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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나는 자주 길을 걷는다. 우울해질때면 특히 더 먼길을 돌아 집으로 가곤 한다. 아니, 화가 났을때도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먼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풀린다. 길을 걷다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버린다.
몇년전이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다 문득 쳐다본 하늘은 무수한 별들로 반짝거렸고, 스쳐지나가는 별똥별은 그 밤 내내 마음 설레이게 했었던 그 날.
책을 받아들고 그런 추억에 빠져있었다. 단지 걷기만 했을 뿐.. 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뜻이 내게는 의미있게 느껴진 것은 그 날의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고 물집이 잡혀 절뚝거리는 친구를 기다리며 끝까지 함께 하고자 하는 아이들, 졸립다고 투덜대면서도 버스에 타기는 싫다며 괜찮은 척 뛰어보이기까지 하던 어린애티를 벗어나지 못한 열네살의 꼬마들. 친구들과 나누는 소곤거림, 간간이 들리는 기도소리까지.
한달쯤 전 ?른에서의 새벽이 생각난다. 어둠이 짙게 깔려있고, 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잠을 자고 있던 그 시간에 깨어 삼십여분의 길을 같이 걸으며 대화를 나눈 사람이 있었다.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그 느낌, 밤하늘, 싸늘하지만 맑게만 느껴졌던 공기, 빛을 발하는 초, 곁을 스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 혼자 산책을 하며 기도를 하던 수도자들의 모습.. 이 모든 장면이 겹쳐지며 나를 감싸던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린 서로 '그 새벽의 만남'에 대한 공감이 있기에 마음의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
이 책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간혹 책을 읽으며 일본아이들의 심성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봤지만 밤에 함께 길을 걷는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길을 걸었을 뿐'이라는 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서 책을 펼쳐들었으니 나는 이미 많은 기대치를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혹시 그저 그렇게 읽고 끝내버릴까봐 선뜻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는 잠시간을 줄이면서 하루의 끝과 시작의 접점이 되는 시간즈음을 경계로 책을 다 읽어버렸다. 내 안에 담겨 있는 의미와 추억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끝까지 나를 붙잡아 버려서이다.
추억이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면 어쩌지? 아니, 그래도 확신해야겠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