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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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314)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벌써,라고 할만큼 세월이 빨리 흘러가버리고 있다. 집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는 하루를 살아낸다, 싶은 느낌으로 버티고 계신다. 그런데 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삶에도 파도는 있다는 것을. 

어느날 길을 걷다가 불콰해진 얼굴로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낯선 할아버지들을 봤을 때, 그들을 피하던 나는 사라지고 연민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가 있었고, 신호등 앞에서 여기 저기 손짓으로 예전의 모습을 이야기하던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두 손을 꼭 잡은 두분의 모습에 괜히 울컥해버렸을때부터 삶은 두렵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살아온 삶의 파도를 추억하는 아름다움도 있음을 깨닫게 된 내가 있게 된 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 십여년 전, 그럭저럭 살아온 내 삶의 이력을 들은 누군가가 별 어려움없이 자랐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은 이후 나는 너무도 편한 내 삶을 부끄러워해버렸었는데 이제는 그가 생각없이 타인의 삶을 평해버렸음을 깨닫게 된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옛날의 나는 비극의 주인공만이 삶의 주인공이라는 못난 생각을 하고 있었던걸까?

내가 나이를 먹어 할머니가 된다면, 올리브처럼 고집불통에 무섭고 등치만 커다래서 감정표현을 잘하지도 못하고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도 하지 않는 그런 못난 할머니가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금세 잊혀져버렸어. 올리브의 이야기와 그녀가 사는 바닷가 동네의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좌절과 실패와 절망이 담겨있지만 왠지 그 안에서 마음저미는 감싸안음이 또한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거든.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신의 잘못을 잘 수긍하지도 않고, 덩치도 큰데다가 무뚝뚝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학생들이 왜 자신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고, 아들 크리스토퍼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도 모르지.
올리브 키터리지가 사는 소금기 어린 바람이 불어대는 바닷가 동네의 사람들은 왠지 다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어긋남으로 인해 삶이 실패한 것 처럼 보이고 서로를 미워하고 포기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그런데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고, 아들을 사랑했고, 이웃들도 사랑했어. 학생들은 물론이고. 타인에 대한 섬세한 통찰과 연민이 드러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그 사랑이 왠지 더 애틋한 건 나와 내 친구들, 내 이웃들도 다 그러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친구들, 이웃 역시 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 그 각자의 방식이라는 것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잘못을 범하기도 하고, 어긋나버리기도 하며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어느 누구의 삶이든 다 그만의 삶의 파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아는지.  
올리브 키터리지가 무뚝뚝하고 고집이 세고 무섭고 표현을 잘 못하지만, 강인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그것이 그녀의 사랑의 방법이고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해주면 되는 것이야. 그런데 그건 긴세월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스스로 깨닫기 힘든 일이야. 그래서 어쩌면 타인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게 되는건지도 모르겠어.  

책을 읽는 내내 십대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과 친구들의 삶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쓸쓸해지고 서글퍼졌어. 그 얘기들을 이곳에서 할수는 없겠어. 어쩌면 나의 추억과 기억뿐일지도 모르는 그 모습들은 그 친구들에게는 삶이었고, 그 삶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니까. 항상 활기차고 외향적이었던 친구가 어느날 스스로를 자신 안에 가둬놓고 세상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우리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을 때의 아픔은 희미해져버렸지만 문득문득 그 친구는 어찌 지내고 있을까를 떠올리면 삶에 미숙했던 우리 모두가 안타깝기만 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버리는 모든 것은 우리가 견뎌내야 할 몫이지만 왜,라는 물음을 완전히 지울수는 없는거니까.

"독자들이 인간의 인내력,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때 사랑의 인내력에 경이를 느끼기를 바랍니다. 일상적인 매일의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존중할 만한 것이라는 점도요. 또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독자들이 더 큰 이해를, 또는 전과는 좀 다른 이해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쉽게 재단하고, 자신이나 남에 대해 쉽게 변명을 하느라 고통을 받지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실망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대략 비슷하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실패하고 성공한다는 것을요." 

이 위대한 인생찬가가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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