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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씨 집안 자녀교육기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옛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집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를 읽다보니 교육과 체벌에도 집안마다 각기 특색이 있음을 생각해내고 혼자 웃었더랬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한때의 치기로 반항하던 작은 아들을 무릎꿇여 앉히고 '착실히 모범생으로 공부를 하겠느냐, 하기 싫은 공부 때려치우고 자퇴를 하겠느냐'를 선택하게 하셨었고 내가 아는 후배의 아버지는 잘못을 저지른 외아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셨던 강력계 형사의 본분을 다 하시는 분이셨다. 그걸 직분에 충실하신 분이라고 존경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리라.
그러면 3대에 걸쳐 따귀를 쳐 대는 것이 버릇인 마씨 집안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실려있는 네개의 중편소설 중 한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돈 받고 술을 마시는, 이른바 술상무가 직업인 마쥔은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아내에게도 차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최고 드렁커의 위치도 후배에게 뒤흔들릴 지경이다. 그런 그에게 '인생'은 무엇일까?
다른 두 작품, 1934년의 도망과 양귀비의 꿈은 풍양나무 마을에 사는 천씨 가문의 족보를 설명해주는 연작이다. 대지주의 몰락과 공산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중국, 아편에 찌들어 무너져가는 중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인하게 살아남고자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이며,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역사의 거대한 파도를 헤어나와 살아가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남자는 이혼지침서의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쑤퉁의 살짝 뒤틀린 해학이 결혼한 남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하게 사실적이라는 느낌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양보의 태도에 질려 그의 아내는 집을 나가버리고 친구의 여자친구는 그를 유혹하고 뜬금없이 나타난 방문객에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사기꾼으로 몰리며 얻어맞는 결혼한 남자 양보의 이야기는 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래 물론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언제나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지만(367) 쑤퉁이 그려내고 있는 그의 인물들은 거대한 역사의 물결속에 휩쓸려 가 익사해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359)했다고 하지만 쑤퉁이 그려내는 인물들의 답답하고 숨막힐 것 같은 집착의 모습과 맹목적인 사랑은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맹목적인 삶의 모습이 아님을 알게되어버린다. 쑤퉁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쑤퉁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가 인간에 대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에 대해 지독하게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역사와 설화가 사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웃음과 해학속에서 인간적인 깊은 슬픔이 배어나오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또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쑤퉁이라는 이야기꾼의 글은 꽤 읽은 편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수밖에 없는 이유다.