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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평점 :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무엇이 옳다고 믿느냐는 기준 즉, 선악을 척도로 삼아서 적과 동지를 나누었지만, 개화기나 요즘과 같이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어느편을 들어야 득이 되는지를 살피게 된다는 겁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도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p 115, 허동현)
나는 지금까지 감상적 민족주의자였고, 감상적인 이상주의자였다. 지금까지? 이제는 아니라는 뜻인가?
아니, 여전히 나는 감상적인 이상주의자겠지. 그만큼 더 배우고 뼈저리게 느껴야한다.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나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어찌 도의적으로!'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것을 밝히기가 너무 부끄럽다.
몇년 전 '통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도 그랬다. '왜 우리가 꼭 통일을 이뤄야하나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나는 뭐라 답해줄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그때 홍세화님이 내가 사는 지역에 강연을 하러 오셨었고 나는 그 물음을 대신 할 수 있었다. 그때 아마..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로서의 남북통일의 경제성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꺼야. 더이상 '민족'과 '겨레'라는 당위성만으로 전쟁을 모르고 분단의 아픔을 못느끼는 세대에게 통일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그때 느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아마 지금도 나는 말로는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것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
박노자 교수와 허동현 교수 두분의 격론은 어설픈 교과서 지식만 있는 나로서는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래서 '아하~ 그렇지'라거나 '으음~ 이 말도 맞는말인데..'라거나 '그랬단말야?'라는 식의 반응밖에는 보일 수 없었던 것이 참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런만큼 얻고 배우는 것도 많지 않았는가.
여전히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멋대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세계 정세의 흐름속에서,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아둥바둥치며 적을 규정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두는 동지이며 그 외에는 적일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아, 나는 여전히 배울것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