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노스크는 네 개의 '언덕'에 에워싸인 분지에 건설된 도시다. "그 언덕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아름다운지는 알 수 없다. 그중 하나는 젖가슴 모양을 하고 있다. 옛날 목동들이 대접놀이를 하다가 양치기 아가씨들의 젓가슴 모양을 대접에 황토로 찍어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몽 도르'다." 이 언덕에 대한 작가의 모성적 비유는 이어진다. "그렇게 둥그렇고 여성적인 언덕 꼭대기에서는 광대한 고장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언덕은 다정한 유모와도 같았다. 언덕은 긴 강물을 빨아들여서 부풀어오른 깨끗한 선을 따라 둥글게 솟아 있었다. 넓은 들이 찾아와 그 젖줄에 목을 축이고 나서 나무들과 밀밭을 무겁게 싣고 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이 아름답고 둥근 젖가슴은 언덕이다. 이 언덕의 해묵은 땅은 어둑한 올리브나무들을 이고 있다. 봄철이면 홀로 선 아몬드 나무에 문득 하얀 불이 붙어 환해졌다가 이윽고 폭 꺼진다"
'몽 도르 Mont d'Or ('황금 산'이 아니라 프로방스 말로 '바람의 산'이라는 뜻) 언덕에 올라가는 여정 이야기를 읽었다. 지오노의 출세작 소설 [언덕]의 제목이기도 한 프랑스 말 'colline'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며 이 말은 사실 '산'이라고 할 만큼 높지 않고 그냥 '언덕' 보다는 좀더 높은 느낌의 '야산'을 가리킨다,라는 글을 읽을 때 나는 제주의 '오름'을 떠올렸다. 오름보다는 좀더 험한 산세의 느낌이 날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뒤이어 여인의 젖가슴에 비유되는 언덕의 이야기는 정확히 '지슬'에서 보여주었던 그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지슬'에서는 슬프고 슬픈 아픔이 담겨있는 영상의 비유였지만.

이건 '다랑쉬오름'의 사진이다. 그 많은 오름사진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래도 다행이다. 다랑쉬오름의 사진이 한 장 남아있어서. 이 다랑쉬 오름 역시 제주 4.3의 역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곳.
지슬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를 본 수녀님에게 아주 오래전에 그 영화의 촬영지인 큰 넓궤에 실제 들어가봤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굴이 지금 실제로 있는 것이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지슬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허구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 아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같은 아름다운 글을 쓴 장 지오노가 그려내고 있는 마노스크의 언덕만큼이나 제주의 오름도 아름답다. 그런데 오름을 바라보며 그저 아름답다고만 느낄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슬픔과 아픔은 비극이다. 지금도 그 역사가 치유되기는 커녕 되풀이되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더욱 큰 비극이다.
장 지오노의 아버지, 구두수선공 앙투안 장 지오노는 아들에게 말하곤 했다. "네가 장차 커서 이 두 가지를 알게 되면, 즉 시詩를 알고 사람들의 아픈 상처의 불을 꺼주는 지혜를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란다"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