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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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씩 읽으려던 독서 계획을 어느 순간 무너뜨리고 몰아쳐서 읽어버리게 만든 책.

옥중서간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깊은 성찰과 높은 집중력으로 쓰인 글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글이 담겨 있는 책.

 

어렸을 때 지구를 집어 삼키려는 빨갱이 문어를 포스터로 그렸는데, 공산당의 침략을 잘 표현했다며 게시판에 내 그림이 붙었을때도, 간간이 터지는 간첩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해도 난 뿔달린 간첩이 무서웠었다. 그때 내게 있어 간첩은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고 우리나라를 없애려는 나쁜놈,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그런 악당일뿐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TV에 간첩조작 사건이 연일 발표될즈음 그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근처에 살았던 우리 오빠가 그 간첩사건과 뭔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형사의 협박전화를 받고 아버지가 놀래 쓰러지셨을때도 나는 간첩이 무서웠다. 물론 경찰의 전화를 받았던 그 사소한 에피소드는 몇년후에 알게 되었고 어이없어 할때쯤엔 이제 더이상 간첩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름도 우스운 - 적어도 내게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우습다는 느낌이 들 뿐인 '깐수'라는 간첩이 잡혔다고 했을 때 '아직도 간첩이 존재했어?' 라는 한마디만 내뱉고 그냥 잊어버렸다. 그 당시 나는 도대체 뭐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걸까?

아무런 기억도 없지만,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해 그의 한문적 연구를 계속 하게 해야한다는 성명이 발표되고...어쩌구. 그것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 단편적인 기억의 한조각을 부풀리면서 책을 읽어가는데 '아, 이것이 학자의 모습이고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간첩이라면 이제 내게 있어 간첩이란 조국통일에의 절절한 염원을 갖고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리뷰를 쓰려고 할 때마다 컴이 멈춰버려 기를쓰고 덤비고 또 덤비는 몇번의 재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쓸 수 없었던 책.

그럼에도 꼭 리뷰를 적고 싶어 며칠 후 다시 시도를 했으나 그 전까지 말짱하던 컴퓨터가 이 책 리뷰를 쓰려고 하니 재부팅조차 안되어버려 화가 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 책.

가장 중요한 것은 정작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까지의 에피소드만 나열하게 된 글이라도 부득부득 올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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