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인식은 곧은 신념을 낳는다. 특정 사건에 대한 바른 인식이 그 사건에 대한 확고부동한 입장을 정립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를 게 있다. 바른 인식이 곧은 신념의 토대가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둘이 등치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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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은 뉴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도 허점은 있다. 뉴스가 이치에 맞지 않게 조각 사실들을 억지로 끼워 맞추듯이 자신의 입장 또한 작위적으로 꿰어 맞추는 경우가 많다. 뉴스가 논리적 비약을 감행하는 것처럼 자신의 입장 또한 널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성적으로 곱씹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작업은 뉴스를 읽는 과정에서만 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곧추세우는 과정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이런 담금질을 거쳐야만 비로소 나의 신념이라는 게 정립된다. 글쓰기, 특히 논리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신념을 담금질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방법이다.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말은 되는데 글은 안되는 경우, 주절주절 떠들 수는 있어도 조목조목 쓰기는 어려운 경우 말이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말은 부수적인 장치를 동원한다. 눈짓, 손짓, 발짓을 동원하고 때론 주변 인물의 추임새까지 동반한다. 그래서 치장할 수 있다. 논리적인 허점, 일관되지 못한 논지를 어느 정도는 가릴 수 있다. 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글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과 같다.
목욕탕의 거울에서 자신의 나신을 확인하듯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살필 필요가 있다. 뉴스가 세상사를 왜곡해 전달하는지 살피는 것처럼 자신 또한 세상사에 대해 그릇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글을 매개로 되살필 필요가 있다. 글은 어영부영을 허용치 않고 임기응변을 용납지 않는다. 글은 자신의 오류를 들춰내는 거울이요, 자기 입장의 엄밀성을 재는 잣대다.
원리는 같다. 뉴스를 이성적으로 곱씹는 원리와,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원리는 같다. 뉴스를 의심하듯 자신의 입장을 의심하는 것이고, 뉴스에 숨은 의도성을 찾듯 자신의 입장에 담긴 작위성을 찾는 것이다.
글쓰기는 뉴스 읽기의 완결판이요, 인식을 신념으로 승화시키는 디딤돌이다. (14-16)
=========================== 솔직히 그냥 좀 재미있을 것 같아, 라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정말 재밌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겨우 여는 글을 읽고서 말이다. 뭔가 정리를 해야하는데, 업무가 바쁜 관계로 나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