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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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또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새해 전 날. 단짝친구인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오리를 훔치다 걸리게 되고,  훔쳐낸 오리의 죽음은 바르트의 가족과도 같은 개 엘머의 죽음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단순하게 두 소년의 장난이려니 여겨졌던 그 행동은 그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춘기 소년들의 장난이 초래한 엉뚱한 삶의 모험에 대한 확장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외로움과 상실감, 불안과 질투, 분노와 폭력이 뒤엉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분노, 그것이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고 어머니와 동생 마저 빼앗으려는 그 자에 대한 질투와 분노인지 혹은 참을 수 없는 폭력에 대한 것인지 모를 증오가 있다. 순간적인 질투와 증오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어 삶의 어느날에 대한 기록이 되어버린다. 1월 0일은 나의 그런 날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이 다 뒤엉켜버리고 있다. ...... 

짧은 반나절동안의 묘사만으로 그들의 긴 세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그 기나긴 세월의 깊이를 알지 못하겠다. 아니,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그리 길지 않은 삶의 여정을 짧게 표현했을 때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는 그 누군가의 말에 수긍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누군가의 말이 틀렸음을 안다. 그 누구도 무난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자신의 삶은 언제나 선택이고 모험인 것이다. 자신의 삶의 길에서 슬픔과 후회, 외로움, 분노와 좌절, 불안을 느껴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많다. 시간, 기억, 행동, 말...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삶도 그러한 것이다, 라는 말 한마디로 이 이야기를 정리해버릴 수 있을까?   

책을 읽은 시간보다 더 깊은 상념에 빠져버리고 있다. 가족, 사랑, 친구, 우정, 죽음, 폭력, 분노, 외로움, 상실감...
우리는 모두 어느 한순간 1월 0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일지도. 아니, 지금 내 마음이 1월 0일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내 텅 빈 손과 텅 빈 마음이. 혹은 죽음과 외로움과 상실감과 분노로 가득찬 마음이. 

"높이 올라가는 별 하나를 보았다. 높이, 더 높이. 그러다가 사라졌나 싶더니 별안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더 높은 곳에서 터졌다. 별들이 한 송이 붉은 꽃을 피웠다. 수백 개의 별들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헐벗은 나무들도, 농장도, 들판도, 우리들의 얼굴도, 베트예만의 등도, 그리고 오늘 자 신문까지도.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빛은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고, 빛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비춰주고 있었고, 빛은 생각지 못한 아주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 모든 것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일뿐.  

그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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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01-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사진이 좀 섬뜩한 저 책, 요즘 많이들 보시네요.

chika 2011-01-2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좀 독특하긴 하죠? ^^

책의 판형도 독특해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제목이예요. 원제는 '맨손'의 의미라는데 그것보다 우리말책 제목이 더 맘에 들어요. '맨손'은 본문에 한번 나오는데, 그것도 꽤 의미가 있긴하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