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였다. 하지만 '하느님'이라는 말을 꼭 붙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바로 지워버린다. 내게는 하느님의 사랑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일테니.

천주교 교리에서는 분명 콘돔의 사용이나 동성애는 죄악이라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물론 나 역시 그 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언급을 회피하고 지내왔다. 나는 그걸 '죄'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죄'의 개념은 또 뭐지?

나는 가끔 꽤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사제나 수도자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가 있다. 언젠가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은 그들이 이상해 보이겠지만, 문화적으로 또 다른 문화가 형성되면 우리 다음 세대에는 동성애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수녀님 한 분이 꺼내셨다. 그분은 아마 천주교 교리라는 것, 교회의 법이라는 것도 문화와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 얘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수녀님 한 분이 정말 진지하게 물음을 던진다. 천주교에서 금기시하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동성애자의 천성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천주교에서 어떻게 인정해 줘야 하는가, 라는 물음. 이런 비유를 하면 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태어날 때 손가락이 하나뿐이라고 해서 사람이 아닌것은 아닌것처럼 태어나서 자신이 동성애자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어쩔 수 없이 동성애의 성향을 갖고 있다면 그것 역시 하느님이 창조하신 신성한 창조물이라는 것 때문에 고민스럽다는 말씀.

묵묵히 밥을 먹으며 수녀님들이 본질에 다가서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었다. 하느님의 법은 교회의 법보다 우선한다. 교회법은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낸것일 뿐이지 않는가.

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눈이 붉어질만큼 감동을 받았다. 내가 실제로 동성애자를 만나도 그들을 나와 구별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나의 이상은 하느님의 법을 따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실의 내 모습은 어떠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를 일깨우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의 현실과 나의 이상을 품은 내가 일치를 이루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여러 단편 모두가 내게 감동적이지만, 특별히 나는 - 내가 여전히 종교적인 습성에 물들어있음을 나타내버리고 있는 것이겠지만 - '세상의 모든 양치기들'이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의 주제가 단지 동성애라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는 구별되어지는 모든 소수자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영화는 카메라가 얀센의 <예술의 역사> 1985년판 553쪽에 나오는 15세기의 예수 탄생 그림을 천천히, 그리고 밀도 있게 훑으면서 끝난다. 황토색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 게르트겐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성모마리아는 당연히 갓 나온 달걀처럼 청순하고 순결하다. 소는 온순해 보인다. 천사들은 마리아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자그마한 난쟁이 같아보인다. 배경에 있는 마구간 문 사이로 밤하늘이 내다보인다. 하늘에 보이는 하얗고 흐릿한 점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다. 저 멀리 있는 양치기들은 언덕의 그늘이 드리워져 어두운 실루엣만 보인다. 한 명은 두려움에 무릎을 꿇고 있다. 두 명은 그늘 속에 서로 붙어 있다. 어깨를 맞댄 채, 마치 한쌍의 연인처럼. 그보다 더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여자 양치기들인지도 모른다. 또 언덕 저편에는 혼혈 양치기들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뒤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양치기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밖에도 불교신자, 무신론자, 채식주의자 등등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부류의 양치기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캐비지 선생님은 이런 평을 남긴다.
"음.... 딱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성탄 이야기는 본디 사람들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주기 위해 생겨났다는 점이다. 아주 훌륭해. 오래된 신화를 현실로 만들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라. 그것이 너희의 세상이다" (세상의 모든 양치기들 본문 113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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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눌렀어요.
누가 이벤트 선물로 이 책을 찜해서요.
저도 빨리 읽고 리뷰 써야 하는데.
받을 땐 꿈결 같고......유행가 가사가 생각나네요.^^

chika 2005-10-1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감사합니다. 로드무비님 리뷰 쓰시기 전에 제가 후다닥 써버린 것이 다행이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