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오후 세 시.

언제나 그 시간쯤 나는 사무실 책상 모니터 뒤에 숨어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라니. 식사 후 식곤증을 느끼며 졸거나 가끔은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동네 주변을 어그적거리며 걸어다니곤 했던 나와는 너무나 차원이 다른 동네마실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도 어느정도는 가벼움으로 책을 집어들기는 했다. 예술 산보,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깔려있었는지도 모른다. 옛 추억에 잠기며 과거를 떠올리고 사람들과 삶의 다양함을 이야기하는, 그런 동네 마실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어릴 적 뛰어놀던 복개천이 어디쯤이고 저녁 그림자에 귀신을 떠올리게 하는 흐늘거림으로 기억되지만 그조차 그리움으로 남는 수양버들 거리는 저쯤이고, 내가 태어난 집은 저 안쪽의 저 집이고...이런 것처럼 누군가의 삶의 시간들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은 크고 깊었다. 검은 강물 같은 이 도시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자꾸만 일깨웠다. ... 처참하게 피폐해질 때건, 말끔하게 평온할 때건 이 도시에서는 예술가들의 이야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내 삶은 이 도시의 길 위에 있었고 내 정신은 그들의 수많은 걸작들에 큰 빚을 졌다. 나는 그들을 예찬하지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들어가는 말)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공존, 애도, 사유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기록하게 하고 있다.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 곳곳에 스며든 이야기들이 생소할 뿐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번쯤은 들여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이 올려다 본 하늘과 별과 바람의 느낌은 다르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의 시를 새기며 느끼는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그에 대한 기억을 내 마음에 새겨넣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화가, 시인, 작가, 건축가...그들의 삶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속에서 조금씩 그들의 삶의 흔적이 스며든 공간 역시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며 변형되어가고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의 기억과 기록속에 살아남아 그 의미를 전하고 있을 것이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풍경의 질문은 나의 온 마음과 닿아있습니다. ......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 거리에 가득한 빛과 먼지와 소음과 눈물과 이름들에 대해서. 계절이 수십 번 수백 번 지나가느라 흐려지고 지워진 이 땅 위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힘주어 불러보고 싶습니다"(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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