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는 검열은 넓은 의미로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조치를 가리키며, 이때 갈등의 대상인 메시지가 대중의 손에 넘어간 이전인가 이후인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 아니 서재뿐만 아니라 미니홈피, 블로그, sns 모두에 글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나의 온갖 스트레스와 머릿속의 복잡한 글타래들을 마구 풀어놓을 수 있었던 공간이 어느새 스스로의 검열에 빠져 삭제되기 시작했다. 알게 모르게 접근해오는 타인의 눈, 나와 무관하지만은 않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게 되면서부터겠지.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에 대한 단상에 빠져들기 쉬운 문제다.
하지만 뭐,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좀 더 넓은 의미로 다가선다면.
세상의 모든 원소라는 걸 보면서 주기율표만 떠올리고 있는 나,는 지극히 평범한 상태인것 맞겠지? 과학(물론 수학도 그렇고 그외의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의 심오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관심은 많이 갖고 있으나 차마 깊이있는 이해는 하지 못하고 있기에 망설여지는.
그보다는 99%정치에 더 관심이 쏠리는. - 아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어서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아. 세상이 이모양이꼴로 흘러간다고 온갖 비판은 다 해대면서 정작 해결적인 접근에는 관심을 뚝 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좀 씁쓸해지고 있긴 한데...
아니, 왜 엑박일까. 제목때문인가? 저 엑박은 '나는 꽃이 아니다'라는 책이다. 말로는 여성해방운동에, 여성에 관해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실상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가소로울만큼의 관심일뿐이겠지만.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책을 읽을 때였다. 지금까지 읽었던 환경에 관한 이론서들과는 다른 통계와 다른 관점에서 주장하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 처음엔 혹,하는 마음이었다가 제목때문에 마음이 확 식어버렸었다. '대통령을 위한' 이라는 것. 그것은 국가정책으로서 모든것을 판단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시대의 국가정책이라는 것은 99%가 넘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꼬맹이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원전이 있는 곳 주민들의 아이들이 기형이 된다는 것도, 방사능물질이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해가 되는지 알고 있더라도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그 모든것을 덮어버리는 이론의 틀을 만들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면 그처럼 바보같은 일이 어디있겠는가 싶어진다.
예술서는 점점 더 비싸지고, 관심분야는 넓어져만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