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여지없이 잠을 설쳤다. 이번 달 수도요금이 폭탄처럼 많이 나왔는데, 두어달 수도요금이 계속 증가하던 것에 신경을 안쓰고 있다가 급기야 이번달에는 검침원께옵서 '누수점검하셔야겠어요. 수도미터기가 계속 돌고 있는데요'하고 가셨다. 그래서 이상하게 쫄쫄 소리가 나던 변기를 손봐야겠다고 - 물론 내가 뚜껑을 들춰본다고 해서 뭘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동네에서 일하시는 아저씨께 와서 봐달라고 했더니 패킹이 닳아서 물이 새는거라나뭐라나. 아무튼 그래서 이젠 괜찮으려니 하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폭포수처럼 - 물론 뭐 설마 폭포수처럼이기야하겠는가만 - 물이 계속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 살펴보고 문도 꽝 닫아버리고, 안그래도 새벽에 잠이 든 처지라 피곤했는데, 새벽에 어머니가 화장실 댕겨오시면서 문을 열어놔서 또 잠을 일찍 깨버렸다.

지구환경을 위해 새어나가는 물을, 완벽하게. 물샐틈없이 막아야하는것이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먼저 깨달았다. 밤새 안녕을 위해서 저렇게 일없이 흐르는 물을 막아야한다는것을.

 

 

집이 오래돼서 그런지 방수처리를 해 줘야 하는 시기가 지났고, 그것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벽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비도 안오는데 벽에서 물이 나와? 하고 있는데. 시멘트가 물을 먹고 있다가 - 시멘트도 물돼지라는 걸 몰랐어. - 슬금슬금 뱉어내는거라고. 아, 정말 집에대해서도 알아야하는것이 너무나 많아.

 

이제 문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실용 '집짓기'에서부터 설계도면까지 들여다봐야하는 날이 온 걸까?

 

 

 

 

 

 

 

 

 

 

 

 

 

 

 

 

 

 

사사롭지만 좋은 날들,이 얼마나 좋은 날들인지 새삼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물도 안새는 날. 그러한 일상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기담이 재미있지. 기괴하고 이상한...이라기보다는 온갖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책,이겠지만.

 

나는 지금 괴담보다 더 괴기스러운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간도특설대를 체계적으로 다른 연구서가 아니다. 자료의 공백을 넘어 그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나한테는 애초부터 없다. 나는 조선인 토벌대와 조선인 항일 부대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 집중하기보다는,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 토벌부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더 넓은 시각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하고자 했다.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들을 뒤에서 부추기고 조종한 사람이나 세력은 누구였는지, 1930년대 프랑스의 인민전선 수립, 스페인 내전의 국제연대투쟁에서 나타나듯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전 세계적 과제로 등장했을 때 그들이 선 자리는 어디였는지, 그들이 집요하게 말살하려 한 '공비'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공비'는 어떤 풍상을 겪었는지, 중국 당국이 공인한 옌볜의 '항일 열사' 3125명 가운데 조선인의 비율이 어떻게 98퍼센트나 됐는지, 일제 패망으로 만주국이 붕괴된 후 서로 대립해서 싸우던 이들은 어떤 인생유전을 겪었는지 그리고 특설대 간부이던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주역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담담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23)

 

 

박지영과 박남표 부자

 

박남표는 어릴 때 헤어진 아버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15세에 일본으로 유학 가 가까운 친족과도 생이별했다. 이런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반영하듯 박 장군의 일가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항일 투쟁에 숭고한 목숨을 바친 이가 여러 명 나온 박 장군의 집안은 현대 중국의 기준으로 보면 쟁쟁한 항일 열사 가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박남표 자신도 상당히 신중하게 용어를 구사한다. [국경의 벽 넘고 넘어]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나온다.

 

'초급장교가 됐지만 나는 늘 외로웠고 불안했다. 월남 실향민이자 38따라지였고 게다가 혈혈단신인 나는 흩어진 가족 생각으로 그리움에 사무쳐 있는데 사상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억울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의 군대 복무는 위축된 상태를 면치 못했다. 친일 아닌 항일투쟁에 빛나는 집안 출신인 나를 이단시하는 풍토에 당황했고 역겹기만 했다. (82)

 

..... 박남표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소련을 방문해 5월 13일 만날 약속까지 잡아놓았다. 그러나 1979년 12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대소 제재 조치로 그의 소련 방문은 좌절됐다. 꿈에 그리던 맏아들과의 상봉이 무산된 탓인지 모친은 1981년 8월 타슈켄트에서 한 많은 세상과 하직했다. 안타깝게도 박남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친이 숨진 지 8년 뒤에 타슈켄트 교외의 묘소에 찾아가 통곡하는 것뿐이었다.

 

 

 

 

 

 

============== 육사 2기 동기생들의 면면

박남표의 육사 동기생들의 면면을 보아도 우리 겨레가 겪었던 수난의 흔적이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사 2기는 263명이 입교해 196명이 임관했으며 그 중 79명이 별을 달았다. 육사로 들어오기 전 이들의 경력은 다양하다. 광복군 지대장 출신으로 50대 중반에 입교한 최고령자인 송호성은 정부 수립 후 육군총사령관을 지냈고 한국전쟁때 납북됐다.

박정희와 송석하는 일제 패망 때 만군 중위와 상위(대위)였다. 펑톈 군관학교 5기생인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창설에 주요 역할을 했으며 박남표보다 8세 연상이다. 박남표는 그의 부친이 키웠던 항일 전사들을 토버하던 사람과 함께 육사 군사교육을 받은 셈이다. 동기인 박종철은 [독립신문] 주필을 지낸 적이 있는 매부가 해방 후 월북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파면됐다. 2기가 배출한 대장 가운데 한신은 학병, 문형태는 지원병 출신이었다. 일제의 영향이 여러모로 깊게 남아있는 인적 구성이었다.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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