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정신에서였는지...
사실 미사끝나고 교리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과 국수를 먹을때까지만해도 나는 솔직하게 '교리 준비를 못했으니 생활이야기나 좀 나누고 끝내자. 미안하다'라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은 그 도가 지나쳤는지 두녀석을 앉혀놓고 심각한 이야기로 빠져들어버렸다.
한달이 넘게 질질 끌어온 - 역시 나의 교리준비 부족으로 인하여 끌어온 - 주제인 '고통'에 대해 마무리를 할까, 싶어 자신이 느끼는 견디기 힘든 고통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상대방은 어떤것을 고통이라 여길까 생각해 본 리스트를 작성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한녀석은 쓱쓱 써내려갔고, 한녀석은 펜을 잡고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2년반동안 되풀이되어온 똑같은 교리실 풍경이었다. 다만 오늘은 두녀석과 나, 이렇게 셋뿐이었다는 것이 다를뿐.
아직 어린 녀석들에게 '고통'이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형이하학적인 문제일뿐이고,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성적이 떨어졌을때의 느낌이라거나 간지러울때라거나 친구들과 장난치면서 한대 때릴때...같은 이야기가 나올뿐이다. 반면 나는 죽음, 전쟁, 시기, 질투, 수치심, 신체적 아픔 따위의 반추상적인 단어만 열거했을뿐이다. 잠시.. 한여름에 양손에 짐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땀이 비오듯 흐르는 상황,도 고통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성격'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떤 걸 고통스러워할까..라는 이야기에서 엉뚱하게 성격으로 튄것은 아니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의 성향과 '혼자 체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의 성향은 분명 다른 것 아니겠는가. 머리속으로는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한번 얘기해 봐'라는 말에는 절대로 대답을 하지 않는 녀석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한마디로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한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것에 안심하고,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을 글로 쓰거나 말로 하는 것은 죽을만큼 싫어한다. - 그래도 대답 안하면 내가 한대씩 때린다고 하면 맞는것보다 대답하는 것을 택하는 녀석이니 맞는 걸 더 싫어한다고 봐야겠지.
그녀석은 다른 애가 먼저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다. 자기 자신의 대답에 자신이 없거나, 자기의 대답이 정답이 아니면 그에 따르는 부끄러움과 실수가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성격을 알고 있어서 오늘은 시간을 끌면서까지 그녀석의 대답을 청했다. 내가 택한 최후의 수단은 자기 소개 3분 스피치.
한데 결과는 엉뚱하게 튀어버린 것 같다. 3분동안 아무말도 못하고있다가 내가 종이에 '나는...입니다. 내 성격은...입니다'라고 써서 보여주니 정말 달랑 이름과 나는 소심합니다,라는 두 문장을 말하고 끝내버린다. 그래도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혹시나 하는 맘에 '그리고 나는.....'을 썼더니 그건 뭐냐고 묻고 만다. 아, 정말 절망하고 싶은 맘이다.
반면 다른 한 녀석은 '선생님이 모범을 보여주셔야'라고 발뺌을 한다. 결코 내가 '모범'이 될 수 없으니 성적 우수생이 알아서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줄줄 읊어대기는 하더라. 이름,학교,혈액형,좋아하는과목, 싫어하는과목, 장래희망..
별로 나무랄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가 갖고 있는 그녀석에 대한 불만은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들과 자신의 의문점만을 내던지고 만다는 것이다.
아, 나는 오늘 어쩌면 정말 마음이 꼬여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녀석에게는 "부모님과 형이 없으면 혼자서 스스로 할일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 혼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싫어합니다"가 너의 자기 소개가 되지 않냐,라고 잘라 말해버렸다. - 사실 어떤 정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리실에는 나의 툭툭 끊어지는 냉정한 목소리만 들렸고 나의 말이 끝나고 이십여초정도는 숨소리도 안들릴만큼 적막이 흘렀다.
나는 그녀석에게 어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결코 부모님이나 형이 그녀석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친구들이나 나 역시 그런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 자신일뿐임을 다 받아들인다고 했다. 실수투성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것이 바로 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지만 긴장할때마다 나타나는 그녀석의 굳은 표정이 내 말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안풀어지는 것을 보니 도대체 나는 이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녀석에게는 '소심하다'는 표현이 뭘 뜻하는지, 냉철하지 못하게 물고 늘어졌다.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소개했는데 왜 소심한것인지를 설명하라고 한 것이다. 그녀석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이다운 면모답게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을 자랑도 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기는 한다. 나와 같이 있을 때의 그녀석은 거리낌없이 말도 잘하고 잘 웃고 잘 노는 녀석이지만, 어쩌다 행사가 있어 다른 성당 아이들과 섞여있으면 혼자 동떨어져 아무말도 못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걸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착각이고 자만이다.
두녀석 모두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반드시 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녀석들에게 훈화처럼 되어버린 나의 말들이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내가 본 모습이 그녀석들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것처럼 행동했다. 너무 소심해서 말한마디도 못하던 녀석이 이제는 묻는말에는 꼬박꼬박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노력해서 성취감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자기절제가 강하고 소신있어 보이는 모습이 좋다는 것도 모두 칭찬해주고 싶은 모습들이었지만 나는 칭찬보다 채찍을 들어버렸다. 나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녀석들이라고 자랑스러워 했으면서도 오늘은 그녀석들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후회가 살짝 밀려들긴하고 있지만, 한번 물꼬를 텄으니 이제 지속적으로 그 길을 만들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지금 현재의 그녀석들은 충분히 훌륭하고 맘에 드는 녀석들이지만, 좀 더 좋은 녀석이 되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라는 각오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거.
아이들의 부모님께 편지를 썼더랬다. 좀 더 성의를 갖고, 내가 알고 있는 이십여명의 아이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쓸까 싶었지만 이내 피곤을 핑계로 일률적인 편지 한통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부모님들의 반응이 뜻밖에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말도 안듣고, 미사시간에 떠들기만 하고, 딴짓하거나 늦게오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버릇없이 건방지거나... 온갖 안좋은 모습들만 떠올리고 있는 나를 어느순간 멈추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그런 관심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서 좋은 모습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지 부모의 고슴도치 사랑인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칭찬을 받고 자신에게도 칭찬받을만한 좋은 면이 있으며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면 세상은 훨씬 다르게 변할 것이다.
난 좀 더 노력해야한다.
........ 이제 노력하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마음이 더 커져가서 교리교사를 관둬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관두기 전까지는 노력해야지. 안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