를 통해 섬세한 감정선을 영상으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리고 별 의미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도입부라고만 생각하며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내다 인기를 얻게 된 소설가 쓰무라 케이. 그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그려지고,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아내와의 관계는 그저 소 닭 보듯 할 뿐이다. 이미 애정도, 좋고 싫음조차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 앞에 슬픔은 커녕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그런 그 앞에 아내와 함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키의 남편 오미야 요이치가 나타난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오미야와 그의 아이들 신페이와 어린 아키라를 만나게 되고 쓰무라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는 오미야를 대신해 신페이와 아키라를 돌보게 되면서 오미야 가족과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되는데...

 

그냥 이런 줄거리를 말하는 것으로는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겠다. 내가 느끼게 된 세심한 감정선들을 다 늘어놓는 것도 왠지 쓸데없는 말이 될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의 반은 그저 그런 내용이려니 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진행이 흥미로워져 서둘러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래, 마지막이 되는 그 순간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와 대면대면한 사이었던 나의 모습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프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르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의 모습이 생각나 갑자기 울컥해졌다. 어쩌면 이런 것이 사랑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긴 변명인걸까.

 

아마도... 그러니까 짐작하건데 이 이야기를 쓴 니시카와 미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 얼마나 다양한 감성으로 나타나는지, 자기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사람은 후회하는 생물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건 어째서일까.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가가 작지 않군."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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