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버그가 생긴다거나 새천년이라면서 획기적인 이벤트가 있다거나... 벌써 십사년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새천년이라는 말도 시들해질때가 되었는데 나는 이천년이 되는 그 해, 21세기가 된다고 믿고 있었고 친구는 이천년까지는 20세기라고 믿고있어서 서로의 주장을 팽팽히 외치던 것이 생각난다. 웃긴것은 서로의 근거가 책에서 읽었다는 것이었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또 각자가 읽은 자료를 갖고 와서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책 한권을 얻기로 했었는데, 결국 책을 얻은 사람은 없다. 우리처럼 의견이 분분했었는지 모 신문에 이천년이 과연 몇세기인가 라는 내용에 대해 기획기사가 나왔었고 결론은 학자마다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씩 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놓고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그 결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더욱더 내가 읽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심을 해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러기가 쉽지는 않다.

[책의 정신]은 이미 책의 권위에 대해 신뢰를 버리기 시작한 내게는 충격적일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삼 다시 확인하면서 읽고 있으려니 새롭고 재미있다.

 

총 5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의 정신'은 책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아무런 의식없이 책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시각을 잃지말고 책의 내용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한 세계의 고전들 역시 몇세기를 지나며 전해져오는 이유가 그 책이 지혜와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고전읽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부터 그러한 생각을 뒤집어버린다.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인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사회계약론같은 책을 떠올리지만 실상 당시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연애소설들이며 포르노그래피로 분류되는 소설들을 국가권력은 왜 부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소설가 장정일의 그의 소설로 유죄를 받았지만, 그 문제시되는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은 강금실 변호사의 변론은 아무런 제재없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첫번째 이야기가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것이어서 이 책이 재미있게 술술 읽힌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에 포르노 소설의 묘사가 그대로 나온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번째 이야기에 언급되는 갈릴레오의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의 소크라테스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본성과 양육, 진화심리학에 대한 연구와 그 연구의 거짓을 밝혀내고 다른 이론 연구가 시작되고, 그 모든 것들이 다 조작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에까지 이르러서는 어쩌면 [책의 정신]에 실려있는 글조차 다시 한번 의심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흥미롭게 실려있어서 재미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책에 언급되는 내용들은 이미 오래전에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이미 그의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습관처럼 그의 명언이라 일컫고 있다) 공자의 이야기는 알면 알수록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자료와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정신]이 담고 있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다섯번째 이야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의 학살에 대한 내용은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데 만약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의정신]을 읽고 난 후 이어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어느 이야기하나 빼놓을 수 없이 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내 마음을 가장 뜨끔하게 하는 건 아직 읽지 못한 채 쌓아두고 있는 책들이다. 집에 쌓여있는 책들을 떠올리며 나 역시 이 책들을 또 다른 의미의 감옥에 가둬놓고 폐지보다도 못한 책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책을 더 많이, 더 깊이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책'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면서 책의 정신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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