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다하르
모흐센 마흐말바프 지음, 정해경 엮고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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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서나 영화가 불붙인 지식의 작은 등불이 인류의 무지라는 깊고 큰 바다를 비출 수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앞으로 50년간 대인 지뢰에 손과 다리를 잃게 될 사람들이 19세 영국 소녀에 의해 구원받으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것일까? 카말 호세인 박사는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왜 UN에 보고서 쓰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가? 왜 나는 영화를 만들고 이 글을 쓰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파스칼이 이렇게 말했다. "이성이 모르는 이유를 마음이 알고 있다" (65쪽)

  

열 두 살짜리 아프간 소녀, 내 딸 한나와 같은 나이의 소녀가 내품에서 기아로 떨고 있는 것을 본 이후 나는 세계에 처참한 기아의 비극을 드러내 보이려 했지만 언제나 통계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났다. 신이시여!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하단 말입니까! 마치 아프가니스탄처럼, 나는 헤라트 시인의 시, 바로 그 방랑을 떠올린다. 그 시인처럼 나도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싶다. 나는 바미얀의 석불처럼 치욕감을 못 이겨 차라리 무너져 내리고 싶다. 

나는 걸어서 왔고 걸어서 떠난다.
저금통이 없는 나그네는 떠난다.
인형이 없는 아이도 떠난다.
나의 유랑에 걸린 주문도 오늘 밤 풀리겠지.
비어있던 식탁은 접히겠지.
고통 속에서 나는 지평선을 방황했다.
모두가 지켜보는데서 떠도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나는 놓아두고 떠난다.
나는 걸어서 왔고, 걸어서 떠날 것이다.
(74쪽)

 

***************

지금은 더 이상, 모든 인간은 한 몸의 일부, 인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 저 너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는 고통을 모른다.
... 잠시 나는 점심을 먹고 왔다. 사순기간이라고, 특히 사순시기의 금요일이라고 절제한다며 라면을 끓여먹고 왔지만 나는 이제 우유도 마시고, 우유를 넣은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는 따뜻한 불 옆에 앉아 끄덕끄덕 졸며 책을 읽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이제 한 몸의 일부가 아니다. 나는 세상의 고통을 모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움켜쥐려 할 것이다. 내게는 내가 가져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사순은 더 이상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의 모두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이성이 모르는 일을 마음은 알 것이라고? 내 이성은 내 마음에게 '잠시 아파하고 잊어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알아서 그들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지금처럼 가끔 마음이 아파오면... 사라져버린 내 마음이 저 깊은 어딘가에서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고통을 느끼기 힘들지만,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고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상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침묵을 지속하는 이 세계가 너무도 "치욕스러운 나머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무너진 성전을 3일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예수는 말했다. 예수를 따른다는 우리는 치욕으로 무너져 버린 불상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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