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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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이 모든 세상은 신이 손가락으로 쓴 한 권의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 이미 한번 읽었었다. 언제쯤인가 찾아봤더니 2006년에 읽었는데 그때에도 경이로움으로 감탄하며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그 느낌이 훨씬 더 커졌다. 책을 읽고 난 후 2011년도에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갔을 때 필사된 성경의 실체를 봤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멋지게 장식이 된 성경을 보고, 그 성경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보게 되니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보고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러한 체험이 맞물리면서 다시 이 책을 펼 펼쳐보게 되니 그 느낌들이 아주 새로운 것이다.

 

이 책은 '화려한 책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그저 단순히 '알려주고 있다' 라고만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양피지에서 수서본으로 발전하게 된 물리적인 과정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회화의 시작은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세밀하고 다양한 색감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책의 역사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책을 보는 눈까지 즐겁다.
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던 것들 중 하나인 [안느 드 브르타뉴의 아주 작은 시도서]라는 책의 도판 설명을 보자. <크기가 높이 6.6센티미터, 폭 4.6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수서본의 활자와 삽화가 보여주는 정밀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라고 적혀있다. 경이로운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림을 쳐다보다 삽화의 정밀함에 감탄을 하다 문득 자를 꺼내 도판의 크기를 재어봤다. 정말 경이롭게도! 도판의 크기가 책의 실제 크기와 똑같다는 걸 안 순간 예사로이 넘길수가 없었다. 책을 훔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알 수 있다. 실제로 책이 귀하던 그 시절, <이 책을 훔치는 자는 교수형에 처할지어다>라는 경고문까지 적혀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사진기도, 비디오도 없던 그 시절에 한 권의 책은 만능엔터테이너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밀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그림이 담겨 있고, 이야기가 있고, 은근히 가문의 문장을 집어넣으며 자존을 세우려 했고 때로는 보석으로 치장까지 했으니 책은 보물이었던 것이다.

 

경이롭게 느껴졌던 이야기는 여전히 지금도 경이로움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성당에서 미사전례를 할 때 상징적으로 커다란 복음서를 들고 보여주는데, 왠지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라는 의미가 조금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현대의 대량 인쇄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새기듯이 옮겨적고 채색하며 복음을 전했던 그 세상이 전해져오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실제 몇백년전부터 이어져 온 성경 필사본을 보지 않았다면 그 느낌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피렌체에 있는 산마르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지내는 독방에 그려진 안젤리코의 복음화는 그 옛날 수도사들이 자신의 성구를 표현한 그림을 그린 것이고, 수도사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묵상을 했다고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모르던 시절, 그리고 양피지가 귀해 한 권의 책이 아주 귀하던 시절 '책'은 우리가 지금 늘상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는 책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처음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그저 흥미로움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놀라움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세상이 한 권의 책이었다는 그 경이로움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몇년이 지나고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되면 이 한 권의 책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달라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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