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Sunny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오주원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써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엉뚱하게도 난 몇년 전에 개봉되었던 한국 영화 써니를 먼저 떠올렸다. 써니,라고 하면 왠지 촌스러우면서도 밝고 환한 태양과도 같은 명랑함과 꿋꿋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왠지 모를 씩씩함 같은 거 말이다. 어쩌면 그 느낌은 마츠모토 타이요의 써니에서도 비슷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그려낸 작품에서 써니는 사람이 아니라 버려진 고물자동차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써니는 '별아이'라는 보육시설의 마당에 버려져 있는 고물 자동차를 일컫는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써니를 놀이터의 놀이기구를 타듯이, 자기들만의 아지트처럼 여기며 그 안에서 일상을 보낸다. 무료할때도 외로울때도 즐거울때도 슬프거나 행복할때도 써니를 찾아가겠지? 그렇듯 써니는 별아이에 사는 아이들의 둥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민간사설 보육시설인 별아이에는 여러 사정에 의해 맡겨진 아이들이 살고 있다. 부모가 전혀 찾아오지 않는 아이도 있지만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엄마와 만나는 기쁨보다 짧은 시간을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더 커서 엄마를 만나는 날이 기쁘지 않다는 아이도 있고, 술마시고 도박하며 돈을 날리고 아이를 팽개치듯 놔버린 아버지와 어느곳에 있는지 모를 엄마를 둔 아이도 있다. 그들 각자의 사정만이 그 아이들의 모습이 슬퍼보이는 이유인것은 아니다. 은근히 느껴지는 따돌림과 차별... 왠지 그것이 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예전에 알던 보육시설에 있었던 수녀님 한 분은 아이들이 학교에 수녀님이 찾아가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고 말했었다. 수녀님은 조금 특별하게 보여서 학교에 수녀님이 찾아오면 누구를 찾아왔는지 소문이 나고 그 누군가는 보육시설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어린 시절에 읽었던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던 고아원은 19세기의 과거 이야기일뿐 현재에 그처럼 혹독한 곳은 없으리라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가 없거나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독과 차별감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별아이들, 써니를 일상의 보금자리로 삼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미화시키지도 않고 악화시키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을뿐인데도. 그 아이들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어른이 되믄 뭐가 될 긴데?" "스파이에 레이서에 복싱 챔피언"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려내고 있는 아이들의 일상은 어둡고 암울하고 반항적이다. 게다가 몇몇의 컷은 불량스럽기까지 하다. 만화가 이렇게 어두워도 되는걸까, 싶어지지만 어느새 그의 작품에 빠져들어버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넘어가는 불량스럽고 암울한, 마이너의 포스가 풍겨나오는 이 그림 컷 하나의 너머에 보이는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일까.

별아이들의 다음 일상이 기다려진다.

 

"밤에 울고 싶어지면 우짜노?" "난 노래 부른데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며 소리지르고 싶어질 때, 불안해지거나 알 수 없이 슬퍼질 때도 나는 이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에 울고 싶어지면 노래를 부른대. 나도 노래를 불러볼까?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온갖 것들을 잊기 위해,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버리게 하기 위해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별아이들처럼 크게 소리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라도 가락을 흥얼거리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러고보면 써니는 불량만화가 아닌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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