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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그만의 정원 - 잃어버린 나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다
사이라 샤 지음, 유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세상 사람들은 한몸의 지체이며
같은 본질을 지녔으니
한 부분이 억압받으면
다른 모든 부분도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샤이크 사디 쉬라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한 몸이기때문에, 한쪽이 고통을 당하면 당연히 다른 쪽도 고통을 느낀다고.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온 세계가 자신들의 고통을 알고 있고 함께 아파하고 있는것이라고.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나 역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전쟁기자의 책을 읽고 수많은 지뢰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다른 책에서 그곳 아이들의 눈망울을 찍은 사진만을 봤을 뿐, 내게는 기아와 굶주림과 내전에 시달리는 그들의 고통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이 세상 어딘가의 일로만 여겼을뿐이었다.
영국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아프간이라 여기며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신화같은 이야기를 실제로 느끼기 위해 그곳으로 간 사이라 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피상적이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게 해 준다.
아프가니스탄에 행해진 러시아와 미국의 침략에 대한 판단도, 무자헤딘과 탈레반에 대한 판단도 없는 듯 하지만 담담하게 그려지는 그곳 상황에 대한 글들은 오히려 좀 더 깊은 생각을 끄집어낸다. 정치체제나 세계의 아프간에 대한 제재, 협정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만들어준다.
부족간의 전쟁과 약탈, 무자비한 보복,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격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지뢰는 여전히 아프간을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무자헤딘이 살인과 강간을 자행하고 있을 때 탈레반이 생겨났지만 그들 역시 폭력을 멈추지는 않았고 이슬람 근본교리를 따른다며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우고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다. 구호물자를 나눠 줄 때도 남자아이에게만 허용을 해 주는 반인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테러가 있었고 없어져야 할 테러범과 마약판매상만 가득한 아프간을 이야기할 뿐, 그곳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프간을 우리의 일부라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프간의 어느 곳에서는 지뢰가 터지고 있을 것이며,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난민이 되어 헤매는 사람들,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다시 위험한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있을 것이다. 아프간은 세계의 일부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파해야 하며,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상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은 두 개의 몸처럼 분리된 것이 아니다.
두 개의 램프가 합쳐지지는 못하지만
두 램프에서 나오는 빛이 하나의 빛으로 합쳐지듯이.
- 잘랄루딘 루미, <마스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