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과 변호사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드래. 아침이 되어 나그네는 볶은 쌀과 삶은 달걀로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었지. 하지만 밥을 다 먹고 보니 호주머니에 가진 돈이 얼마 되지 않거든. 그래 주인에게 말했지.

“얼마 뒤에 다시 이곳으로 오는데, 밥값을 그 때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여관 주인은 선선히 그러라고 하네.

그 나그네는 정말 이웃 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어. 나그네는 자기가 먹었던 밥값을 치르겠다며 밥값이 얼만지 물었어. 그러자 여관 주인이 계산서를 내미는 거야. 계산서를 받아 든 나그네가 말했어.

“이건 말도 안 되오! 내가 먹은 거라곤 볶은 쌀 조금하고 삶은 달걀 다섯 개뿐이었잖소.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밥값이 천 페소나 된다는 말이오?”

여관주인이 말했어.

“당신이 먹은 건 달걀 다섯 개였소. 그 달걀들이 병아리를 깠다면, 병아리가 다섯 마리였다는 말이오. 그 병아리들이 자랐으면 알을 또 낳아 깠을 거요. 그렇게 넉 달이 지나면 천 페소는 나왔을 게 아니겠소?”

“그런 터무니없는 계산법이 어디 있소? 이런 돈은 내지 못하겠소.”

나그네는 밥값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판사 앞에 불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지. 재판을 받기 전에 나그네는 변호사를 만났어. 나그네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지.

재판 날, 나그네와 여관주인은 제시간에 법정에 나왔어. 하지만 변호사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사람들은 변호사를 오래도록 기다렸어. 두 시간쯤을 넘긴 뒤에서야 변호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늦은 겁니까?”

 판사가 성난 목소리로 물었어.

“정말로 미안합니다. 저희 집 옥수수 밭에 갔다가 그만 늦고 말았습니다.”

변호사가 대답했어.

“옥수수 밭이라니! 지금은 옥수수가 여물 때도 아니질 않소?”

“판사님, 오늘 아침에 저는 옥수수 씨앗 다섯 알을 물에 넣고 삶았습니다. 그리고 한낮에 그걸 밭에다 심었지요. 그러니 다음 주쯤 열매가 열릴 테니, 거둬들일 수 있을 겁니다.”

변호사 말에 법정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큰소리로 웃었지. 판사가  몹시 성난 얼굴을 한 건 물론이고, 나그네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어. 여관주인은 멍청한 변호사의 바보짓이 재미있어 신바람이 났어.

“삶은 옥수를 밭에 심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요?”

판사가 물었어.

“그렇다면 어떻게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깔 수 있을까요?”

변호사가 되물었어.

판사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그리고는 나그네에게 물었어.

“당신이 먹은 달걀이 삶은 달걀이었소?”

“네. 삶은 달걀이었습니다.”


일과놀이, 세계교과서에 실린 명작동화 20 - 필리핀 저학년 중 ‘삶은 달걀과 변호사’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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