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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 앙굴렘 국제만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 ㅣ 북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3
빈슐뤼스 지음, 박세현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5월
평점 :
내가 알고 있는 피노키오는 어떤 이야기였더라...? 그러니까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생명을 얻어 가난한 목수장이의 말썽쟁이 아들로 지내다가 나쁜 꾀임에 빠져 세상을 떠돌다가 결국 착한 피노키오가 되어 움직이는 나무 인형이 아니라 진짜 생명체인 피노키오로 살아가게 된다는 지극히 교훈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동화이야기..였지.
그런 피노키오를 빈슐뤼스는 모질게 패러디하고 있다. 아니, 그런데 이 불편하기만한 잔혹동화가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점점 더 피노키오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피노키오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바쳐진 동화로 끝내고 이제 세상이 보여주는 현실을 그리 지독하게는 아니지만 모질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빈슐뤼스의 피노키오를 더 깊이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언젠가 티비에 나왔던 로봇박사의 인문학적 성찰없이, 휴머니즘이 없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아주 위험하다는 요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졌었다. 어린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철완로봇 아톰의 창조자 오즈카 데사무의 신념 역시 그랬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로봇은 전쟁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발전이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바꾸게 되었다. 살상 무기가 아니라 재난구조를 위해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로봇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맞는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피노키오처럼 로봇의 발명은 전쟁용 무기개발이다. 과학자 제페토는 군에 납품해 일확천금을 꿈꾸며 피노키오를 탄생시켰다. 그 피노키오로 성적 욕망을 채우려던 제페토가 사랑하는 그의 아내는 그로 인해 목숨을 잃고 제페토는 사라져버린 피노키오를 찾아 떠나게 된다.
피노키오의 여정은 원작 피노키오의 여정과 맞물리며 흘러가지만 그 여정 속에 일곱난장이와 백설공주, 피리부는 사나이, 심지어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스틸 컷까지 보여주고 있어서 훨씬 더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그 동화의 이야기는 역시 원작에 대한 패러디로 지독하게 비참하여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무서운 난장이들,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아동 노동 착취, 아동학대와 거리의 범죄들...
아, 정말 책을 읽는 내내 마음 가득 불편함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집어던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살상무기로 발명된 피노키오가 아동 노동착취의 현장으로 들어가 장난감을 만들어 내는데, 그가 만들어낸 장난감들은 모두 살상용 무기가 되어 버리고 그것이 사회문제가 되어 결국 그 장난감 공장은 무너지지만 근본적으로 착취의 굴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곱 난장이들에게 쫓겨 벼랑끝으로 내몰린 백설공주는 벼랑 밑으로의 투신을 택해버리고.....
지금도 피노키오에 실려있는 이야기들과 그림 컷들을 떠올리면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않아진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건 외면해서는 안되는 현실일 수 있는 것인데.
이 냉소적이고 적나라한 블랙 유머 코드의 잔혹동화는 절대 아이들에게 권해줄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하지만 또 절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실, 현재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어둡고 무섭고 비참한 현실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기도 하며 또 슬프고 가슴아픈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그 이야기가 곧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하고 있기때문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너무 암울해서 그것조차 자기 위안인지 자기 기만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책에 대한 느낌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잔혹한 이야기는 역겨움이 너무 커서 피하고 싶어지지만 빈슐뤼스의 피노키오는 역겨움을 넘어선 울림, 그러니까 조금은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한 거울과 같은 투명한 울림이 있기 때문에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