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청춘, 문득 떠남 - 홍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까지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무중력 방랑기
티어라이너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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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면서 우스개소리로 늙은 청춘은 문득 떠나기도 힘들고...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감성적인 책을 앞에두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음악에는 좀 문외한이지만 티어라이너,라는 이름은 드라마 ost를 통해 조금은 익숙했기 때문에 그가 쓴 여행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무척 궁금했다. 그가 만든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글에 대한 기대도 컸고. 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왠지 기대가 큰만큼 조금은 실망스러웠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분위기이다. 내가 글을 잘못 이어나가고 있는걸까?

이 여행에세이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한다면 음악을 통해 느꼈던 티어라이너의 조금은 감성적인 이미지와 달리 재치가 넘쳐나는 글들이 술술 읽혀서 좋았다라고 말하겠다. 이 책의 느낌을 그냥 이렇게 끝낸다면 좋겠지만 내 느낌만이 아니라 어떠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에 그런 느낌을 갖게 했는지도 조금은 풀어놔야 할 것 같다.

 

"여행을 하며 생각은 길었고, 웃음과 향기는 짧았다."

 

인디음악을 하는 음악가의 에세이라 감성만 넘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와는 달리 소탈하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심지어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툴툴 털어내면서 음악가 티어라이너라기보다는 배낭여행자 티어라이너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비용이 넉넉지않아 저렴한 숙소를 찾아 다니고, 하루 숙박비를 아껴보겠다며 추위에 떨며 공항 대기실에서 밤을 지새고 식비를 아끼겠다고 싸구려 비스킷으로 끼니를 떼우면서도 미술관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이른 시간의 입장을 우연히 알게 되어 좋아하고, 입장료가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가이드의 꼼꼼한 설명에 입장료만큼의 대우를 받았다고 위안받는 그의 모습들은 왠지 모르게 정겨움이 느껴진다. 괜한 멋부림이 아니라 진솔하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여행자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리 싫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다른 이들의 여행이야기와는 또 다른 느낌과 시각으로 바라 본 그곳의 모습은 왠지 나도 언젠가는 느껴보고 싶은 곳이기를 소망하게 된다. 여행뿐 아니라 예술에 대해, 음악에 대해 티어라이너 자신도 많은 생각을 하고 느낌을 담게 되었겠지만 그의 여행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나 역시 그가 거닐었던 곳을 거닐며 골목골목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늙은 청춘은 문득 언젠가 떠날 수 있는 호사로움을 누릴 수 없으리라는 낙담이 더 크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늙고 느리지만 청춘, 문득 떠나게 되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골치 아픈 현실일랑 모두 두고 떠나리라

하지만 비행기가 데려간 곳이 이상향은 아니었다

현실은 비행기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여행지에 도착하면 함께 내려 다시 어깨에 달랑 매달린다

어쩌면 여행은 혈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부대끼며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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