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 이곳’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그 세상인가.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서로 다 알면서도, 마치 옛날 민담에 나오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달리는 소금장수 신세같이 놓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파국의 여러 징조가 보이는데도 꼭 잡고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지옥 또는 천국처럼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으로 낯익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처럼 ‘매트릭스’로서의 그 세계는 바로 우리 지척에 있다.

(……)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들 우리 속의 정령을 불러내어 그이들의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 바로 얼마전까지 지척에 계셨다는 이야기구나. 뭐 미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귤 한상자, 한라산 소주 한병 사들고 찾아갈 위인도 못되니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낯익은' 세상이라는 제목보다 자꾸만 '낯선'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정말 우리가 특별히 언급하게 되는 세상은 내가 이미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지만 낯설기만 한 곳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열일곱 봄날을 지나 막바지에 이르러서, 하필이면 그러나 다행히도 우연과 필연의 만남을 거듭하며 나금영이 얻은 진리는 이것. “한때, 나에게 세상의 남자는 단 두 부류였다. 강동원과 강동원이 아닌 남자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단 두 부류라고.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 나의 남자들 역시 내가 아닌 사람들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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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합은 무엇인가, 싶지만. 오늘 내가 받은 책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담겨있어 좋다.
책 읽으며 마구 졸고있다가, 점심먹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별다른 움직임없이 일하고 있으려니 소화도 안되고 속이 부대끼는 반응만 맘 졸이며 느끼고 있다가 그냥 다 팽개치고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슬그머니 열어둔 창문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은 생기에 넘쳐있고. 나는 이런 늦봄의 날씨가 좋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뭐든지 다 새로워보이는. 
그래서 오늘 열심히 집어들어 쳐다보고 있는 책은 매일매일핸드메이드. 사실 내가 직접 저걸보면서 뭔가를 할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롭게 가꾸어진 내 방이 떠오르는 것 같아 좋을뿐. 

덧. 유럽마을산책은 라일라님의 선물이다. 알라딘에서 올 책이 있어 당연히 그 책인 줄 알고 뜯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좀 전에야 안을 들여다보고 저 책인걸 알았다.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고 설레이고 있어.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라일라님,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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