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아동관련 뉴스가 나올 때, 방과 후 혼자 방치되는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때마다 농담처럼 우리 어머니는 내가 학교다니기 전부터 집에 혼자뒀는데, 이건 요즘이라면 완전 아동학대야,라는 말을 해서 어머니를 당혹하게 한다. 물론 어머니가 아동학대를 한것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너무 힘들어 학교를 관두셨는데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어서 종일 밭에가서 일하시고,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야간수업이 있는 고등학교로 옮기시고 주경야독이 아닌 주경야업을 하셔야했다. 그래서 나는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면 항상 집에 혼자 있는 풍경이 떠오른다. 바로 윗 형제와 3살 터울이라 적어도 3년동안은 큰 집에서 혼자 우두커니 나름대로의 일과를 보냈었겠지...

다섯살짜리 꼬마가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일과를 보냈다는 걸 나는 기억못하지만 옆집 아줌마가 신기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옛이야기를 할 때면 듣곤 하던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무슨 책을 읽었을까? 아니, 다섯살짜리 꼬마가 글을 읽을수나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책의 전부는 동서 그레이트 딱다구리 북스라는 백권 전집이다. 백권의 책을 모두 읽은 기억은 없지만 읽었던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기 때문에 몇몇의 책들은 내 안에 새겨져있는 것도 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만 듣고도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기억해해는 나를 고등학교때의 친구는 신기하다며 대단한 능력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린시절 집에서 책만을 친구로 삼아 지낸 내게는 능력이 아닌 새김의 의미였을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만의 추억이 아니었나보다. 세살 터울인 오래비가 외국 주재원으로 혼자 지내면서 한참 힘들어할때즈음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보내기 무료하면 책을 좀 읽으라는 말에 갑자기 봇물처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은 이미 백권의 책으로 모든 책을 다 읽었다는 과장과 더불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바로 그 책들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왠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격하게 공감을 했는데, 아마 [어릴 적 그 책]을 읽으며 한없이 공감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책은 '지금의 나를 이루어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당신 인생을 변화시킨 책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동화들을 꼽겠다'라는 말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것이다.

 

[어릴 적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책들은 내게는 낯선 책들이 훨씬 많지만 이미 '공감'이라는 것을 느껴버린 내게 그런 세세한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어릴 적 그 책]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책들을 꺼내보며 감상에 젖어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어린시절 책과 함께 한 기억들이 어떻게 나를 성장시키고 꿈을 갖게 하고 변화하게 했는지를 짚어보고 있는 것이다. "시골집의 작은 방에 점처럼 웅크리고 앉아 책을 통해 자신과 드넓은 세계를 연결해본 어린 독학자들의 내면에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고, 넓고, 아름다운 세계가 성처럼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다"(42)

 

또한 [어릴 적 그 책]은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게 해 주는 책이다. 저자의 유년시절의 책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이면에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그녀의 체험을 읽으며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뿐인가. 특히 나는 이 책의 3장이 더 맘에 들었는데, 이제는 울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동안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왠지 어린 시절의 나를 떠나보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었다. 더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동화를 읽는 나를 찾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도 읽고 싶어서 한밤중에 '하늘을 나는 교실'을 읽으며 마구 눈물을 흘리고난 후 단절되었던 어린시절의 나를 찾은듯한 느낌이들었다. 내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릴적부터 나는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까에 대한 의문은 그 책으로 인해 풀렸고, 마당이 넓은 집에 살고 싶은 꿈은 비밀의 화원을 열광하며 읽어서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미국작가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의 리리딩에 적힌 어른이 어린이책을 다시 읽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을 적었는데 나 역시 그 글을 읽으며 새삼 어린 시절의 책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끼던 그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달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내가 앞서 향수의 안개라고 부른 것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예상치 못한 통찰과, 친숙한 책들에서 우리가 처음 읽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시 읽기의 심오한 기쁨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아를 재발견하는 흥분에서 비롯된다"

유년시절의 나를 또 다른 의미로 긍정하게 해 준 [어린 시절 그 책]은 어른이 된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